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하늘 나라의 삶 “관상과 활동의 일치와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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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53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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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7.28.연중 제17주간 월요일
탈출32,15-24.30-34 마태13,31-35
하늘 나라의 삶
“관상과 활동의 일치와 조화”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주일도 오전 미사전, 미사후 많은 분들에게 면담 고백성사를 드렸습니다. 보속으로는 꼭 셋을 챙겨 드립니다. 첫째는 말씀처방전, 둘째는 행복기도 소리내어 바치기, 셋은 ‘하늘과 산’ 그림의 수도영성을 상징하는 로고 스티카를 휴대폰에 붙여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늘 읽어도 새롭게 와닿는 행복기도중 한 대목입니다. 이어 하늘과 산의 수도원 로고 스티카를 붙여 드리며 첨가하는 설명입니다.
“하늘보고 땅보고,.. 기도하고 일하라 바로 수도영성의 모토입니다. 스티카를 볼 때 마다 하느님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일하라’를 연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바로 관상과 활동의 일치와 조화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관상과 활동의 일치와 조화에서 실현되는 하늘 나라의 꿈입니다. 새벽 인터넷 유투브에서 본 유명 정치인의 언급이 참 멋지고 신선했습니다.
“정치의 본령은 둘입니다. 하나는 사회적 약자를 챙기는 것, 하나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보는 통합적 시각이 복음적이며 하느님의 시선을 닮았습니다. 비단 정치지도자들뿐 아니라 교회지도자들이 지녀할 시각이요 관상과 활동의 일치와 조화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어제 주일 “조부모와 노인의 날” 삼종기도후 교황님의 강론중 두 말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조부모와 노인들은 ‘희망의 증거들’(witnesses of hope)’이다.”
주변의 젊은 후배들에게 희망의 증거들, ‘희망의 표징들(signs of hope)’이 되는 노년이 되도록 관상과 활동의 일치와 조화로 하늘 나라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만일 너희가 잔인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너희는 하느님을 너희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야 비로소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가 됨을 봅니다. 오늘 옛 현자의 지혜도 참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일깨웁니다.
“하루를 마치며 되돌아본다. ‘나는 오늘 나로 산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다산>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논어>
아버지의 아들답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비로소 참나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늘 나라의 비유로,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둘이 소개됩니다. 하늘 나라의 비유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관상신비가와 활동가의 면모가 잘 드러납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하는 하늘 나라의 표징들입니다. 오래전 써놓은, 지금 바야흐로 피어나기 시작한, 예전에 소개했던 무려 28년전 지금 여기서의 <달개비꽃>이란 시입니다.
“오, 하느님이 밤사이 쏟아 놓은
남보랏빛 생명의 보석들!
아주 낮은 그늘 속에 있어 잘 눈에 띄지 않는
남보랏빛 생명의 보석들!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져 갈 수는 없는
달개비꽃 생명의 보석들!”<1997.8.25.>
하늘 나라의 신비요 하늘 나라의 발견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관상신비가와 활동가가 되어 살아야 할 하늘 나라의 현실입니다. 바로 관상신비가와 활동가의 모범이 하느님 마음에 정통해 있던 예수님과 모세입니다. 작은 보잘 것 없는 겨자씨에서, 누룩에서 하늘 나라의 표징을 발견한 예수님의 눈입니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가만히 침묵중에 경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지켜봐야할 저절로 성장하는 하늘 나라의 전개 과정입니다. 묵묵히 조용히 숨어서 끊임없이 일하시는 겸손하고 부지런한 하느님이요, 참으로 오늘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신비롭고 놀랍고 새로운 하늘 나라의 현실입니다. 정말 조심스런 우리 인간의 협조가 필요할 뿐입니다. 참으로 겨자씨 같은 내외적 성장의 개인이나 가정, 교회, 수도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봅니다.
과연 겨자씨같이 성장하는 수도공동체로 많은 이들이 와서 깃들 수 있는 ‘하느님의 품’같은 하늘 나라의 실현인 요셉수도원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겨자씨처럼 여러분의 삶도 끊임없는 내외적 성장으로 날로 하늘 나라의 실현이, 넓고 깊은 하느님의 품이 되고 있는지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소원은 단 하나 우리 믿는 이들 하나하나가 예수님을 닮아 하늘 나라의 꿈을 현실화하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이래서 복음선포의 겨자씨같은 삶이 필요합니다. 흡사 겨자씨가 상징하는 바, 살아 성장하는 ‘하느님의 말씀’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말씀의 겨자씨에 이어 말씀의 누룩입니다.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과 하나된, 관상과 활동이 일치된 삶일 때 개인이든 공동체든 누룩과 같은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세상과 격리된 빛이요 소금이요 누룩이라면 존재이유의 상실이요 그러니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듯 세상속의 누룩입니다. 과연 나는, 우리 가정공동체는, 교회 공동체는, 수도공동체는 예수님처럼 세상에 희망의 누룩, 사랑의 누룩, 정의의 누룩, 평화의 누룩, 진리의 누룩이 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탈출기에서 우리는 중재자 예수님의 예표와 같은 모세를 만납니다. 하느님과 백성을 참으로 사랑했던, 관상과 활동이 일치와 조화를 이뤘던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간의 유일한 중재자 경천애인의 사람, 모세입니다. 모세의 담대한 뱃장은, 배수진을 친 비장한 결의는, 그가 얼마나 하느님 마음에 일치되어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를 지워주십시오.”
이와 흡사한 바오로의 고백도 연상됩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안 동포를 위해서라면, 자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로마9,3). 불교의 “모두가 지옥에서 구출되기까지 지옥에 머물겠다”는 불교의 지장보살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마침내 모세의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려는 불퇴전의 고집스런 기도에 마음을 접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잊은 시대, 실용만 강조되는 시대에 관상과 활동의 일치와 조화로운 삶이, 하늘나라의 삶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내외적성장의 겨자씨로, 내외적성숙의 누룩으로, 또 주님의 관상신비가와 활동가로 살게 합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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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근 신부님_“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마태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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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60
최원석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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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국 신부님_작은 것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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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59
최원석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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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자씨는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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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58
최원석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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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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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57
박영희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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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8일 월요일 / 카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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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56
강칠등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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