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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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62.110.*]

2023-11-12 ㅣ No.12724

성당으로 나가기가 두렵습니다..

2023-11-07 ㅣNo.12722
무종교였다가 천주교로 처음 입교한 신자입니다.
요즘들어 성당으로 나가기가 두렵습니다.

심하게 아프거나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주일 미사는 꼭 나갔는데 신부님이나 교우 때문에 상처 받아서 안 나갔던 적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신앙생활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 불꽃처럼 활활 올랐으나 요즘은 불꽃마저 꺼져버릴 정도로 많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이사도 교적도 성당도 옮겨서 주일미사 참석은 했지만 새로 옮긴 성당에서도 또 상처를 받아 지금까지 안나가고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마음 속에 하느님이 있고 괴롭거나 힘들 때에 매달리고 싶고 하느님께서 저를 초대해 주신거니까 주일 미사 참석을 안했으니까 고해성사를 하려고 하는데 본당의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 하기 너무나도 두려운겁니다. 회개하고 영성체 모셔야 되니 고해성사를 할 수 밖에 없는데 고백하기 두렵기도 하고 다른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봐야지 해도 마음 속으로 또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고해성사 안하면 죄를 용서받지 못하니 영성체도 모실 수 없고요.. 용기내야 되는데 용기를 낼수가 없네요..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래형은 '되는대'이고 과거형은 '되는데'랍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둘 다 큰 문제는 아니랍니다. 그러나 자아(Ego)로 보면 포기 앵기는 그리움이요, 기다리시는 하느님과의 신원과 사명으로 생각도 침묵으로 임하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순간속 영원을 허무속 영광을 죽음속 생명을 위해 삼종기도 또는 식사후 기도를 헹구고 채워보세요.

일단, 임 가슴 속 깊은 임과 함께 성당(성전)으로 향유하며 임하고자 하는 지금처럼 친교를 자주 하도록 하세요. 지금의 두려움도 겸손의 발로가 될 것입니다. 성당이라는 곳이 아프거나 급한 일로 오신 분들 또한 많겠지요. 그래서 입당시 성수로써 구마기도를 하고 제대를 먼저 바라봅니다.

우리가 교우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은 이처럼 하느님이신 제대를 먼저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인데 그럴 땐 제대 위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예수님이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며 임처럼 위를 바라보시는 것도 느껴질 것입니다.

제대 바라볼 땐 비행기 이륙처럼 지평에서 하늘 바라기 시선이었지요? 불꽃 꺼진 검은 심지도 보일 것입니다. 임은 대체적으로 미사 적응차 참례하는 과정에서 일단 기어 옆 핸드 브레이크도 덜 내려져 참례치 못하고 보는 경향이 비춥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주도권을 위탁하기 미숙한 우리 모두는 같은 죄인이니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원래 성당은 더 큰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때때로 갈등으로 맞이하는 틈새 메우기시에는 셉쎄비처럼 느리게 기도하지 말고 흥민이처럼 잽싸게 기도할 수 있도록 즐겨보세요.

"솔직히 끝난 줄 알았다?" '부활' 손흥민은 연구 대상→EPL 최고 '반전 스타' 우뚝

하느님께서 흥민이도 사랑하시어 한꺼번에 파트너들을 벤치에서 쉬게 해 주시는데 임의 침묵에는 그러한 벤치들 있고 가로등 있고 이정표 있고 불꺼진 너와 나의 창 있는 것입니다.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은 결코 돌아보지 않는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바다로 향유합니다. 동그라미 수사님의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네' 시 한 수에는 아래와 같은 메시지가 있지요.

물이 고이면 넘치는 사랑인 것을

그 때 나는 몰랐었네

그대 사랑이 다시 날 찾아온다면

영원한 사랑만 곁에 두리라

영원한 사랑만 곁에 두리라


가수들 중 좋은 소리들은 영원의 끝까지 비행기처럼 그 높은 곳으로 종적을 감추지만 아쉬움 없는 끝음까지 향유합니다. 늘 깨어나고자 하는 그 갈망으로 더욱 힘을 빼며 아쉬움 없는 노래를 하는데 음치도 이처럼 흥얼흥얼 댈 때 진짜 노래를 만납니다.

아기처럼 환생 없고 부활 있는 초성을 맞이한다는 것이지요. 누구나 그렇게 초성을 잘 부르는데 곧 삑싸리가 나거나 호흡이 엉키는 것은 왜일까요? 위처럼 위와 아래로 지평과 수평으로 깨어나기 작전 노래를 호흡 과정에서 침묵(지금처럼 잠시 멈춤 비유)이라는 매우 중요한 노래 장르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를 하려고 하는데...,라는 지금의 살아있는 성사생활 향유 또한 기억만 하더라도 훌륭한 기도이니 걱정마세요. 곧 다시 자동빵 기도로 흐를 것입니다. 고해성사시 사제를 두려워 하는 것도 하느님을 너무 멀리서 찾는 시행착오인데 고해소에서의 사제는 하느님과 고해자 사이의 중재자입니다.

영혼의 병원인 고해소에서 두려워 하던, 즐거워 하던, 슬퍼하던 내 모습 또한 지나가는 것으로 뻔스럽게 고해하는 것도 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번엔 사제들 제일 힘들다는 고해성사를 배려하며 친구처럼 수다 떨듯 하거나 축약으로 고해=풀어주어 가게 하는 작전을 스켓치 함은 어떨까요?

있는 척이던 잘난 척이던 함축하는 것이 시이니 시처럼 음악처럼 잘난 척 생쑈로 고해하는 것도 한 방법일텐데 상대聖 성모님 맘의 지금 임이 절대聖이신 하느님 만나는 고해는 하늘에도 길 있는 기찻길을 모노레일 자기 부상으로 다시 88하게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크리스마스=그리스도 미사=그리스도 제사=그리스도 예배 순간인 것입니다. 순간 속 영원을 향유하는 임은 복되십니다. 행운 꽃말 네 잎 클로버를 향유하며 행복 꽃말 세 잎 클로버를 밟지 않으려는 임이 복된 것입니다.

일단 다시 올 여름에는 임 닮은 한 생 가족 위해 수고하는 개미들 덜 밟도록 기도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글 쓰는 중 치매 어머니가 이불 속 숨겨 놓은 2만원을 꺼내 주시면서 "네가 만원 보태 아버지 연미사 봉헌해줘" 하십니다. 개인적으로 오늘은 평신도 주일이자 필자 아버지 십자가의 성요한(가 세례명) 하재하(河在夏)님 53주기입니다. 또한 공적으로 차동엽 노르베르토 신부님 4주기로써 평신도 주일이라 하였습니다.

원래 평신도 주일은 바티칸 2차 공의회시 평신도의 빛과 소금 역할을 나누고자 시작 되었는데 한국평신도사도직 출범을 보신 264대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대림 첫 주일(금년은 12월 3일)을 평신도 주일로 하자 그러셨고 현 프란치스코1세 성하에 이르러 전례력으로 다음주 연중 33주일과 다다음주 연중 마지막 날인 그리스도왕 대축일(2023년 가해 마지막 날은 11월 26일) 앞으로 임을 위해 이사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사도 교적도 성당(천당=하늘의 배 비유 성당)도 옮겨서 주일미사 참석은 했지만 새로 옮긴 성당에서도 또 상처를 받아 지금까지 안나가고 있습니다.."

깊은 너이신 주님께서 위처럼 하신 말씀하신 메시지는 무슨 뜻일까요?

"너의 이동 축일을 기뻐하거라^^ 너의 상처 고맙구나... 안심하거라 내가 이미 세상을 이겼노라, 지금처럼 나를 잊지 말아다오~"

고해성사는 칠성사중 치유의 성사입니다. 치유는 완전한 치료라는 뜻으로 생각으로 맴돌면 불가에서도 안쳐주는 윤회가 됩니다. 구글 스케줄란을 활용하시어 성사생활 계획을 복구하시면 됩니다. 지금처럼 준성사 생활도 차근차근 복원시켜 주시고 즐겨 밀도를 더하게 될 것입니다.

윤회도 때때로 틀린 것이라기보다 지금 나로서 깊은 나와 다른 것이려니 하며 다스리는 인사, 정보, 작전, 군수로 대처하면 됩니다. 걱정도 팔짜라면 두 배 사랑이니 다시 88하게 복구할 때 홀로이 머물며 다른 사람으로 뛰면 될 것입니다. 체력 저하 문제라면 느긋하게 살아서도 죽어서도 미운 사랑 복구하면 될 것이니 너무 조급하게 하지 않도록 합니다.

틈새 메우기는 현대인들 부모 고려장 요양원으로 보내고 물질주의, 생명경시 망태에 이끌려다니는 것 예방 접종같은 것으로 요양원보다 더 힘들다는 어느 요양보호사 말씀처럼 치매 부모의 노인의 추한 옹고집+난청+말로만 알았다 하시는 와중에 기싸움을 반복 아닌 진화로써 대처할 힘(틈새 메우기)을 제공하시는데 우리가 세례 받을 때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부여 받은 것처럼 보너스로 박자, 음정, 발성 또한 삼위일체 하느님처럼 통일로 노래하는 것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건 하느님 한 분 만을 소유하려는 임의 참자아 순간이기 때문으로 "그리스도는 당신만을 믿습니다". 눈 감으면 더 잘 보이는 말씀 들린다면 "저는 그리스도의 은총만을 믿습니다."로 뻔스럽게 화답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낙천성 잃지 말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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