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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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기도의 대상에 대한 혼란이 갑자기 찾아왔습니다.(꼭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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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220.72.245.*]

2016-05-05 ㅣ No.1116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도가 잘 되지 않을 때

 

주님, 기도가 잘 되지 않는 것은 제 영혼을 다른 무엇들에 빼앗기고 있다는 뜻입니까.

푸른 하늘에서 조용히 자유롭게 떠가는 희디흰 구름들과, 바닷가에서 한없이 부드러이 쌓이는 햇살을 저로 하여금 떠올리게 하소서.

그리고는 기도의 문을 열고 하느님 속에 들어가 평화를 빌면서, 다시금 생명으로 살아나고 있다는 감격을 얻게 하소서.

 

주님, 저에게 가장 소중한 하나, 사랑이라는 이름의 힘찬 평화를 허락하시어, 저의 전체가 순수한 기도 한 줄 "뜻대로 하소서"로 풀어지게 하소서. 주님, 제 기도의 음성이 조금씩 맑아지게 하소서. 깊은 고독의 그윽한 사랑의 덫에 걸리게 해달라는 기도, 영혼에 신비한 빛을 머물게 해달라는 기도가 저의 투명한 침묵 속에 뿌리를 내리도록 해주소서.

 

작은 풀잎들에도, 여린 바람들에도, 아침놀과 저녁놀에도, 저의 하루에도 하느님의 숨결이 뛰고 있음을 기도를 통해 충분히 느끼게 하소서. 아멘.

 

에필로그

 

작가 김영수님의 '기도가 그리운 날에는'이라는 142개 기도문 양식 가운데 위의 제목 한개를 필타해봤습니다. 필자와 비슷한, 아니 보편적인 기도 채험이신듯 하군요. 필자의 경우는 임의 그러하신 경우 가톨릭 성사 39번 '하나되게 하소서'를 묵상하곤 하지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미아(4호선 415번 역/ 416번: 미아 사거리, 414번: 수유역) 8번 출구를 지나 도미니코 수도원 '희망에코'에서는 지도사제께서 새로 오신분들과 함께 즉석 신앙상담을 해주십니다. 형제님도 참석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자가 알려줬다는 이야긴 하지 마시고요. 신부님이 너무 바쁘신 가운데 오로지 하느님께 의탁하여 최양업 신부님 라이벌처럼 수고하시기 때문입니다.

 

평신자들의 몫은 이때에 성부께 성모님께서 그러하셨듯 소리없이 신부님을 챙겨드리는 것이 보람인가 합니다만, 오늘 어린이날, 내일 국정 공휴일을 챙겨 먹으려고 평소 금요일 하던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토요일 명동 행사 준비를 어제 해치우는 과정에서 그 바쁘신 신부님께서 또한 희생과 평화로서 수요일 모임을 주도하시는 것을 보고 감명받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필자같은 경우는 앞으로 매일 30분간 아무것도 하지말고 묵상에 임하라 했는데 형제님과 비슷한 절차상의 문제로 침묵 묵상이 어려워 "즐겁게 노래하다가~♪ 그대로 멈춰라!~♪" 작전으로 지하철 등 어떠한 순간에 딱! 생각도 멈추고 멍 때리는 작전으로 임하곤 합니다. 그랬더니 조금씩 마음의 눈이 다시 떠지는 현상을 보곤 하는데 천하의 교만하고 자유방임적이었던 전과(?)가 한꺼풀씩 벗겨짐을 보곤 합니다.

 

아무튼 필자도 요즘 정신없어 뭐라 조언하긴 그렇고 형제님과 함께 아래의 성체조배 전략을 복기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1. 생각도 침묵하라.

2. 죽은 침묵과 대화하라.

3. 과거와 미래로 도둑맞지 말라.

 

이는 성체 앞에서의 전략임을 독자들께선 혼동치 않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속에서는 온갖 유혹으로 역효과 되기 쉽상일테니까요.

 

우리는 그렇게 사람이 아닌 하느님을 뵙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필자는 위의 세가지 형식주의자이기에 전례 중심으로 전환이 어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형제님처럼 더욱 주님께 피신하길 청원합니다.

그래서 필자가 요즘 효과적으로 느끼는 "멈추기" 작전을 추천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보고 묵상하신다니 그것도 참 좋은 방안이 될듯 하군요.

필자도 다시 한번 미사 집전중의 신부님 위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뵈어야겠습니다.

요즘 필자는 노래를 워낙 좋아하는 관계로 때때로 마음의 눈 앞에 촛불을 켜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성가가 한층 잘 나옴을 봅니다.

 

과거 절두산에서 홀로 부를때는 왕성한 40대 음색이었기에 지금보다 싱싱했지만 자금은 탁성이 가미되어 어렵긴 하지요.

하지만 된장국 냄새 더불어 그때의 성령발로 파견성가시 자리를 뜨는 순례자 그 자리에 꽁꽁 묶이게 했을때 추억으로 돌아가고 싶기에 선생님들과 요즘 성가 잔치로 노래할 때는 가장 질긴 세속 친구이자 낙인 담배를 많이 핀 것을 후회하곤 합니다. 더 맑고 경건해지고픈 욕심에서지요.

 

어제는 돌아가면서 한 곡씩 추천하자에 홀리나잇을 그 시절 무대로 돌아가듯 부르니 자매님들의 박수가 이어져 기분 좋더군요.

성가 역시 말하기 5점, 듣기 10점, 쓰기 15점, 외우기 100점, 전하기 200점, 실천하기 300점이 될 것입니다.

11시에 어떤분과 점심 약속 있어 마음이 조급한 가운데 쓰는 글이니 횡설수설 이해해주시길 바라며 이 점수론을 쓰는 이유는 임께서 필자처럼 노래하기보다 경청 스타일이실것 같아 드리는 글이니 함께 묵상해주시면 좋을듯 합니다.

 

성가는 두배의 기도라 하지요? 이는 우리가 좋아하는 경건한 음률과 시편 등의 성경 말씀이 함께하기 때문인가 합니다. 따라서 형제님도 음정, 박자 평화로서 다가오는 성가 선율에 더욱 귀 기울이신다면 그러한 분심조차 부활의 재료로 이끌어주시는 주님께 다시 감사하게 되겠지요.

 

재료는 아리스토 텔레스가 '질료'라 하였고 관상과 설파의 도미니칸 어느 신부님께서는 '무형의 질료'는 하느님이라 말할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형상, 능동, 목적은 삼위일체가 될 수 있음이라 강조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이정표가 있으니 그 모든것 오늘도 다만 최선을 즐기는 하루로서 임하길 간청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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