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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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413]퍼온 글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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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1-20 ㅣ No.416

이왕 퍼올 실려면 그에 대한 답변도 퍼오셨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제가 그런 수고를

요청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제가 직접 그에 대한 답변을 퍼왔습니다. 잘했죠?

 

 

PETER  형제님께

 

 

 

1.  필자가 속해 있는 기관은 천주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신심을 전파할 목적으로 1992년에 설립되어 그 동안 여러 출판물들을 영어 사용 내지 해독 가능 국가들에서 배부해오고 있다.  미국 신부님을 지도 신부님으로 모시고 정식 법인체로 설립되어 있으며, 많은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그리고 가톨릭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신심을 전파하는 목적의 일환으로 나주에 대한 소식들도 전파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모든 영문 출판물들은 전부 교황 성하께와 교황청의 여러 성성들에 제출되어 오고 있다.  왜냐 하면, 교황청에서는 세계적으로 교회 안의 현대주의의 문제점들로 인하여 크게 염려하고 계시며 나주의 일들에 대하여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이며, 또 본 기관으로서도 혹시라도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내용을 보도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교황청에서는 여러 차례 서한으로 격려해주셨다.  이것을 공식적인 인정으로 볼 수는 없지만, 교황청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아주고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격려되고 있으며 감사를 드리고 있다.

 

베드루 씨가 언급한 신앙 교리성성 차관의 성함은 "Bovone"이 아니라, Bertone 대주교님이시다.  Bertone 대주교님께서 광주 대교구로 편지를 보내신 것은 필자는 알고 있지 않은 사항이다.  위에서 언급된대로 이곳의 모든 출판물들이 교황청으로 제출되고 있으니, 1993년이면 아직 초기였던 그 때의 신문을 보셨던 것 같다.  

 

그 때의 신문에서 언급되었던 것은 윤 대주교님께서 나주의 일들 초기에 몇 번 호의적인 말씀들을 하셨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나주에서의 메시지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라는 말씀인데, 이는 1993년 당시가 아니라, 나주의 초기 시절에 대주교님께서 몇 분 사제들에게 말씀하셨던 사항이었음을 밝히면서 언급되었다.  이는 대주교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제님들이 계시니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1998년 1월에 와서 대주교님의 명의로 부정적인 공지문이 발표되었으니, 지금에 와서 나주의 초기에 대주교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언급하는 것은 큰 의미도 없고, 또 언급하고 있지도 않다.  지금 베드루 씨가 1993년의 일과 그 전의 일들을 논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 때 그 사실이 언급된 것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2.  베드루 씨는 또 필자가 "리 순성 신부님의 글을 문제삼아 교황 대사관에 투서했다,"라고 하셨는데, 사실은 "교황 대사관에 투서"를 한 것이 아니라, 이곳의 출판물 상에 리 순성 신부님의 글에 대하여 자세히 논하고 이를 교황청에 정식으로 제출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리 순성 신부님께서 주교 회의의 "사목"지 1998년 3월호에 기고하신 성체 성사에 대한 글은 분명히 교회의 정통 가르치심에 어긋나고 있었으며, 이러한 글이 사적인 좌석이 아니라 공적인 매개체, 그것도 한국 천주 교회를 대표하는 주교 회의의 "사목"지에 실렸다는 것은 지극히 심각한 공적인 사실이었다.  이를 누가 공적으로 반박하지 않으면 그 교리적인 오류가 한국 교회 내에 묵인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었다.  뿐 아니라, 나주 조사 위원회의 총무이셨고 주요 교의 신학자셨던 리 순성 신부님께서는 그 글에서 광주 대교구의 공지문에서 나주의 성체 기적들이 부정된 진정한 이유는 당신의 글에서 설명하신 개신교적인 성체 신학과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라고 밝히셨다.  

 

만약 리 신부님의 주장이 반박되지 않으면, 나주의 성체 기적들을 단죄한 그 새로운 신학을 그대로 묵인 내지는 교회 내의 정통 가르침으로 인정해주는 셈이 될 것이었다.  미사에서 사제의 축성으로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하는 교회의 가르침이 배척되고, 그렇게 변질된 새로운 신학과 나주의 성체 기적들과는 서로 맞지 않으니 그 기적들은 부정될 수밖에 없었다라고 하는 것은 천주 교회 안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상천외의 논리였다.  

 

베드루 씨는 리 신부님의 그러한 새로운 성체 신학을 지극히 정통적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셨는데, 필자는 베드루 씨에게 그 신학이 어째서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지를 설명해보시라고 도전하는 바이다.  억지의 논리로서가 아니라 주교 회의에서도 인정될 수 있고 교황청에서도 인정해주실 수 있는 논리로서 말이다.  먼저 리 신부님의 그 글을 자세히 읽어보시고, 어째서 그 글의 내용이 옳은지를 확실하게 설명해주시기 바란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이름있는 신학자가 제시한 논리라면 무조건 교회의 정통 가르침과 대등한 것이 된다라든지, 또는 그 정도의 신학자시라면 교회의 교리를 변경할 수도 있으시다라는 것을 설명해보시기 바란다.  

 

우리는 평신도지만, 주님께서 가르치시고 교회에 위탁하신 진리들을 순수하게 교회로부터 가르침받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그것이 잘 안될 때에는 이에 대해 사목자들께 말씀드리고 청원드릴 수 있다.  이는 교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신자들의 권리이다.

 

3.  1998년 2월에 김 요셉이라는 분이 받으셨다는 메시지에 대해서, 그 분은 나주나 이곳과 협력 관계가 없는 분이니 필자가 변론을 할 입장이 아니다.  단지 그분의 글이나 메시지는 나주나 이곳의 의견이나 입장을 전혀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만 밝혀두고저 한다.  보도되는 수많은 메시지들에 대한 필자의 입장은 대개의 경우 일단 부정적이다.  

 

하도 황당한 메시지들이 많기 때문에 오직 그 메시지에 믿을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될 때에만 주의깊게 관찰한다.  1985년 나주의 일이 시작된 이래, 나주에 계신 분들과는 하등의 관계 없는 분들, 예를 들면, 인천의 인 베드로 같은 분들이 나서서 괴이한 행동을 함으로써 나주에 대한 인상을 흐리게 하고 유언비어가 나도는 데에 기여해왔다. 신자들은 영적 분별을 잘하여 유언비어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미국의 한 가톨릭 신문에서 이상한 기사를 본 일이 있었다.  교황 성하께서 어느 나라에 가셨을 때 미사 후에 많은 이들이 줄을 서서 한 사람 씩 성하께 인사를 드리는 사진도 실렸다.  그런데 마침 그 사진 안에는 성하와 인사를 나누는 어느 토속 종교의 여사제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신문에서는 어떻게 교황께서 우상 숭배를 하는 이교의 사제와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눌 수 있는가 하고 교황 성하를 비판하는 글을 싣고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성서에 보면, 바리사이 인들이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비난을 퍼부었다.  자기들의 불신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생트집을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연관하여 부언할 것은, 나주에서의 메시지들과 징표들을 불신하는 분들의 공통점 한 가지는 율리아 씨에게 주로 비난을 집중시킨다는 점이다.  이분들은 사적 계시를 분별함에 있어서 교회가 심사해야 할 주요 대상이 성모님을 통한 주님의 메시지들과 징표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율리아 씨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 그분들은 반드시 걸려넘어지게 되어있다.  왜냐 하면, 성모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율리아 자매의 인간적인 한계점들을 주님께서 거두지 않으시고 그대로 두셨기 때문이다.  

 

율리아 씨가 왜 완전무결하지 않으냐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스스로도 완전하지 않으면서 모순을 범하는 것이 아닐까?  필자가 대해온 율리아 씨는 특별한 분이라기보다는 매우 평범한 한국 시골의 순진하고 인정많은 가정 주부이며 자녀들의 어머니였다.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기에 대하기도 편안한 분이었다.  평범하기에 천사와 같으시기보다는 우리들 모두가 가지는 인간적인 한계점들도 가지고 계시리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문제점을 가지고 계신 분도 아니었다.  

 

좀 특별하다고 생각된 점이라면, 그 동안 장기간 동안 그렇게 심한 신체적 고통들을 받아오면서 또 온갖 유언비어로 억울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쓰러지거나 실망하지 않고 희생적으로 지탱해오신다는 점이었고, 또 주님과 성모님의 말씀대로 세상 사람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빨리 회개하고 생활 개선하기를 바라는 크리스챤적인 사랑의 열정에 불타는 분이라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그러한 열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에 의해서 "너무 나서는 사람"으로 오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십여년 동안 주님과 성모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오고 영적인 현실을 똑똑히 보아오신 분으로서 어떻게 그러한 열정에 불타지 않을 수가 있을까?  주님과 성모님의 좋으심을 보고, 인류의 죄악의 참담한 현실을 보고서 어찌 담담하게만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우리 자신만의 좁은 기준으로 보고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된다.  나주에서 우리가 율리아 씨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에 불타는 성심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 상에서 고통 받으시며 피흘리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그 밑에서 피눈물을 흘리시는 성모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밑에 함께 고통으로 신음하며, 이를 사랑의 희생으로 바치고 있는 연약한 율리아 자매가 있다.  이제 우리는 쓰러져 있는 그분을 더 이상 욕하고 발로 차고 할 것이 아니라 동료 신자로서 손을 잡고 일으켜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주님과 성모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다시 활성화하시기 위하여 교회 안에서도 가장 힘없는 평신도, 그것도 여자 평신도를 택하셔서 그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보속의 고통들을 지게 하시고, 교회 역사 상 그 어느 곳에서보다도 더 강력한 메시지와 징표들로써 우리를 깨우치려 하고 계신다.  모쪼록 우리는 질그릇의 초라함을 꿰뚫고 그 안에 담긴 보화를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현재 나주의 경당에 순례자들이 계속 모여오고 또 때로는 함께 기도도 하고 하는 것은 나주에서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순례자들 자신이 스스로 하는 것이니 공적인 행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주에 순례자들이 계속해서 모여오고 기도하는 것은 광주 대교구에서도 알고 계시고, 한국 주교 회의에서고 알고 계시며, 교황청에서도 알고 계시는 일이다.  

 

오라고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라고 시키는 것도 아니지만, 주님을 찾고 어머니를 찾아오는 자녀들의 애타는 마음을 어찌 막을 수가 있을까?  나주의 일들이 허위라면 막지 않아도 스스로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일들이 진실이라면 아무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세기의 한국 신자들도 자신들의 생명은 버릴 수 있어도 주님께의 신앙과 충성을 버릴 수는 없음을 이미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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