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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5년 8월 14일 (목)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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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2)

183564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7-20

* 오늘의 말씀(7/20) : 제16주일

* 제1독서 : 창세 18, 1-10ㄴ * 제2독서 : 콜로 1, 24-28

* 복음 : 루카 10, 38-42

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 <오늘의 강론>

오늘 <말씀전례>는 “환대 곧 손님맞이”, 또는 ‘하느님 맞이’, ‘주님 섬기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 나그네에 대한 아브라함의 환대(손님맞이)를 들려주며, <제2독서>에서는 이방인과 모든 사람에게 열려진 복음의 환대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와 마르타의 환대, 곧 진정한 손님맞이와 진정한 주님 섬기기는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는 마을 어귀에까지 나가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여 환대하고 있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경청함으로써 환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르타가 예수님의 몸을 섬기고 있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섬기고 있습니다. 곧 마르타는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고 있다면, 마리아는 말씀의 전례를 거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마리아의 환대는 칭찬을 받고 마르타의 환대는 꾸중을 듣게 되는 것일까?

이들의 환대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의 환대와 섬김이 진정한 섬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할까?

그것은 손님을 주님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를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규칙]에서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규칙서 53,1)라고 말합니다. 곧 주님을 주님 되시도록 해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은 ‘나는 섬김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신 말씀대로 해드리는 것입니다. 곧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섬기시도록 승복하는 일입니다.

사실, 마리아는 자신을 향한 주님의 섬김을 수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하여금 자신을 섬기시도록 허용해 드리고 있는 셈입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종’인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만찬 석상에서 자신의 발을 씻겨주는 것을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8)

그렇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종’이 되십니다. ‘종’의 모습으로 오시어 우리를 섬기십니다. 그러니 마리아는 지금 자신보다 더 작아진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셈입니다. 묘하게도, 그 순간 “종”으로 오신 주님을 주님 되시게 해드리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먼저 듣습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주님을 주님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섬김은 주님을 주님 되시게 해 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그 어떤 섬김보다도 더 큰 섬김이요, 더 큰 환대입니다. 마치 마리아처럼 말입니다.

이 ‘섬김’은 그분과 한 자리에 있게 합니다. 아니 그분 면전에 있게 합니다. 곧 그분은 마리아에게 면전에서 말씀으로 섬김을 행하시며, 마리아는 예수님의 면전에서 귀 기울여 들음으로 섬김을 행합니다. 반면에, 마르타는 예수님 면전에 있지 못하고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자 하는 자기 자신을 섬기고 있으며, 오히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는 꼴입니다. 이것이 마리아와 마르타의 섬김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당신께서 주인 되시어 나를 섬기시도록 허용하는 일, 당신께서 나를 사랑하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승복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진정 당신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섬기시도록 수락하는 일이요, 주님을 주님으로 모셔 들이는 일이 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정작, 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無爲而無不爲) 단계, 곧 무위(無爲)의 도(道)라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음에도 사실은 전부를 하는 신령스런 도(道)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마르타 마르타야!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1-42)

그렇습니다. 결코, 빼앗겨지지 않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는 ‘이미’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을 지니고 있다’는 이 사실을 먼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이 “한 가지”‘전부’인 하나입니다. 이것 하나만 지니게 되면, 다른 모든 것을 얻게 되는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복음>에서 세 번 반복되고 있는 “주님”이라는 “한 가지” 입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이 사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실상 필요한 한 가지’요, ‘전부인 한 가지’이며, 결코 빼앗겨지지 않으며, 그 아무도 앗아갈 수 없는, 그리고 거부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이 “한 가지”로 하여 행복하고, 이 “한 가지”로 이미 더할 수 없이 충만하며, 그 어떤 것도 이 행복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가 할 “환대”‘주님이 주님 되시게 해 드리는 일’이요, 자신을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요 공간으로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나를 사랑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승복하는 일이요, 동시에 당신께서 나를 섬기시도록 허용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당신께서 나를 섬기도록 자신을 허용해드리는 이 일이야말로 바로 당신을 섬기는 진정한 환대요, 손님맞이요, 주님 섬기기가 될 것입니다. 아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2)

그렇습니다. 주님!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저는 그것을 이미 가졌고, 그것을 당신이 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처지에서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근심 걱정할 일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저의 주님이라는 이 사실!

바로 이것이 제가 지닌 진정한 “한 가지”입니다.

오로지 이 “한 가지”로 하여 저는 행복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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