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신앙상담 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1332께

인쇄

비공개 []

2001-03-19 ㅣ No.1356

원죄란 인류가 창세기때 지은 죄인데, 제가 알고 있는 바를 나누겠습니다.

악 이 타락한 천사라고 하지요... 그들 은 자신이 받은 천사 지위에  감사하고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응어리가 져서 더욱 악하게 되었고 천국에는 그런 것이 어울리지 않으므로 있을 자리가 없어  지옥으로 쫒겨났습니다.

 

 가장 높은 하느님, 신으로 숭배 받고 싶은 미칠 것 같은 욕구로 타올라

하느님을 이기지 못하고, 하느님의 옥좌인 천국도 더럽히지 못하므로,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인간이 있는, 보시니 좋았던 땅을 더럽히러 옵니다.

거기에 창조된 첫 인류인  순진한 하와가 걸려듭니다.

인류가 자신의 힘으로 하느님을 꾸준히 원하였다면 그 사랑을 받으시는 하느님께서도 흡족하셨겠지요.

그러나 새 창조의 신선한 은총에도 불구하고, 인간인 하와는 뱀을 원하게 되었고, 그에게서 베운 것을 가지고 짝인 아담에게도 갑니다.

판단할 줄 몰랐던  하와는 타락인 줄도 모르고 새로운 느낌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을 대담하게 합니다.

혼자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짝에게도 먹입니다. 혼자 타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자도 타락시키러 갑니다.

.

하느님의 뜻에 인류의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과의 상징은 하느님의 뜻 이외의 원함 즉 죄였습니다.  

하등부분인 육체를 공략하기 시작해서 상등부분인 영혼에까지 좀먹게 되는....

 

지금 우리보다, 원조들의 신선한 은총 상태로 인해, 훨씬 더 중대한 죄였다고 합니다.

아담이 "제 잘못입니다. 저 여자의 잘못은 제 사람이니 제 잘못입니다."라고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까요

하와가 "제 잘못입니다. 남자의 잘못의 원인은  저에게 있습니다." 라고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둘 다 핑계를 대고 만것이 결정적인 마지막 판결로 치달은 것 같습니다.

현실에 있어서도 ’내탓이오.’를 용기있게 말하고 개선하는 사람이 됩시다.

 

결과 에덴 동산에서 우리도 쫒겨나고 고통은 우리의 다른 이름이 되었고

우리가 만든 종교중에는 우리의 삶을 고통의 바다라고도 부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인류를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할 가능성을 주십니다.

여기에 여인의 후손과 뱀의 원수관계가 나옵니다.

새로운 하와이신 성모마리아와 새로운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걸어갔던  길을 거꾸로 가시는 희생을 함으로써, 우리가 원한다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원죄의 사함의 가능성을 주신 것입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고통을 겪은 하와, 우리의 처음 어머니는

그 고통속에서 회개하고 성숙해지셨고 지금 천국에 계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성자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으셨던,

구원의 협조자 이신  성모님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종교가 없어도 구원된다는 말씀은

실천적인 것인데, 그 실천을 하다보면 하느님을,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연히 권면에 이끌리게 된다든지... 막연히 거부감이 없어지든지...

왜냐하면 모든 사랑의, 선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시고

정말 꾸준히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느님은 자신의 모습을 내어 보이십니다.

사랑을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인류를 다시 창세기 이전의 깨끗한 상태로 되돌리는 ’댓가’를  자기 자신으로 삼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것을 위해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의 본성중 제2위인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통하여 인간으로 강생하심도 감사드립니다.

연약한 한 인간이 자기힘으로  고귀한 인간이  되기는 매우 힘듭니다.

하느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분은 ’원하면’ 얼마든지 도와주십니다.  

원죄로 인한 약해진 우리본성이 힘들게 하고 ,

살면서 죄로 끌어들여 결국 지옥으로 데려가려는 마지막 목적을 가진 악 도 힘들게 하며 , 세속이 힘들게 하는 표현은 잘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원죄가 사해지는 데에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기를  ’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죄가 사해지기를 , 그 댓가를 바치기를 , 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 댓가의 이름이신 예수님의 중요성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온전히 하느님이시지만 , 또한 온전히 인간이시기때문에  그 분의 모든 수난 고통이 가치를 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덤덤한 성격이시기보다는 감수성이 온전하셔서 더 많은 고통을 받으셨구요. (게쎄마니에서 피땀 흘리신 고민을 보면...)

착한 천사들의 유일한 슬픔은 자신들은 하느님을 위하여,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고통을 당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희생의 연장이 되는 성직자들의 고통에 경의를  표한다고 합니다.

육체를 가지고 그 유혹을 당하고 이기는 사람이 희생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이 희생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육체를 취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성 또한 영원하듯이 그 분의 인성 또한 영원한 것입니다.

그 분의 영원한 인성으로 겪으신,  고귀한 수난의 가치를 하나도 잃지 않도록 해야 겠습니다.

 

먹거나 자거나 쉬거나 부부관계나 ... 육체의 성격을 지닌 모든 것에 절제하기 시작하여, 정신적인 성격을 지닌 것에도 절제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데에 더욱 신경쓰는 (노력하는 이라고 못해서 개인적으로 죄송합니다.) 은혜로운 사순 시기에 감사드립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구약에 제물인 어린 양은 흠없는 수컷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 우리 신자 들로서는 그 제물의 연장이 되시는 성직자들의 거룩함(흠없음)을 위해서 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흠 있음을 비판하고 슬퍼하기 전에, 우리와 같은 본성 가지셨으므로 실수를 용서(?)하며 이해하며, 그분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 안하는 사람이 비판부터 하지 않을 까요....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이 입 밖에 나온다는 성서 말씀.

고해 성사를 볼 때도 고해 신부님께 성령의 빛을 주시도록 간구하고 고해하는 습관을 가져 봅시다.

한 성직자를  넘어뜨리는 것이, 수 많은 신자들을 넘어뜨리는 것보다 훨씬더 효과적이기에 그 분들은 특별히 더욱 고통당하고 계십니다.

사제관 창문에 악 들이 대롱 대롱 매달려 들어갈 틈만 노리고 있다는 표현은 마음아픕니다. 마더 데레사께서도 우리는 거룩해지기 위해서 거룩한 사제가 필요합니다. 고 하셨습니다.

그 수도회에서는 수녀님들이 사제 한분을 각자의 아들로 삼아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교황님도 청하셔서 한 수녀님의 아들이 되셨다고 합니다.

 

아침(9시)부터 일한 사람이나 저녁에 조금(4시반부터) 일한 사람이나 같은 몫(한 달란트)을 받았고, 9시 부터 일한 사람이 나은 처우를 바라는 항의함에 주인장은 한 달란트를 받기로 하고 일한 것이니 내 처분에 상관 마시오... 합니다. (성서)

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과 교육으로 선업을 많이 쌓은 사람이나, 죄 많다가 다리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그 2.5초의 짧은 순간에라도 "진심으로" 회개 했다면 , 진심으로 하느님을 원했다면, 같은 천국을 주시겠다는 성서 말씀에, 즉 마지막 선종하는 영혼의 상태가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성교회의 가르침에 , 그 ’원한다’는 중요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죄인들을 위한 기도나 희생의 지향은 바로 그들이 하느님을 ’원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시 의인보다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그들에게 더욱 자비하신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위 자살 예는 짧은 순간의 극적인 표현일 뿐 자살과 구원의 관계는 잘 모릅니다.)

겉으로는 별일 없이 평범한 사람이 (세속적으로는 별 탈없는 사람이) 고집스럽게 하느님을 원하지 않으면 구원 받기 힘들테니까요.

그래도 매일 많이 기도하시는 수녀님들 덕분에 겨우 회개의 은총을 얻어주어 하느님을 원하게 되어 구원되는 경우가 있구요.

 

우리는 예수님을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먹는 것으로 남겨지신 예수님을 (성체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준비를 잘 해야 할것입니다.

생각없이  먹기만 해서, 육체적인 관계만 해서, 모령성체를 하지 말고

영혼으로 예수님을 ’원하고’ 모시는 영적인 관계가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가끔 유혹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이 아직도 그 유혹거리를 원하고는 있기 때문에 계속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호히 잘라내고 힘을 내면 , 그 괴롭히던 것이 별 힘을 못 쓰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것을 단호히 원하지 않으면 해결이 쉽습니다.

죄가 많더라도 끊어버림을 강하게 ’원하면’ 해결이 되고 (힘들수록 계속 강하게 다시 끊어버림을 원해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죄를 범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긍정한 만큼 ’원해본’만큼 잘못한 겁니다.

(마음으로 이미 죄를 범했다는 예수님 말씀)

 

오늘은 성 요셉 대축일 입니다.

사순절 안에 대축일이 3월 19일 성요셉 대축일과

3월 25일 성모 영보 대축일 (로사리오 환희 1단) 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두 날을 맛있는 음식 포식하는 날로 삼습니다.

긴 절제와 단식 가운데 인간인 우리육체를 위로 하며 동시에 감사드리는 기쁜 축제일로 삼습니다. 수도원들도 이날은 좀 음식을 드실거라 상상하며...

단식과 함께 하는 기도의 큰 힘은 성서에도  있지요.

 

기쁜 사순절, 은혜로운 사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1344께 님이 무엇을 원했는지 바라보십시오. 만일 당했다면...님은 그 상처로 순교의 꽃을 순결의 꽃과 함께 가지고 계시니 안심하십시오. 조금이라도 원했다면, 강하게 잘라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1347께 악은 실체가 있습니다. 그들의 교활함은 우리가 대적이 않되어 하느님의 말씀과 가도로 물리치라고 하십니다. 선의 결핍과 악의 공격은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진리와 섞어 말하고, 논리로는 당할 수가 없으므로, 함께 상대하기보다 성서의 말씀으로 간단히 물리치고 침묵으로 기도로 도우심을 청하는 방법이 광야의 유혹때에  예수님께서 몸소 하신 것입니다.

 

1348께 유럽의 성직자들의 공공연한 비밀....정말 이렇다면  하느님의 마음 아프심을 느끼며  기도할 일입니다. 죄인을 사랑하시는 것은 그들의 죄를 사랑하셔서가 아닙니다.   그런 죄인들에게도 성령이 작용하신다면 그들을 구하시기 위함입니다.

 

단순한 성적 취향이라고 동성애를 표현하신 것에 반대의견입니다.

성은 이런 저런 취향종류로 모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거룩한 이유가 있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이란 1.  어울려 생명을 만들어 천국의 주민을 늘리고,2.  즐거움은 하느님과의 천국에서 혼인 잔치의 상징이며 3. 혼인 성사로 영혼의 성장도 연결된 부부간의 친밀표현의 한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치 먹는 것(식욕)도  적당히 절제하며 깨끗하게 먹을 때에 건강해지듯이 (성욕)도 하느님의 뜻안에서 이루어져야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구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355께 포르노를 보는 것이 성령을 크게 모독하는  것이라고 성청에서 발표했다는 소식은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순명으로 단순히 따르면 되니까요. 오소서 성령님, 지극히 사랑하시는 당신 정배 마리아의 티없으신 원죄없으신) 성심의 힘있는 전구를 들으시어 오소서.

 

저도 답답한 마음에 외면하는 잘못이라도 없애자고 막 적어 보았습니다.

 

우리모두 하늘나라에서 다시 뵙시다.아멘



257 0댓글쓰기

신고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