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중 제17 주일
-
183702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5-07-26
-
2019년 8월 21일에 뉴욕으로 왔습니다. 저의 새로운 사목은 ‘미주가톨릭 평화신문’ 지사장이었습니다. 신문이 관련된 일은 중학생 때 ‘동아일보’를 배달했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저의 업무는 신문 제작, 직원 관리, 신문사 운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주된 업무는 ‘신문 홍보’였습니다.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종이 신문에 대한 수요가 많이 줄었습니다. 신문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적정 규모의 발행 부수가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2019년 10월에 처음으로 신문 홍보를 갔습니다. 뉴욕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프린스턴 한인 성당’이었습니다. 저는 신문을 홍보하면서 오늘 제1독서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말했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50명만 신문 구독을 해 주시면 성당에 큰 축복이 있을 겁니다. 정 어려우면 40명만 신문 구독을 해 주셔도 좋습니다. 그것도 어려우시면 10명만이라도 구독해 주시면 좋습니다.” 감사하게도 교우분들은 저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셨고, 가는 곳마다 10명 이상은 꼭 구독해 주었습니다. 3년 동안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하느님의 크신 은총으로 후임 신부님에게 자리를 넘겨 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컵에 물이 반 있을 때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아직도 물이 반이지만 남았네!” 부정적인 사람은 “벌써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네!” 같은 결과이지만 생각에 따라서 희망의 근거가 되기도 하고, 절망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2022년에 차를 새 차로 바꾸었습니다. 운전 중에 실수로 작은 흠집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 작은 흠집이 보이지 않아서 몰랐습니다. 나중에 세차하면서 작은 흠집을 보았습니다. 그 뒤로는 운전하면서 온전한 다른 부분은 잘 보지 못하고, 작은 흠집에 먼저 눈이 갔습니다. 오히려 작은 흠집들이 더 생기면서 나중에는 온전한 부분을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평일 미사에 좀 더 많은 교우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나오는 교우들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을 바꾸니 매일 미사에 나오시는 교우분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완벽함을 보시고 구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족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우리의 겸손함을 보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본당이나, 시설에서 사목하는 신부님들이 사목적인 비전을 제시하면 좋겠습니다. 사목의 결실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통합되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이야기하듯이, 무한 경쟁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윤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열정, 신념, 헌신으로 당면한 교회의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야기한 대로, 열정적인 사목자가 50명만 있어도, 45명만 있어도, 20명만 있어도, 10명만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교회에 더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실 것 같습니다. 참된 신앙인이 50명만 있어도, 45명만 있어도, 20명만 있어도, 10명만 있어도 세상은 좀 더 환하고, 밝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쉬는 신자들은 다시금 주님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활력이 넘쳐나고, 젊은이들은 다시금 교회의 그늘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여름이 지나면 입시 철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전국의 사찰과, 교회, 성당에는 많은 분들이 치성과 정성과 기도를 드립니다. 자신들의 간절한 소망을 자신들이 믿는 절대자에게 매달리고 청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입시 철이 끝나면 그 많은 사람이 볼일 다 본 것처럼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사찰과 교회 그리고 성당은 피서 끝난 바닷가처럼 썰렁함을 봅니다. 매달림과 청원의 기도가 있다면, 감사와 찬미의 기도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봅니다.
무엇이 참다운 기도의 태도인가! 저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다음 말이 참다운 기도의 태도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하느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과연 하느님의 편에 서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에서 두 팀 모두 성호경을 그으며 게임에 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다운 기도는 하느님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 편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때로 외롭고 힘든 골고타 언덕길이라도 주님 가신 그 길을 기쁨으로 따라나서는 것이 참다운 기도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
183706
최원석
2025-07-26
-
반대 0신고 0
-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선악(善惡)의 공존과 평화 “심판은 하느님께”
-
183705
선우경
2025-07-26
-
반대 0신고 0
-
-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
183704
박영희
2025-07-26
-
반대 0신고 0
-
- 7월 26일 토요일 / 카톡 신부
-
183703
강칠등
2025-07-26
-
반대 0신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