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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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존경심(尊敬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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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 ㅣ No.10597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존경심(尊敬心)


 

가톨릭 신학용어에 존경심에 관한 설명과 존경의 대상을 정해 놓은 규준(規準)이 있다. 세상에 살았고 또 사는 과정에서 이웃의 모범이 될 때 세인들이 예를 갖추어 그 모범된 삶의 대상을 존중하는 태도에 곧 존경(尊敬)이란 말이 쓰인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서로 존경심을 지니고 나 이외의 사람들을 소중히 여긴다. 곧 존경심의 발로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는 과정에서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으로 서로가 뜻이 맞지 않을때는 존경의 정도의 높낮이가 다시 정립되기 마련이다. 인간이 살아기는 여정에서 몇번씩이나 심지어 여러차례 뒤죽박죽으로 표현 되는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의를 갖추고 대한다, 소중히 여긴다, 존경한다, 공경한다....


가톨릭 신앙관에서는 우주만상의 창조주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인간 삶을 실천한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지례(欽崇之禮)의 대상으로 삼는다. 곧 믿음의 대상이란 표현이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최상으로 존경하는 이른바 상경지례(上敬之禮)로 뵈옵는 자세를 취한다. 곧 인간으로서 제일가는 은총을 입은 여인에 대한 예우에 해당되는 존경심이다. 이어서 신앙인들은 믿음안에서 하느님을 증거한 삶을 살아간 성인들을 공경지례(恭敬之禮)로 그들을 닮고자 한다. 모두가 신앙의 표현이다.


가톨릭 평신도들은 사제를 성직자로 여기고 존경의 예를 표한다. 가톨릭 기도서에 이런 염경 기도문이 있다. 곧 '사제를 위한기도'이다.


기도 내용은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 주님을 본받으려는 사제들을 지켜 주시어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사제직에 올라 날마다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이루는 사제들을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 주소서.


사제들이 하는 모든일에 강복하시어 은총의 풍부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저희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그들이 더 없는 위안을 얻고 천국에서는 찬란히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이다.


우리 대수천의 상임위원 정규모임이나 가톨릭 평신도들은 사제들의 갈길에 지향두면서 기회 닿을 때마다 하느님과 주예수 그리스도께 이 기도문을 정성드려 바친다.


아무도 감히 걸을 수가 없는 사제들의 성무일도의 길이 험란하고 감히 평신도가 따르지 못하는 성직의 길이기에 우리 평신도들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신품성사를 받은 성직자들을 지향두고 이렇게 다칠세라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정성을 드린다 함은 기분좋은 언어구사에 그치는것만이 아니다. 대화에서 때로는 직설적 충고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사제들이 평신도를 대하는 자세는 어떠한가. 위함만 받아서인지 전후좌우 모르고 떠받들려 오만과 독선과 극대화된 권위주의에 도취된 꼴불견현상만 풍기고 거만을 떨고 있다. 


심지어 못 마땅한 말을 듣기만 해도 내용을 살피지 않고 신자들을 대하기를 '기분 나쁘면 천주교를 떠나라' 의 수준 정도이다. 하느님 흠숭하는 주체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지를 망각한 오만불손한 행동이 오늘날 일반적 모양새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가난으로부터 숨돌릴만 하게 되니 전후좌우도 모르고 떠받들며 존경드리는 신자들앞에 분별없이 무소불위로 호통을 치며 마치 자신들이 느끼기에 사제들이 무슨 특권을 지닌 주예수 그리스도와 방불한 신인냥 제일 거만을 떠는 현실의 교회안 팎이 된 현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종교지도자는 거만스러움으로, 권위의식만 내세우고 양들을 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그렇게 방약무인 하라고 존경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사제가 존경을 받을때도 시종 인내하며 겸손으로 자신이 목자가 된 자신들의 종교를 지켜나가야 하는 책무가 있다. 신자가 등을 돌릴 때면 그 타당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교리'가 무슨 성경의 전부인냥 거리를 거리를 쏘다니는 성직자 수도자들 꼬락서니를 대할 때 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평신도들의 심정이다. 


그들 스스로 무엇이 아쉬워서 교회의식 밖으로 튀쳐나가 명분도 퇴색한 무리들과 부화뇌동하며 때로는 천한 좌파적 운동권 무리들과 작당질하는 앞잡이가 되어 심지어 타락한 정치도구가 되어 사회일각의 소란스러움을 부추기는 선동술만 펼쳐 그들의 목적하는바를 쟁취하고자 하니 이게 무슨 종교지도자이며 정결과 순명을 서약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는 사제들의 모범이고 평신도로서 정결, 순명, 청빈을 서약한 수도자들의 겸손하고 자숙해야 하는 꼴사나운 행태들인가!


존경 받는다 함은 대상자가 평생의 삶을 어떻게 살아 왔느냐에 근거함이다. 성숙되지도 않고 이루지도 못했으면서도 벌써부터 강압적으로 '나를 따르라!' 하며 제주도 강우일주교회 의장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신자에겐 '성체를 주지않겠다'라 위협도구 정도로 인식하는 격으로 폭탄선언한 36세의 어린 신부가 종교 안팎을 누비며 판을 치는 세상안에서의 종교지도자 모습이라면 그런 종교는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무당 굿풀이 보다 못한 수준이라고 그 누가 아니 말하지 않겠는가. 


신자들이 못견디겠다고 교회 밖으로 도망치는 현상이 속출하고 냉담교우가 넘청나게 늘어나는데 그 원인이 사제들에의해 초래됨이 명양관화함인데 위기 의식도 없이 오히려 원로사제나 주교들까지도 못견디겠다 하는 평신도들을 윽박지르며 사제 함부로 대한다며 치졸한 또래 울타리 같다는 식으로 인식되는 명분내세워 '사제가 너무 심하게 나갔지만 신자들이 양해해 주어야 되는것 아니냐' 는 일깨우려는 충고 식의, 오히려 잔존한 위아래 도리 내세우며 수세적 사태수습 표현이 고작이라면 오늘날 한국천주교 전반은 완전히 썩은 곳으로 물들어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교계지도자들이 우려하고 자정활동을 펼치며 수습하는 과정도 다 놓치고 마는 오늘날 한국 가톨릭 천주교회의 내외적인 모습! 


이제는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에서 지난 3월 28일 발표한 결정문을 구체적으로 다시 작성하여 사제들로 인한 위기의 한국천주교회의 타락상을 자정적 노력으로 바꾸어 주어야 할 것이다. 교계 지도자가 권위의식에 도취되어 머물러 있다 함은, 주교회의에 참석하는이들과 주교들 자체도 완전히 권위의식에 구속되었다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된다. 원로사제들과 교계지도자들의 자정적 쇄신 분위기 조성만이 한국가톨릭과 교회종교지도자들이 평신도들과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다시한번 감히 지적하고자 한다.

2014. 5. 14. 대한민국수호 천주교임모임 공동대표 화곡 김찬수 알렉산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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