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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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좀 지난 글... 조당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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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27 ㅣ No.1181

아래 보니 조당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저는 서울의 한 조그만 본당에 있는 보좌신부입니다.

 

몇가지 정리를 좀 하고 싶어서요...

(조당 문의하신 분들에 대한 개별적인 답이 아니므로 좀 차갑고 딱딱하더라도 이해하십시오)

 

먼저, 조당이라는 말은 요즘 쓰지 않는 말입니다. 그 말자체가 옛말로 "방해, 지장, 장애" 라는 뜻입니다. 혼인성사를 성립시키지 못하는 자연법적, 교회법적 조건을 말하는 말인데 지금은 혼인장애라는 말을 씁니다. "조당"이라는 말이 무척 이상한 이미지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안쓰면 좋겠습니다.

 

누가 "조당제도"라는 말을 하셨는데, "혼인장애"라고 하는 것은 제도라기보다는 상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즉, 장애되는 요인이 있어서 이루어질 수 없는 혼인을 시도한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무효인 혼인 중에 있는 사람이 성사생활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쉽게 말하면, 마치 결혼 없이 동거생활을 하는 사람처럼 혼인이 성립되지 않았으므로 십계명 중 6계에 대한 결함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요즘 유행하는 신자유주의 사상에 따라 십계명 자체를 인위적인 제도라고 한다면... 그건 또 다른 논의가 되겠죠?)

 

즉, 보통 죄를 지으면 고해성사를 보면 다시 성사생활에 참여할 수 있지만, 이 경우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성사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 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지속적이기 때문에 마치 누가 인위적으로 금지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조당에 걸리면 성사 못봐!!" 이런식으로 말이죠. (그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도적 금지가 아니라 현재 지니고 있는 결함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도나 질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커서 평생 성사생활을 못한다는 식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됩니다.

극단적인 예로, 살인은 대죄이지만 한번의 종결된 행위인데 비해서, 불법으로 도박장을 운영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죄지만 지속적인 행위입니다.

 

지속적인 죄의 상태의 예로, 어떤 사람이 내연의 처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런 경우에는 사죄경을 드리지 못합니다. 고해성사는 근본적으로 회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계속 그런 관계를 지속하면서 성사의 은총을 받을 수 없는 것이지요. 관계를 정리하고 나서야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관계가 청산되지 않는한 성사생활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6계에 관련된 것 뿐 아니라 다른 결함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남의 물건을 착취했는데, (요즘 그런 사람 많죠? 특히 일부 부도난 대기업의 악덕 책임자 같은 사람들..) 착취한 재산을 돌려주지 않고 움켜쥐고 있는 상태에서는 고해성사를 볼 수 없습니다.

결함의 외적 상태가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가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교회가 제도적으로 재혼을 금지하고, 내가 재혼을 했기 때문에 인위적인 제도가 성사생활을 금지하고 있다... 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시도한 혼인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아직 고해성사를 볼 수 없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초혼이라도, 두 사람이 아무리 열심한 신자라도, 혼인성사를 받지 않고 사회혼만 하면 마찬가지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한 혼인성사도 인위적인 제도라고 하시는 분이 있으면 위와 같은 경우라고 봐야 겠지요?

혼인성사는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맺는 신성한 약속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 즉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은 혼인성사를 받을 의무가 있습니다. 혼인이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거룩한 약속임을 알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즉, 무효인 혼인을 유효화하기만 하면 고해성사를 볼 수 있고, 따라서 영성체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3년 안에... 영원히... 자녀들도... 이런말을 하셨다는데(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말들입니다. 구습으로 내려오는 말들 중에 그런 근거 없는 말들이 가끔 있습니다. 주일미사 빠지면 주님의 기도 33번을 바치면 된다는 식으로.. (대송에 대해서는 또 말할 기회가 있길 바라며..생략)

 

혼인이 성립되지 않는 무효장애의 경우는 굿뉴스에 링크된 가톨릭 대사전에서 "혼인장애" 항목을 보시면 자세히 보실 수있습니다.

흔히 인식하는 것처럼 교회가 사람들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오히려 되도록 이런 장애 요인들을 관면해주는 쪽으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비신자와 혼인할 때인데, (이런 경우가 가장 많지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신자 비율이 높지 않은 지역에선...) 그래서 흔히 "관면 혼배"라고 하면 비신자 장애의 관면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원래 신자는 아까 말씀드린 이유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기 위해 혼인성사를 받아야 하는데, 교회의 관면으로 신자가 아닌 사람과도, 그것도 비신자쪽의 영세 약속 같은 것 없이도 신자쪽의 신앙생활만 보장이 된다면, 성사혼은 아니지만, 유효한 혼인을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면 다 "비신자"에 해당합니다. 남묘호랭개교라도 관계 없습니다.)

 

때로는 비신자 쪽이 협조를 안해서 관면혼배조차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근본유효화(비신자의 동의 없이 혼인을 유효화하는것)라는 방법으로 유효화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 부산교구에서 대대적으로 근본유효화를 시행해서 교회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통상적으로 신중한 식별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도저히 관면해줄 수 없는 장애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족장애(직계, 혹은 방계 2촌 사이에서 혼인이 성립될 수 없는 것) 같은 것은 아무도 관면해줄 권한이 없습니다.

 

반면,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혼인유대장애", 즉, 이전 혼인의 유대관계가 풀리지 않은 사람의 혼인, 즉 사별하지 않은 재혼의 경우입니다. 그중에는 정말 피치못할 이유로 또, 자기의 원의와는 관계없이 이혼을 당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안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더라도 혼인의 불가해소성은 예수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이 맺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것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끼리(두 사람 모두 천주교 신자가 아닌 경우)에도 해당이 됩니다. 마치 내가 그 사람과 결혼한 사실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공동체 구성원의 실제적인 신앙의 유익을 위하여 노력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오로 특전입니다. 신자가 아닌 두 부부 중 한사람이 나중에 세례를 받았는데 신자가 아닌 사람의 요구로 이혼을 했다면 세례받은 신자는 특전적 관면에 의해서 새로운 혼인을 맺을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에 근거한 것이라 바울로 특전이라는 말을 쓰는데, 새로운 신앙의 보호가 성사적이지 않은 혼인유대에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미 세례 받은 사람의 경우에도 필요하고 타당하다고 여겨질 때는 이전 혼인에 무효한 요인이 없는지 면밀히 검토하여 무효화함으로써 새로운 혼인을 유효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도 하고, 그런 요인이 없을 때는 내적 법정을 통해 특정한 조건하에서 성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합니다.

 

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성사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이 무효한 혼인시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6계에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부부가 동의하여 부부생활을 하지 않기로 결심함으로써 성사생활을 할 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물론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 법정에서의 식별을 필요로 합니다.

 

...

 

왜 그렇게 복잡한가? 그냥 그럴만 하다.. 싶으면 인정해주면 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혼인의 불가해소성은 자연법(신법)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경우만 생각하면 갑갑하게 느껴지지만, 자기 맘대로 편한대로 사는 사람들을 보면 혼인의 거룩함을 소중하게 지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혼인은 결혼식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존재하는 사실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해서 그 인호가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혼인도 확정적으로 각인되는 사실입니다. 불가피한 이혼은 가슴아프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분명히 아니며, 신체적 장애를 기꺼이 지고 사는 사람들처럼 가장 나은 길을 찾으며 기꺼이 지고 가야할 나의 삶일 수 밖에 없습니다.

 

늘 길은 있습니다. 소문만 듣고 생각하시지 말고, 혼인장애 문제로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은 꼭 가까운 신부님을 찾아가 상의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엄격한 분도 있고, 관용적인 분도 있을텐데, 그렇게 찾아가서 이야기하는 노력도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함 (신부님을 "숭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드렸는데, 아직도 혼인성사에 관계된 문제들이 인위적인 제도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신다면... 뭐라고 더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아래 질문 올리신 분들, 모쪼록 좋은 결과로 행복한 가정생활, 기쁨이 넘친 신앙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합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판단이지, 인간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하느님은 우리가 최대한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마지막으로, 통상적으로 이야기되는 오해들 몇가지를 바로잡고 끝내겠습니다.

 

1. 이혼하면 성사생활 못한다. - 아닙니다. 위의 설명을 보면 아시겠지요? 이혼 자체는 성사생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2. 혼인장애에 있는 사람의 자녀는 세례를 받을 수 없다. - 유아세례는 통상적으로 유보합니다. 유아세례는 부모님의 신앙고백에 근거하고, 자녀의 종교교육에 대한 확신 속에 주는 것인데,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인세례의 경우에는 장애되지 않습니다.

3. 관면혼배를 하려면 배우자가 앞으로 성당에 다니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 아닙니다. 신자인 배우자의 신앙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신앙의 의무를 존중하겠다는 약속으로 충분합니다.

4. 혼인장애 상태에 있는 사람은 성당에 다닐 수 없다. - 아닙니다. 성사생활을 못한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도 공동체의 일원이고, 모든 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공동체의 노력입니다.

 

휴... 짧게 쓰려구 했는데... 길어 졌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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