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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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385] 달과 달을 지시하는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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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1-11 ㅣ No.392

385번 글을 쓰신 분께

 

올려 주신 글을 잘 읽었습니다.

제가 조금은 격한 어조로 글을 쓴 것 같습니다. 나주를 찾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기적만을 쫓아다니는 ’몰지각한’ 사람들로 몰아부친 것은 좀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갈증으로, 정말로 회개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곳을 찾은 분도 있다는 것을 간과했군요. 이점은 죄송하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어디서 성모님이 발현하셨다고 소문만 나면 신자들이 몰려드는 것도 어쩌면 사목자들이 본당에서 신앙의 기쁨과 보람을 전해주지 못한 데에도 큰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본당 생활에서 신앙의 갈증을 가라앉힐 생명수를 찾았다면 무엇하러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까?

 

님께서 나주에 가보신 다음에 성체 도리를 깨닫고, 고해성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성실한 신앙 생활 속에서 신앙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시면서 예수님께서 원하신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님께서 살아있는 신앙 생활을 하게된 계기가 된 나주가 광주 대교구로 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많은 이들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된 것이 무척 안타까우실 것입니다. ’내가 회개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나주가 교회 교도권으로부터 반대를 받는다면, 나의 회개는 과연 무엇인가?’하는 의문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님께서 살아 있는 신앙 생활을 하시게 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확신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받아들인 신앙이 귀중하고 소중하고 값진 것이라는 것을 단 번에 깨닫지는 못합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 생활을 하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혹은 미덕지근하게 하고, 그래서 때로는 냉담도 하지요. 하지만 어떤 기회로 신앙의 불이 다시 지펴져서 뜨거운 신앙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런 기회는 물론 여러 가지입니다. 자신이나 친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당한 불행, 고통, 죽음이라든가, 또는 다양한 신심 운동(레지오, 꾸리실료,  M.E., 성령운동, 성서모임 등등)을 통해서 죽어 있던 신앙이 살아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이 새롭게 되는데 계기가 되었던 것을 애지중지 하지요. 예를 들어서 성령운동을 통해서 내 신앙이 새롭게 되었으면, 성령운동이 최고이고 절대적이라고까지 여겨서 모든 이에게 성령운동을 권하려고 합니다. 다른 이들이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면 마음의 상처까지 입으면서 말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신앙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계기가 된 모든 것들은 사실 도구일 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한 것입니다. 강을 건너게 한 나룻배에 불과한 것입니다. 목적지에 이르렀으면 그 도구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나주 역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도구가 교회 교도권으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으니 안타까우신 것이겠지요. 하지만 너무 그 도구를 변호하려고 애쓰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나주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면 사람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안 될 것입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아무리 사람이 노력해도 안 될 것입니다. 일단은 교회 교도권의 판단에 맡겨 두고 좀 지켜 보시면 좋겠습니다. 나주에 애착을 갖고 계시는 분들은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시면 된다고 봅니다. 교회 교도권은 어떤 곳에서 일어난 신기한 현상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어떤 열매를 맺는가에 더 중요성을 두고 있으니까요.

 

님께서 나주를 통해서 성사와 성서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도를 하게 되고 새로운 생활을 하게되었다면, 올바른 목적지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생활에서 가장 핵심, 중심되는 것은 성서와 성사 그리고 기도 입니다. 저의 관심사는 바로 이 핵심과 중심으로 신자들이 향하는 것입니다. 님께서 이미 이 중심에 이르렀다면, 그 중심에 머무르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신자들이 성서에 맛들이고 성사의 의미를 깨닫고, 기도를 하게 인도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꼭 나주를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것이 중심에로 이끌었는가 하는 것은 중심에 이르른 다음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또 중심에 이르게 하는 길은 상당히 다양합니다.

 

님께서는 나주를 통해서 성체 안에 그리스도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멀리 나주까지 거듭 가야할 필요가 있나요? 성체 앞에서 기도하면 된다고 봅니다. 물론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해준 장소에 대해 애착을 갖는 것, 그래서 신앙이 흔들리고 희미해질 때 가끔 그곳에 가서 자신을 다시 추스린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꼭 그곳을 찾아가서 기도해야 제대로 기도가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달을 보았는데도 아직도 손가락에 연연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모님은 우리가 예수님께 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며 구세주로 깨닫고 발견했다면, 그분의 말씀이 담긴 성서에 귀기울이고, 그분이 현존하시는 성체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님의 견해의 차이가 금방 좁혀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는 데에서는 일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정진하고, 기쁨과 보람을 느끼면서 신앙 생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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