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1일 (금)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신앙상담 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RE:414]진실된 나주

인쇄

비공개 []

2000-01-20 ㅣ No.417

 

이왕 퍼올려면 다 퍼와야지 비교가 될 것 아닙니까. 그대가 다시 수고하실 것 같아서 제가 이렇게 퍼왔습니다. 뭐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자유의 빛"님의 글을 읽고서

 

 신비 현상의 식별 기준은 공적 계시이다

 

먼저 "자유의 빛"께서는 "모든 신비 현상의 가장 근본적인 식별 기준은 그 현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완성된 공적 계시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글을 시작하셨다. 너무나 지당한 말씀이다.  결국 나주의 일들에 대한 분별도 가장 근본적으로 그 일들이 주님께로부터의 공적 계시 진리에 부합되느냐 않느냐 하는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만약 나주의 일들을 배격하는 분들이 그 일들이 교회의 공적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힐 수만 있다면 그분들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자유의 빛"께서 올리신 글을 다 읽어보아도 공적 계시에 어긋난다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나주의 일들을 배격하시면서 가장 근본적인 식별 기준은 공적 계시이다라고 선언하셨다면 나주의 일들이 왜 공적 계시에 어긋나는가에 대한 설명이 당연히 있어야 하고 그 실례들을 들어야만 글의 앞뒤가 맞는다.  그런데, 나주의 일들이 공적 계시의 어느 항목에 어떻게 어긋나는지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으면서, 단지 다른 곳들에서의 메시지들과 유사한 대목들 몇 군데가 있기 때문에 메시지의 진실성이 의심스럽다라는 주장만을 주로 하고 있다.  나주의 일들이 교회의 공적 계시에 부합되는가 하는 문제와 나주의 메시지들이 진실하게 전해져 있는가 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으며 따로 다루어져야할 별개의 안건이다.  메시지의 진실성을 거론하면서 메시지가 교회의 공적 가르침에 어긋난다라고 판단내린다면 이는 죄의 항목을 잘못 짚은 것이요 애매한 이를 덮어씌우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1998년 1월 1일자로 발표된 광주 대교구의 공지문에서는 나주에서의 성체 기적들이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라고 명백히 선언되어 있다.  어느 신비 현상이 교회의 공적 가르침에 참으로 어긋난다고 하면 더 이상 논의의 여지도 없이 끝장이 난 것이다.  일반 법정에서 말한다면 이는 사형 선고와 같은 것이다.  사실 공지문이 발표된 이후에 나주의 일에 대해서는 가지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고 하는 가혹한 제재가 한국 교회 안에서 가해져왔다.  나주의 일들의 진실성을 계속 믿는 이들에게는 많은 박해가 가해져 왔다.  만약 나주의 징표들과 메시지들이 참으로 교회의 공적 가르치심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나주에 관한 모든 토론은 이 자리에서 깨끗하게, 하등의 미련도 없이 종료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나주의 일들을 반대하는 분들은 그 일들이 교회의 가르침에 왜 부합되지 않는지 책임있는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적인 억지를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공지문 상의 교리적 문제점들

 

그런데 참으로 기막힌 것은 나주의 일들이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선언한 광주 공지문의 내용이 오히려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지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에 대해 교회의 많은 고위 성직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신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지금 교황청을 비롯하여 세계의 많은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어떤 시각으로 나주의 일들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 한국 내에서는 대체적으로 너무나 이해가 결핍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 지적들의 자세한 내용은 다른 지면들을 통하여 이미 설명되었으므로("진리와 교도권의 수호를 위하여" 책자 참조),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한 가지만 간추려본다.  

 

공지문에서는 "윤 율리아씨가 입에 모신 성체가 입안에서 살덩어리와 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도, 사제의 축성으로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실체 변화’한 후에도 그 형상은 여전히 빵과 포도주여야 하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선언과 실제의 교회의 가르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제에 의한 성체, 성혈 축성 때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하는 변화만 있고 빵과

포도주의 외양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사제가 축성을 해도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체 변화만 있고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외양의 변화는 없다는 뜻이다.  즉 성체 축성의 효과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런데 공지문에서는 사제의 축성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하여 빵과 포도주의 형상이 지속되어야 하며 따라서 그 형상이 변한다면 이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공지문의 이러한 주장이 옳다면 2천년 교회 역사 상에 일어났던 수많은 성체 기적들이 다 부정되어야 하며, 그 성체 기적들 중 다수를 인정한 교회의 결정들이 다 실수였다라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광주의 공지문에서는 성체 성사에 관하여 교회의 가르침에 없는 뜻을 새로 첨가하여 마치 이것이 교회의 가르침인 것처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을 변경하거나, 첨가하거나, 삭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교도권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공지문 상의 이러한 선언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나주의 성체 기적들이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성체 기적을 단죄한 광주 대교구의 공지문이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하는 기막힌 현상이 전개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광주의 공지문이다.  공지문 상의 문제를 해결해야 진리의 순수성이 회복되고 교도권의 명예가 되찾아지며, 진리와 교도권을 주신 주님께 다시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주님의 계시 진리에 비추어서 나주의 일들이 시급히 재조사되어야 한다.

 

사실 위에서 지적된 사항은 많은 신자들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라고 보여진다.  신부님이면 하늘같은 분이시고 더군다나 주교님은 더말할 나위도 없는데, 주교님의 이름으로 발표된 문헌에 교리 상의 오류가 있다는 것은 좀체로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엄청난 일이 이미 일어나 있는 현실이니, 우리가 단지 주교님을 깊이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이유 때문에 덮어둘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모든 주교님들과 신부님들께 대한 존경과 사랑은 언제라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교도권

이 진리를 오류없이 가르치기 위하여 위임되어 있는 권한이지 어떤 사항에 진리성을 부여하거나 박탈하는 말하자면 진리 위에 서는 권한이 아님을 알고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86조 참조).  그 공지문이 광주의 대주교님 명의로 발표되었으니, 대주교님께서 이 문제를 확실하게 시정해주시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문제가 발생하게 된 책임은 우리 교회 전체에 있다는 점을 모두가 깨닫고 겸허한 회개의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교회는 물질주의, 인본주의, 현세주의의 침투로 인하여 엄청난 신앙의 상실, 진리의 왜곡을 겪어오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고귀한 가르침들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하여 현대주의적인 오류들이 유포되어왔다.  오늘의 광주 대교구 공지문의 문제는 그러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며, 신자들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위탁하신 순수한 신앙의 유산에로 다시 돌아가려는 범교회적인 노력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분별의 대상은 신비 현상 자체의 진실성이다

 

2천년 전 예수님을 배척하던 이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트집을 잡아 그분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습니까?"  "왜 당신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십니까?"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왜 당신은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까?"  "당신은 마귀의 힘을 빌려서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까?"  "왜 비싼 향유를 당신께 부어 낭비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에는 하느님의 권위와 힘이 담겨져 있었고, 그분께서 하시는 기적의 징표들은 그분께서 성부께로부터 오셨음을 증거하고 있었으나, 반대자들은 그 말씀과 징표들에 대해서는 눈과 귀가 멀어 단지 그분과 그분 제자들의 흠을 하나라도 발견하여 자신들의 불신앙을 정당화하고저 하였다.

 

오늘 나주의 일들과 그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2천년 동안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가 나주의 일들을 분별하는 활동에 있어서 그 초점은 과연 그 일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가 아닌가 하는 데에 맞추어져야 한다.  물론 율리아 자매의 신앙 생활이 건전한가, 심리 상태는 정상적인가, 윤리적으로 문제는 없는가 하는 등의 질문들이 중요하다.  왜냐 하면, 메시지와 징표들을 받는 이의 상태를 조사하는 것이 그 메시지와 징표들의 참됨을 분별하는 데에 중요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를 받는 이의 자질 그 자체가 분별의 궁극적 목표가 아님을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계시를 받는 이에 대한 트집을 잡아서 계시 자체를 불신하려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공지문 상에도 분별의 초점이 잘못 맞추어져있다는 감이 드는 부분들이 있으며, "자유의 빛"의 글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계시 자체가 아니라 율리아 자매 자신을 분별의 대상으로 삼아 트집잡고 있다.  

 

 메시지의 표절이 있었는가?

 

"자유의 빛"의 글에서는 이러저러한 트집을 잡아서 율리아 자매가 메시지를 표절하고 조작한 것 같다라는 자신의 의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의심을 하고 않고는 개인의 자유이겠지만, 특히 공적인 지면에서 그런 언급을 할 떄에는 자기 말에 대한 공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나주에서의 메시지와 다른 곳들에서의 메시지들 사이에 몇 군데 유사점들이 발견된다는 것만으로써 "표절의 명백한 증거가 된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경솔한 처사이다.  내 것과 꼭같은 옷을 입거나 꼭같은 핸드백을 들고 가는 이에게 대뜸 다가가서 "당신이 내 것을 훔친 것이 명백하다,"라고 말한다면, 자칫 크게 망신을 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자유의 빛"께서 "표절이 명백하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기 위해서는 훨씬 더 신빙성있는 증거가 있어야 된다.  자칫 애매한 사람을 잘못 단죄하면 그 엄청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가?.

 

지금까지 율리아 자매를 통하여 주님과 성모님께서 주신 메시지의 양은 방대하다.  하나의 두꺼운 책을 이루고 있다.  양만 방대할 뿐 아니라, 그 내용 또한 확고한 목적성 밑에서 산만함이 없이 현재 교회와 세계의 신앙, 도덕 문제를 광범위하게, 심도있게 다루면서 그리고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도 더한 강함과 애절함을 가지고 장엄하게 전개되어 있다.  그 수많은 메시지들과 징표들 전체가 하나의 통일되고 잘 조화된 교향악처럼 짜여져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 깊이를 깨닫게 되고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 메시지들 안에는 성모님께서 "하늘과 땅을 잇는 끈," "보속의 협조자" 및 "공동 구속자"가 되신다고 하는 실로 엄청난 교리적 내용들도 들어있다.  현재 교회가 처한 심각한 신앙의 위기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으며 그 위기를 극복할 효과적인 처방도 알려주신다.  이러한 엄청난 규모와 깊이와 아름다움의 메시지들을 그 아무리 지능이 뛰어난 인간이라도 조작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그 메시지 전체를 선입견없이 읽어봄으로써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메시지가 시작된 1985년 당시 교회에 들어온 지 몇 년밖에 안되었던 율리아 자매가 이러한 메시지들을 지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방대한 양의 메시지들 중에서 간혹 몇 군데 다른 곳에서의 메시지와 유사하다는 곳이 발견된다고 하여 메시지가 표절되었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비록 메시지를 주신 장소와 시기는 다르다고 하여도 메시지를 주신 분은 같은 분이시며, 그 메시지를 주시도록 하신 분은 한 분이신 천주 성령이시다.  메시지를 주시는 목적도 늘 한 가지 뿐, 즉 우리들의 회개와 구원이다.  그렇다면 간혹 내용이 같고 비슷한 말이 사용된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부모님께서 멀리 여행을 가셨는데 집에 남아있는 자녀들에게 따로 여러 번 전화를 걸게 되었다면, 그 자녀들에게 간혹 같은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 무엇이 이상할 것인가?

 

만약 율리아 자매가 다른 메시지들을 표절했다면, 지난 14년간 율리아 자매 가까이서 그분을 돕고 관찰해온 수많은 사람들 중의 그 누군가가 이를 발견하고 증언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율리아 자매는 다른 곳들의 메시지를 전혀 읽지도 않으며 남들에게서 다른 곳의 메시지들을 전해받지도 않는다. 도대체 몇 군데 낱말이 비슷하다고 하여 다른 어떤 근거도 없이 애매한 사람을 표절자, 즉 메시지의 도둑으로 모는 것이 과연 가톨릭 신자로서 아니 민주 사회의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인가?

 

 대성전 건립 문제에 관하여

 

1991년 가을에 성모님께서는 율리아 자매에게 대성전 지을 땅을 알려주시고 그 땅에서 메시지와 태양의 기적 등 징표들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그 땅을 기증하기로 했던 소유자가 그 땅을 교구에 기증해도 교구에서 나주 성모님을 위한 성전을 지어주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 땅을 교구에 기증하였다.  그러나 주교님께서는 다른 시설을 생각하시고 그 기증을 받으셨던 것이다.  성모님께서 그 땅에 대성전을 원하셨다면 언젠가 반드시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당장으로는 그 땅이 교구에 다른 용도를 위하여 속하게 되었으니, 사정이 매우 어렵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당분간 메시지의 그 대목만은 발표를 보류하였다가 나중에 다시 삽입하게 되었다.  이를 들어 공지문에서 그리고 "자유의 빛"께서는 메시지에 인위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며 지적하고 계신다.  

 

그러나, 과거의 여러 경우들을 살펴보면, 메시지의 일부가 한 동안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발표된 예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그 메시지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의도도 아니며, 그 당시의 특별한 사정에 의하여 당분간 발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는 배려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배려는 비록 인간들에 의한 것일지라도, 반드시 잘못이라고 잘라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배려가 불필요했었다고 하드라도 그 메시지 자체의 진실성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나주의 일들을 반대하는 분들이 거듭하여 율리아 자매 및 그 주위의 사람들의 흠을 잡아서 메시지와 징표들을 불신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메시지를 받는 이들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빌미로 하느님의 일들을 배격하려는 비합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4년 간 아니 그분의 일생 전체를 통하여 율리아 자매가 받아온 고통들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분의 순박함과 깊은 사랑과 희생심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하느님께서 왜 그 분을 당신의 특별한 일꾼으로

선택하셨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도 평범한 인간이고 따라서 인간적인 나약함도 있을 것이므로 이를 핑계로 그분을 통하여 주시는 하느님의 고귀한 선물들을 경솔히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베들레헴과 나자렛의 초라함을 보고서 예수님과 성모님, 요셉 성인을 비웃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나주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주님을 따르는 이들을 세상이 미워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이미 알려주신 사실이고 실질적으로 거의 예외없는 법칙처럼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의 빛"께서 쓰신 글 안에서 성모님께 대하여 언급할 때 존경심 없는, 조롱적인 표현들을 쓰신 부분들이 있는데, 모쪼록 이런 일들은 시정해주시기를 부탁드리는 바이다.  

 

 

--------------------------------------------------------------------------------

 

         



331 0댓글쓰기

신고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