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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연중 제17주일: 루카 11, 1 - 13

183715 이기승 [bona24] 스크랩 2025-07-26

저에게 신자들이 자주 묻습니다. “신부님, 왜 기도해야 합니까?”라고. 여러분은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굳이 답변하자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셨고, 기도하시도록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기도가 필요 없는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홀로 외딴 곳에서 기도하셨고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낮 동안 당신을 필요로 한 사람들과 함께 하시면서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기도하며 사랑하고, 사랑하며 기도하는 삶을 사시고 우리 또한 그렇게 사시도록 가르치셨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기도하며 사랑하는 삶은 결국 하느님과 이웃과 하나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사랑은 하나이며 둘이고, 둘이며 하나입니다. 즉 기도와 사랑은 하느님 사랑의 영적 호흡과도 같습니다. 기도는 하느님 사랑의 들숨이라면, 사랑은 하느님 사랑의 날숨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들숨과 날숨이 자연스러울 때 우리는 세상에서 참으로 조화롭고 평화로우며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왜 기도해야 합니까?, 라고 묻지 말고 지금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가?, 라고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도한다기보다, 오히려 저는 제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기에 기도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때 기도는 어렵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기도는 사랑의 만남이며 대화이며 사귐의 시간입니다. 기도 시간은 제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시간이라기보다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할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보다 하느님께 대한 더 큰 사랑의 응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서보다는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할 시간을, 기회를 드리는 것이 가장 자녀다운 사랑의 태도이며 효도의 삶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도가 무엇인지 묻기보다, 이젠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먼저 묻도록 하십시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고 깨달을 때 기도는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전 생애를 통해 기도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는 죽는 순간까지 당신께서 말씀하신 “아버지,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신 대로 이를 실현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네 삶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가 우리의 피와 살에 스며들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기도의 특별한 점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치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도 되신다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기도의 핵심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함으로써 당신 제자들이 혼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모든 것을 돌보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라는 것, 그분은 자신들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시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라시는 분이심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이로써 우리가 기도할 때 어린아이가 아빠를 향한 완전한 신뢰심과 애정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늘 아버지 앞에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아버지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셨고 그러한 당신 삶을 함께 나누기 위해 당신 기도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유물론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의 딸이 어느 날 친구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무런 신앙도 없이 자랐고 하느님을 믿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낡은 책 속에서 기도문을 하나 발견하였는데 만약 그 기도에 나오는 하느님이 계신다면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친구가 그 기도문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녀는 ‘주님의 기도’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고 아버지의 뜻을 살려고 할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 것인가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우리네 삶에 이루어지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우루과이 한 작은 성당의 벽에 이렇게 써 놓았다고 합니다. 『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하지 말아라! 아들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말아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지 말아라! 자신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일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아멘’ 하지 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

이 기도문은 주님의 기도를 앵무새처럼 다 외운다고, 수백 번 기도한다고 하여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7,21) 주님은 기도할 땐, 청하고 찾고 두드려라!, 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도하였음에도 하느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느껴 절망 가운데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와 삶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첫째,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4, 2~3) 둘째, 하느님께서 또 다른 계획을 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듯싶어도, 그분은 분명 미래를 내다보시며 또 다른 계획을 갖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하느님의 계획을 찾고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에게 주어서는 안 될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치는 기도에는 하느님께서 절대 들어주셔서는 안 될 기도가 있습니다. 그 같은 기도를 들어 주시면 미래의 우리네 삶이 더욱 불행과 곤경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 기도의 가르침 뒤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11,11)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한지를 아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넷째, 우리의 기도가 항구함의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소원을 기도하면서 며칠, 혹은 몇 달을 못가 포기하면서 하느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항변하면서 원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도시의 한 아파트에 불이 났었답니다. 자신의 어린 아들이 불과 연기에 휩싸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달려와서는 울부짖으며 아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고, 아이는 4층에서 “연기가 너무 많아 아빠가 보이지 않아요. 살려주세요, 아빠. 무서워요, 아빠!!”라며 외치기 시작하였지요. 그러자 아빠가 아들에게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을 테니 무서워하지 말고 창문 아래로 뛰어내리거라!!” 하자, 아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아빠를 믿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림으로 생명을 구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 어린 아들이 아빠를 신뢰하고 내어 맡긴 것처럼 우리 역시도 우리를 이렇게 사랑으로 지켜보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내어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에 우리를 동참시켜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참여하여 아버지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끊임없이 성령을 통해서 성령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 하나가 되게 만들 것이고, 그런 기도는 오로지 기도함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끝으로 헨리 나웬 신부의 다음 표현을 마음에 기억하면서 오늘을 살도록 합시다. 『산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봉사하는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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