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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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믿음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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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220.72.245.*]

2017-04-28 ㅣ No.11478

† 찬미예수님

 

칠성사 입문을 위한 교리를 배우고 있군요. 더욱 입당 직후 그리스도 제대 바라봄으로 이겨내기 바랍니다.

보고 듣고 믿는 과학과 믿고 듣고 보는 신앙은 윤회가 아니고 부활이지요.

토태미즘 관련 본능도 남성의 진취적 사랑과 가치로 승화할 수 있다는 것이 영혼의 탄생 세례 전이라면 세례 후에는 묵상과 관상기도의 차이점을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형제님의 글을 접하면서 햄릿의 독백을 생각해봅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바꿔 생각해봅시다. 

내가 앞으로 "복음적으로 살 것이냐 비 복음적으로 살 것이냐?"의 메시지란 것이지요.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의발은 기도하는 손과 이어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화채를 갈망하기에 하느님과 함께할 때 훌륭한 기도 꿈과, 완전한 기도 잠을 갈망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첫자리로 모시고자 신병훈련에 임하는 예비자 교리를 무사히 마치면 점점 내가 무엇으로 쓰여질지 기대와 화답을 나누게 됩니다. 이를 위한 기도의 표지 두 가지를 형제님의 손과 발로서 화답하도록 응원 보내드립니다. 

 

두가지 기도는 관상의 미사와 묵상의 묵주기도입니다. 섞갈리는 그것은 미사중 이미 포함되어 있기에 묵주기도 금지 사항과 맞물려 있기에 "생명의 피"와 "죽음의 물" 섞이는 성찬예식, 신부님의 성체거양 함께 임할때 더욱 침묵의 기쁨으로 말씀 또한 복기하게 되는 것이지요.

 

자! 그럼 복음과 비복음에 대하여 일상안에서 성모님과 함께 달리는 묵주 기도론 부터 살펴보도록 합시다. 

묵주기도는 성모님 품 안에서 성부께 잘 말씀드려 달라는 예수님 함축 생애 담겨 있기에 아기처럼 옹아리를 하던지 주님과 노래하던지 그 것은 미사와의 균형 문제고 당장 현실의 복잡함들 또한 그토록 갈망해 온 성령 초대로서 분석해보도록 합시다.

 

믿음을 어찌할지 갈피가 안 잡히면 주님과 함께 들숨을 정돈해보세요. 

평화의 호흡이 다시 리듬을 탈 것입니다.

좌절하고 의심하게 하는 것은 악의 교란책이기에 얘네들 성당 가자면 바로 튑니다. 잘 꼬셔보세요. 악은 굶겨죽일 대상이기에 세례 서약시 "끊어버립니다" 응답을 준비하며 성호경을 바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더욱 즐겨 들어주실 것입니다. 알리의 '서약'이라는 노래도 추천합니다.

 

하느님이 의심이 대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묵상으로 정채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 내 머리를 의탁하도록 노력합시다. 

베드로는 "내가 누구라고 보여지느냐?"는 예수님 질문에 "당신은 그리스도 하느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형제님 또한 계속 믿는다고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미사시 영적 예물로 바치면 됩니다. 

신앙생활을 익히다 보면 인간의 고정관념 또한 어느날부터 고통과 기쁨 해후하여 하느님 신비 은총과 사랑으로 더욱 기쁘게 봉헌하게 될 것입니다. 

 

스포츠로 비유하면 히딩크처럼 아직도 배고프다 할 것이고 스페인전 4강 결정시 홍명보 선수의 마지막 킥 순간까지 눈에 불을 켜고 미동도 않던 히딩크 눈 빛이 기억나지요. 그 뒤의 박코치는 아이처럼 김치국물 미리 마시며 펄짝펄쩍 뛰던 모습도 기억나지요? 이처럼 능력 유무의 감독들이 일희일비하는 것도 내 영육 거울로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세상속의 모든것 즐겨 관찰하는 거룩하신 당신의 영안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주님을 진실로 믿는다고 확실한 응답이 안 나온다고 슬퍼하거나 노하는 것은 그만큼 의지가 목마른 것이고 죽으면 즉시 배반하는 돈과 명예조차 초탈하며 바쁜 사람들은 그럴 여유 없기에 일생을 개미처럼 가족만을 위해 살 것이냐, 어둠에 진을 친 거미 인생으로 머물 것이냐에서 꿀벌과 인생 더해주심에 감사드리면 됩니다. 

 

감사를 더 좋은 찬미기도로 오르고픈 마음 또한 잘 다스리면 됩니다. 방법은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주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미사시작으로 마음의 창 세 번 두드리는 자비송을 나누는 것은 너와 나의 생활속의 준성사 즉, 성사 준비와 기도의 최고봉 관상기도 등정 또한 즐기게 될 것이고 설파꺼지 이어질 수 있는 움직이는 침묵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의 의문점들은 가브리엘 대천사께서 처녀이신 성모마리아님께 성령으로 아기 예수님 잉태하신 소식 이어져 마니피캇으로 응답하신 은총을 묵상해보세요. 더불어 '주님의 종'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삼위일체 성사로 임하게 되는 삼종기도에도 잘 나타나 있을 것입니다.

 

엄마, 아빠, 자녀로 이루어진 세속 가정을 성가정으로 봉헌하기 위해 수많은 신자들은 오늘도 여행을 떠납니다. 계속하여 여로가 귀로되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를 위하여 천주교 문패명 '가톨릭'도 잘 기억해두시고요. 서울대교구 홍보분과 권고사항인 '가톨릭'을 '카톨릭'이라 표기하면 기도로 보좌해주면 됩니다.

 

이상적 형태라고 나온다는 논리는 자칫 점괘같은 늬앙스가 따르니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수도자들의 고찰기도를 바라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나의 하느님, 오늘 제게 무슨일이 생길지 저는 모릅니다. 주님께서 영원으로부터 저의 더 큰 선을 위하여 미리 보고 마련하신 것 외에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뿐이오니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기도등이지요. 이는 바둑 고수들이 스승으로부터 평생 지도대국 한 두번 나누듯 침묵 속의 면형무아 신비인데 침묵 또한 보편 대화이기에 진정한 침묵을 원한다면 사랑과 가치의 만남을 성체 조배로서 먼저 생각부터 침묵연습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묵상은 성모님까지만 머물수 있는 한계가 따르고, 관상은 하느님안에 일치하는 더 흘륭한 기도지만 영지주의 태클에 넘어질 수 있으니 최고의 감독과 선수의 응집력으로 임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전오기로 일어나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맙시다.

 

부모, 고아 가정 또한 영육 일치 가정으로 얼마든지 도움 줄 수 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마리아가 더 좋은 몫이란다."의 예수님 말씀을 복기합니다. 교리를 마친뒤 입문성사인 세례성사를 통한 영혼의 생일을 맞을 때는 그 전의 육생일과 세 번째 영원한 탄생 또한 주님 빽을 우선 섬길 수 있도록 미리 감사드리며 영육적으로 13세 권고인 견진성사로 임하면 아홉가지 슬기의 선물 또한 받음으로써 주님의 종 신분이 친구의 신분으로 격상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날을 위해 더욱 줄겨 복음화로 대처하면 됩니다. 

 

무언이던지 하느님 빽으로 즐겨 생활속의 준성사로 자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세속 공동체는 처음엔 단 맛 등으로 네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홀로이 머물게 될 것입니다. 나는 "작업에 관심없다.", "노래 못한다.", "마이크 없다." 등의 그것들은 새빨간 3대 거짓말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느님 사랑과 자비는 무기력한 나로 하여금 자유에서 해방된 나를 인도하시기에 이를 위하여 영원히 죽지 않을 영혼의 병원도 정기 지향으로 즐겨 치유받으면 됩니다. 이를 위한 기도, 공부, 봉사, 성사, 공동체 생활을 그리스도 다섯 상처와 연계하며 즐기길 원하는 사람들도 바라보세요.

 

때때로 사랑 아무나 하는 것 아니기에 파견 또한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님을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할 것입니다. 공감을 동감으로 인도받는 너와 나는 모든 선택과 결재권 또한 주님께 되돌려 드리게 됩니다. 이러한 자세 또한 소중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신자들이 약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겉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 위험할 수 있겠다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잠심의 유혹도 경계하는 작전 병사로 자리하면 됩니다. 

 

불가는 자비를 위해 다만 바라보는 윤회가 아닌 비움을 선택하고, 그리스도가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서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채웁니다. 이로써 "무엇을 채워야 할 것인가?"의 고민을 주님께 되돌려 드릴때 보수와 진보의 인격적 만남과 화합 방안 또한 샘솟듯 받고 또 일구어 낼 것입니다.

 

무의식은 존재이지만 형상이 아니며 무서운 것도 아니기에 무관심이 가장 나쁜 것이지요. 무의식은 선교와 전교 대상이자 공원 또는 내 마음의 집으로 가꿀 대상인 것입니다. 불가에선 그래서 가장 심한 지옥이 무관지옥이라 하는데 성령의 의지는 그런것 모두 다채롭게 가꿀 힘 주실 것입니다. 알아야 면장을 하는데 우리는 간단한 진리를 모르기에 그 사람 따라 여기저기 방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보속하는 자세는 이웃을 내몸처럼 여기며 벗을 위해 생명 바치는 여정으로 이어지기에, 인간의 이성으로는 한계가 따름을 보게 됩니다. 일단 한계 또한 아름다운 것으로 믿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아름다움'이라는 시를 추천합니다.

 

낙태는 세상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어머니 태중을 무관심을 야기하는 유혹으로 무고한 아기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행위로써 아기에게 능지처참을 범하는 살인 행위입니다. 이에 어떤 수녀님은 어두운 길에서 치한의 성폭행으로 임신하게 되었고 수도원을 나와 아기를 낳고 기른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청년은 어두운 밤 길 그녀의 불꺼진 창 홀로 향하던 길을 어느해 부활절 미사 마치고 그녀와 함께 걸을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씨는 밤길 여자 친구와 걸을때 치한을 만나면 어찌 할 것인가요?", "고마울 것입니다.", "왜요?", "당신을 위해 죽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

 

청년은 한동안 수녀와 치한과 자신을 찰고하게 됩니다. 마지막 날 안개꽃 가슴안은 로사는 도민고에게 나타나 이"꽃말을 아시나요?", 무응답으로 나오자 더욱 조심 스럽게 "엄마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얻으라지만 저는 제가 사랑하는 남편을 얻고 싶어요."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묵상으로 이끄는 사랑은 그렇게 하느님과 함께 끝장을 보는 것입니다. 논픽션을 근거로 픽션 또한 대화+노래처럼 비처럼 음악처럼 더욱 멋지게 빚어내는 장인 정신을 부여해 주십니다. 그날 이후 불꺼진 창 마주하던 벤치와 가로등에게 인사하지 못한 회한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가슴으로 내려온 사랑으로 시나브로 미리내 여정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법을 망각한 인간의 법은 과학적 사고와 신앙적 사고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태아가 세포에 불과하다는 사고는 신앙적으로도 제일 위험한 물질주의, 생명경시형 합리화 유혹의 바이러스입니다. 그것에 대한 크로스 체크가 정채한다면, 물도 고이면 썩기에 지고지순하시며 전능하신 하느님 안전에서 죄인일 뿐으로 보일 것입니다. 

 

의견 분분한 세속 법적인 것들을 걸림돌 아닌 디딤돌로 뛰어넘고 싶다면 묵상과 관상기도를 임의 것으로 공부해두세요. 인간의 눈만으로는 교회내 공동체 생활도 하느님 일을 한다고 모이지만 인간의 일로 인한 다툼을 제공하기에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미사를 통해 삶과 죽음 하나인 것 바라봄으로서 치유 받을 것입니다. 끝없는 듯 보이는 의무감과 해치움을 이겨내는 묵주기도는 깊은 나와 너이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성모님 발아래 장미화관 바치는 기도 연합입니다. 응원곡 팝송 '페이퍼 로즈'도 들어보세요.

 

산모의 생명 위독한 위기 순간을 좀 더 깊이 대응하고 싶다면 태중의 장애인을 낳고 기르는 장애인 가족도 생각해 보세요. 장애인 인식개선 방안이 이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안의 기도 네 단계는 1. 두레박, 2. 펌프. 3. 수도꼭지에서 4. 소나기 단계로 좋은쪽으로 확실하게 미쳐가는 단계가 될 것입니다. 짝퉁 사랑에 속는 사람은 학창시절 명석했던 사람이 정신병으로 고행하는 것도 시나브로 현상인 것이기에 그러한 것들 예방하기 위한 부대원으로서 활동하는 것 또한 돌아보면 알게 모르게 보내주신 소나기 은사의 바오로 다마스커스 회두 사건, 베드로의 쿼바디스 도미네 사건이 내사랑으로 조명되는 것입니다.

 

성을 SEX 국한으로 머물게 만드는 사고는 세속적인 본능입니다. 자극적인 것들과 유혹과 향락이 난무하는 이시대에 한국 환경이 세계적인 낙태, 제왕절개, 교통사고, 이혼, 자살, 저출산율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복음화 병사로서 차고도 넘치는 현장이 우리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싸움구경 불구경 선호 군중심리를 조종하는 어둠의 세력에게 끌려 다닐수 있는 사고는 모두 분리 수거할 수 있는 능력으로 대처하면 됩니다. 

 

사형제가 피해자를 되살릴 수 없기에 성 또한 Spitit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유혹 또한 보다 강력한 수비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순의 창으로 그것을 공격하기 보다 보습화로서 이루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그것으로 이웃을 해치는 칼이 아닌 부억칼로서 내 영육의 요리 즐겨 준비하면 됩니다. 악은 진도개를 발바리로 만들어 이리저리 빠르지만 느긋하게 된장처럼 그것이 무르익는 것을 관상과 묵상 연합 작전으로 임하면 됩니다. 

 

위기의 임산부 또한 햄릿의 독백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독백은 기도=대화의 반대말입니다. 사람들에게 대화의 만대말 맞춰보라면 千명에 잘해야 한 명일 것입니다. 하느님만 들어주시는 독백(답을 미리 알려드렸으니 친구들에게 한 번 퀴즈 내보세요. 못 맞출 것입니다.)까지 알아 듣는다면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거나 무당일 것입니다. 무당은 기도보다 주문을 합니다. 군중들을 조종하려 들다가 거의 망가집니다. 천주님의 가르침 천주교를 믿는 마음으로 자리하면 됩니다. 천주님 전례와 말씀은 헤어진 죽은 모든 가족의 영혼까지 도움을 전할 수 있습니다. 천주 성부와 하나되는 천국 입성길 또한 조명될 것입니다. 

 

임산부 생사 문제는 순교자 행전을 공부해 보세요. 평신자들의 녹색순교와 성직자들의 백색순교, 피의 순교자들의 적색순교 하나되어 목숨바쳐 희생하신 민주화 영령들의 노고 또한 새롭게 묵상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속에서 방황하는 이방인의 파도를 답습하게 되고 피함 또한 답습할 것입니다.

 

싸움구경, 불구경 위주로 방영되고 있는 시대 언론 대중주의로 인해 국민들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함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은총에 마음 열면 유혹에 말려든 국민의 사회복지 관심사와 비례된 다섯 후보 후순위 복지정책도 식별 대처하게 될 것입니다. 강산에의 '거꾸로강을거슬러오르는저힘찬연어들처럼'을 추천합니다. 이는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권력가의 논리를 인간의 귀로 들어온 군중 사고 결과입니다. 너와 내가 싸우고 극복해야 할 대상은 물질주의, 생명경시 유혹인 것입니다. 이를 '주모경'으로 대응해보세요.

 

우리나라 환경은 모르고 짓는 죄로 인한 낙태로 인하여 평생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에 영육적으로 약하고 가난한 이들과 복음화를 이루는 것은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유언에도 나타나 있듯이 완전한 저축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그러한 저축은 내 그리스도 향기도 더욱 즐겨 보고 듣고 믿는 모범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악을 처부수러 지옥으로 처들어가는 돈키호테 정신 또한 성령 은사 없이는 미로차기에 지나지 않기에 내 생각이 율법주의인지 바리사이인지 평상심 안의 말씀인지 돌아보는 영육 거울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여인들은 폭력을 걸림돌로 거부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남자들은 말빨이 여인보다 딸리니 폭력을 디딤돌화 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 성령 발성으로 이룰 수 있도록 남중 내편 안의 해 마음으로 미사에 임하는 것은 금상첨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내가 미혼이라면 또는 별거라면 잠자는 숲속의 공주까지 깨우는 왕자의 능력도 얻게 될 것입니다. 종교 빙자로 강압으로 미혹까지 하는 사람을 본다면 하느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입으로 성령의 의지로 하나 되는 성호경을 바칩시다. 인간의 의지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신앙의 신비 또한 다시 보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너와 내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가 이미 세상을 이겼노라!" 신앙인은 이를 더욱 믿고 닮고 따르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타고남보다 더 위대한 것이 후천적 노력이기에 부활의 찬가로서 그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투리인 헷갈림은 가슴과의 섞갈림 표준어로 혼용해보세요. 그럼 보다 범위를 넓게 바라보는 시야로 쇄신 될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그 흔한 사랑 아닌 서로 같은 방향 바라보는 사랑이고 싶으면 하느님께 완전한 본드 달라고 기도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뻔스럽더라도 좋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으로 봐주실 것입니다. 이로써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 되게 하소서"를 가장 기쁘게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육 건강을 먼저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번제물보다 작은 선행을 더 보시고 좋아하십니다. 하느님도 육체의 고통으로 "목마르다." 하시고 영혼의 고통으로 "엘로이 엘로이 사박다니!"를 외치셨기에 십자가상 예수님 일곱마디를 묵상으로 대응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믿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비복음을 좋아하는 악령의 유혹 또한 만만치 않기를 이를 나약한 인간의 머리로 상대하는 것은 휘발유를 안고 불속에 뛰어드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이는 어둠이 빛을 이길수 없는 원리로서 기도 기억하면 됩니다. 새벽과 노을의 노래가 남의 일이 아닌 내일이기에 헤어진 이들 아픔을 위한 감성을 위하여 한설민의 '어떡하니'라는 노래도 추천합니다.

 

누구나 섞갈림의 은총을 받고 있으나 이에 고민을 동시에 다만 그리스도 제대위에 올려놓을수 있도록 눈을 감고 감아 보세요. 제대 봉사자들의 노고도 좋은 그림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용복의 '그 얼굴에 햇살'을 추천해 드리지요. 형제님의 고민은 그 청년이 처음 접한 이용복 노래 '줄리아'를 닮아있군요.

 

사람은 먼저 홀로이 머물며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꿈과 잠으로 이어지는 두가지 기도는 살아있는 지금의 나를 쇄신시켜 줄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확실한 주님 사랑과 가치의 탕평 지혜를 주시는 성당 항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더욱 건실하게 증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가지 지양 한개의 신심단체 가입 위하여 조금씩 관찰해 두세요. 관상기도에 이를땐 "봉사는 관리가 아니다."의 문도 지나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봉사던지 관리와 진정한 탕평으로 이끄심을 위하여 머리와 가슴 부활 일곱통로를 즐기는 자세 또한 이어질 것입니다.

 

기도는 1. 곰곰히 생각함으로써 2. 비우고 3. 나누며 4. 겸손과 섬김력을 저축하며 채우는 행위입니다. 이를 위한 갈등 과정에서 신앙인들은 영육의 갈증과 배고픔으로 성탄과 부활 하나되기를 청원함으로써 청원보다 감사가, 감사보다 찬미기도가 훌륭함을 낙천성 회복으로 해후하게 될 것입니다. 섞갈리는 부분들은 더욱 기본과 원칙 추구로 대응하면 됩니다.

 

기도를 통해 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신비로운 과정인 것입니다. 이는 알게 모르게 주사위 숫자를 미리 정해놓고 기도하는 결과이기 때문에 성모님 묵상과 하느님 관상기도의 조화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또한 누구나 반대 현상으로 하여금 타산지석의 거울을 살피게 되는 것이지요.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첫 자리가 주님 사랑인 것 잊지 마세요. 이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준수할 수 없는 십계명 공부로서 두려워 하지 않고자 대응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고통의 신비도 함께하는 것이기에 햄릿의 독백 또한 지나가는 것입니다. 과정에서 흔들릴때는 가장 강하시면서도 연약함으로 오신 주님의 표상 촛불을 켜보세요. 흔들리면 흔들리는대로 임하는 자신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더 좋은 길 들어주신 것 맞습니다. 노사연의 '바램'이란 곡도 들어보세요. 미뤄줌의 신비 또한 동력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이때의 "미루다." 역시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만 모시는 긴장의 끈 잃지 않도록 즐겨 택배하면 가슴으로의 심장과 함께 소금 3%도 더욱 자연스럽게 흐르고 이어질 것입니다.

 

이거다! 하는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는 것도 제로 베이스 문제로서 침묵, 가수들의 노이펙 환경으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존재하지 않음은 존재의 공원이기 때문입니다. 가수들이 왜 기도환경에 가까운 노이펙 환경에서 노래하고 이팩으로 더빙하는지 음과 음 연결 공간을 더 아름다운 보이스로 연결하는지 그것들을 듣는다면 음악 청취 또한 배가되어 세상 최고 악기인 형제님이 더욱 악기소리 깊이 들어 협연하는 즐거움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고정 관념은 노이펙으로 노래하면 더 힘들 것이다. 단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직접 부르고 들어보면 훨씬 순수한 놀라운 내 호흡 소리들도 들릴 것입니다. 하늘나라 통장 준비로 자리하여 말하기 5점, 듣기 10점, 쓰기 15점, 외우기 100점, 전하기 200점, 실천하기 300점의 복음화 통장으로 영원한 생명 전대사 승차권까지 팍팍 죽은 영혼 한 분에게도 투자해 보세요. 그러면 왜 친구에게 돈 빌려줄 때 그냥 주는 것이 상책임을 깨닫게 될 것이고 남편의 검은 돈을 경계하는 내조자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다만 참여하는데 보람을 두고 가치는 그렇게 식별하는데 보람을 느낍니다. 이 둘도 붙여주시는 지상과 천상 최고의 성부와 성모님과 함께 거듭남은 사람+시간 문제일 뿐이니 너무 걱정 말고 기도=노래=성가(두배의 기도) 작전으로 즐겨보세요.

 

마음의 문제 맞습니다. 마음은 이성과 영혼이자 통로입니다. 그것을 쇄신하며 육체과인 감성과 연합하는 것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의 풍성한 영성쇄신 운동도 바라보세요. 아는 것이 부족하다 함은 매우 현명한 겸손과 섬김의 디딤돌 될 것입니다. 마음의 문제를 쇄신하고 싶다면 성체조배를 즐기면 됩니다. 답답한 고민도 완전한 사랑과 자비이신 성령의 위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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