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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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169 등... 사제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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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27 ㅣ No.1180

오랫만에 들어왔더니 감동적인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좋은 말씀입니다.

 

저는 서울의 한 조그마한 본당에 보좌신부로 있습니다.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행사는 교사들과 학생들이 알아서 준비를 하고 있고

제가 확인하는 건 결정된 최선을 지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 보다는 지양해야 할 보편적 최악을 피하고 있는가 하는데 있는데, 아직 그런 이유로 무언가를 수정하거나 금지한 적은 없습니다.

모두 교사들과 학생들이 잘 양성된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사들과 학생들이 하고잪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하고, 함께 있어주고, 본당 일뿐 아니라 그들의 개인 생활에도 관심을 갖고, 이름을 불러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갈피를 못잡을 때 조언 해주고, 어른들을 꼬드겨서 최대한의 총알 마련하고, 얼굴 마주칠때 웃어주고, 어려운 일 있을 때 들어주고, 그리스도가 얼마나 맛있는지 느끼게 해주고, 그래서 성당이 오고 싶은 곳, 재밌는 곳, 덕분에 자기 생활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늘 쉽지는 않고 반드시 잘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이런 자세가 어떤 면에서는 소극적이고 진취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사들과 학생들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맛들이도록 인도하는데 너무 소극적이지 않은가 반성도 해봅니다. 복음연구를 함께 하려다가도 교사들이나 학생들이 재미없어하거나 다른 행사준비하느라 바빠하면 다음으로 미루기 일쑤입니다.

마냥 따라다니기만 하는 것도 올바른 동반의 자세는 아닌데, 어떻게하면 더 큰 기쁨으로 인도할 수 있는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가... 늘 숙제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부님들은 (물론 청년들도) 좀더 적극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고 그것이 맞부딛히다 보면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봉사캠프를 가나 도보성지순례를 가나 위탁캠프를 보내나 자체 캠프를 하나.. 결국은 모두 좋은 것인데, 한번 이걸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신부님이나 선생님들이나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드물지만 이런 체험도 있습니다. 예전의 일인데... 예를 들어서 갑자기 불어닥친 태풍으로 학생들의 안전에 의문이 제기되어 출발 며칠 전에 일정을 변경하자고 이야기 했을 때... 몇 분의 선생님이 고집을 꺾지 않고 끝까지 강행을 주장해서 장시간 대화를 나눠 겨우 설득을 했는데 막상 출발을 하고서는 자기 조 학생들을 데리고 사라져 버리는(?) 불상사가 생기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마음 아픈 결정을 하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어느 한가지 일만 가지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때는 경력이 오래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양성이 충분히 되지 못한 선생님들이 대부분의 선생님들의 의견과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는데 후배 선생님들은 말은 못하고 결국 지도 신부가 총대를 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맙게도 지금 본당에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초등부 주일학교를 유년부(어머니교사)와 초등부(청년교사)로 나누어 모두가 만족하는 성과를 얻은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하고 싶고, 결과적으로 모두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초등부 선생님들이 숫자가 부족해 힘들어 하면서도 늘 기쁘게,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추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기서 좋은 것이 여기서 당장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버리지 않지만, 현재가 복음적이라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도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것도 하느님을 좀 닮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해 갑자기 초등부를 어머니교사로 바꾸어서 분란이 일어난 본당에서 지금 다시 청년 교사를 모집한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신부님들이 이렇게 성급한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의도로 한 것이라는 건 다 알고 있지요. 아쉽게도... 좋은 뜻만가지고 되는게 아니라는 걸 신부님들도 선생님들도 좀 더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여가면서 배워나가는 거 같습니다. 신학교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의외로 신부님들이 기억력에 한계가 많습니다. 저도 가끔 "아, 그래? 그럼 미리 좀 알려주지..." 하면 "신부님, 지난번에 말씀드렸쟎아요... 계획서도 드렸는데요..." 그래서 방에 돌아와 뒤져보면 벌써 정말 그런 내용이 있기도 합니다. 그럴 땐 참 미안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반대로 정말 교사들이나 학생들이 말 없이 일을 추진하기도 합니다. 일부러 안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럴 땐 좀 섭섭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결국 복음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해나가는 모습 보면서 혼자 속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곤 합니다.

 

어떤 때는 비공식적으로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볼 때도 있습니다.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방학 때 그런 일이 있는데, 야단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몇일이 지난 후에 조용히 왜 그랬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정말 뭐가 더 즐겁고 재밌는지를 이야기 할 기회를 찾습니다. 그러지 못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학생들의 요즘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려고 합니다. 단순한 금지는 별로 의미가 없음을 저도 학생 때 느꼈으니까요.

 

저도 젊어서 잘 삐지기도 하고, 교사들이나 학생들도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마치 고부간의 갈등처럼, 서로 잘 하려고 노력해도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물론 칼자루를 쥔, 힘이 더 센 시어머니가 먼저 이해를 하면 대부분 잘 풀리겠지요... 며느리의 협조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며느리도 나름대로 아는 것이 많지만, 복음의 힘에 대해서 시어머니가 좀 더 잘 식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다는 걸 인정하고 수긍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갈등들... 늘 존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신부님들끼리도 간혹 그런 일이 있습니다. 일부 독특하고 강한 성품을 지니신 주임신부님과 함께 생활하는 동료 보좌 신부님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 횡성수설했는데...

 

결국은 어떤 직분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얼마나 서로를 받아들이고 남이 되어주느냐 하는 구체적인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사제는 여유있게 청년들을 동반할 수 있도록 얼마나 양성이 되었고, 교사들과 학생들은 개인주의 세태 속에서 얼마나 공동체적으로, 복음적으로 양성이 되었는지도 관건이고... 사제라고 자동 빵으로 옳은 것도 아니고 청년들이라고 늘 정의로운 약자가 아닌 건 확실한데,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고 내가 생각하는 최선보다는 서로가 인정하는 최악을 피한 후 발전적으로 적응해 나가는 모습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하면서도 늘 거리를 두어야 할 필요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지금도 고집스런 신부님들때문에 상처받는 교우들이 있고, 고집스런 교우들 때문에 상처받는 신부님들이 있고...

 

하지만 계속 나아져 간다는 것에, 더 많은 신부님들이 복음적으로 본당 공동체를 동반하고 있고, 더 많은 교우들이 복음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음에 희망을 둡니다. 앞서나가는 사람에게는 늘 만족스럽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교회는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동성과 복음의 역사가 조화를 이루려다보니 천천히 변화할 뿐입니다.

 

교회는 그 누구도 아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간혹 우리 몸 어느 곳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매우 결정적인 부분이라 하더라도) 다른 부분들이 그 불편함과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치유되기를 기도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복음의 역사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함께" 변화하고, "함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 교우 여러분, 힘내세요.

희망이 늘 함께 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을지 모르는 신부님들, 우리가 양성받은 대로 복음적으로, 그리고 강생하신 하느님처럼 우선 그들이 되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도록 합시다.

 

주제넘게 한 마디 했습니다.

 

제가 누구냐고는 묻지 마세요. 그저 많은 보통 보좌신부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하느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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