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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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80 자위행위와 신앙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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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8 ㅣ No.2081

 

아래에 질문을 올려주신 님께서는 20대 정도의 젊은 분인가 봅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고 제대봉사도 하면서 성소에도 관심이 있다고 하셨는데 가톨릭의 참다운 신앙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지와 하느님을 향한 착한 양심을 소지하신 분으로 이해합니다.

 

우리 인간의 성적인 욕구는 하느님께서 주신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잘못 사용할 때 죄가 되는 것이지요. 사실 성의 참다운 목적은 서로 자신을 내어주는 아름다운 행위이며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목적으로 성을 사용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지만 쾌락을 위해 성을 사용하는 경우에 죄가 되는 것은 님께서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죄는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기정사실이지만 우리 자신에게도 해가 되지요. 그래서 간음, 매춘, 자위행위를 교회에서는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은 나를 내어주는 행위이지만 자위행위는 자기 중심적이고 쾌락 중심적이기 때문에 인격적 성장에 커다란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위행위를 할 때에는 자연히 음란한 생각을 거의 동반하게 됨으로써 이성을 인격으로 보지 않고 성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어 올바른 인간관계를 깨트리면서 폭력적 성향도 높아지게 만드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말지요.

 

현재의 성에 대한 개방적인 사회 현상과 풍조에 휩쓸리게 되는 현실은 우리 젊은 이들에 있어서 옛날에 비하여 성을 자재하는데 더욱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그래소 성에 대해 갈등을 겪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자, 사회공동체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절대적인 왕도는 없지만 우리가 성에 대해 알아야 할 몇가지 영적인 사항을 신부님의 상담 내용을 근간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첫째로, 성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을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릴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성욕이 소유욕과 만날 때이지요.

 

둘째로, 성욕을 느끼거나 성적 매력을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의 에너지가 충만함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하게 충만한 삶을 주실 때 그것은 얼마나 더 클까 하고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지요.

 

셋쩨로, 소유욕을 우리가 절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항상 죄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위해서 상대방을 인격적인 면 보다는 동물적인 면으로 이용하게 되니까요.

 

넷째로, 이성의 사랑은 참 좋은 것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보다 완전한 사랑, 참사랑과 이성의 사랑을 연결시켜서 생각해보는 습관을 키워 보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섯째, 상대방을 소유하도록 이 사회가 우리를 유혹하고, 또 악의 세력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음란의 악령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때는 구마경으로 자신을 보호해야지요.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말입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하느님과 성모님께 정결의 은혜를 청하면서 도우심을 청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현재의 상태를 자녀다운 마음으로 말씀드리면서 주님과 성모님께 의탁하도록 하십시오. 지금 자신이 성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또 주님께 더 가까히 나아갈 줄 알게 된다면, 이것은 오히려 전화위복이지요. 우리에게는 전화위복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떤 생활에서도 비록 죄에 빠졌을 때도 우리는 주님께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어버리지요. 신앙인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참 신앙인은 어렵다고 해서, 힘들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도, 절망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그것이 하느님과 깊이 일치하는 계기가 되어버리지요. 이게 신앙의 신비입니다. 님께서도 용기를 내십시오. 용기를 내셔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또한 성소에 더 열심히 정진할 수 있는 근거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나약한 인간에게 그러한 죄스런 모습은 바로 형제님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공통된 비참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단죄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 앞에서는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분은 죄인을 미워하기보다 오히려 사랑하셨습니다. 회개하는 창녀를 받아들이고 용서하셔서 그를 성녀로 만드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오셨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이곳에 글을 올려 상담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내셨음을 인정하며 주님은 반드시 형제님을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자위행위한 적 있는 사람이라도 고백성사를 통해 회개의 삶을 사는 이에게는 수도자나 성직자의 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자위행위가 습관이 되어 있다면 그 습관을 고치지 않고서는 수도생활과 성직 생활을 영위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평화가 언제나 님과 함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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