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
183754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5-07-28
-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벗이자 제자였던 세 사람, 마르타와 마리아, 라자로를 함께 기억하며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머무르셨던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고단한 길 위에 따뜻한 ‘숨구멍’이 되어 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많은 이들의 요청을 받으셨지만,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라자로는 예수님을 위해 먼저 다가갔던 이들이었습니다. 마르타는 부지런히 음식을 장만하며 예수님의 피로를 돌보았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향유를 부어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라자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복음의 한 구절은, 그들과의 관계가 단지 사명의 관계를 넘어 깊은 우정과 사랑의 관계였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삶은 예수님의 복음 여정 속에서 숨통을 틔워준 ‘쉼터’였고,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몇 안 되는 ‘숨구멍’ 같은 존재였습니다. 신앙 여정에서도 우리에게는 그런 ‘숨구멍’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언제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어머니, 제 성격을 이해하며 묵묵히 함께해 준 직원들, 성지순례나 행사 때 뒤에서 도와주시는 이름 없는 봉사자들, 그리고 낯선 타지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동료 사제들. 이분들은 제가 지쳐 있을 때마다, 때로는 외로울 때마다 조용히 곁에 있어 주신 분들입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그 사랑과 동행이 제 삶을 숨 쉴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위안부였던 이옥선 안나 어르신이 지난 5월 11일 하느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어르신은 9년 전 달라스를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어릴 때는 나라가 약해서 종군 위안부로 끌려갔답니다. 세월이 흘러서 내가 종군 위안부의 삶을 증언하기 위해서 이렇게 달라스를 방문한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5,000개가 넘는 대학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 정의와 인권을 연구하는 단체가 있는 대학은 6개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달러스에 있다고 합니다. 저는 달라스에서 개최되는 이옥선 안나 어르신의 추모식에 함께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꺼이 참석했습니다. 추모식에 함께 한 분들은 대부분 미국 분이었습니다. 한국 분은 저를 포함해서 많지 않았습니다. 추모식은 불교에서 법사님이 예불드렸고, 제가 고인을 위해서 추모의 인사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뒤로 9년 전에 어르신의 방문을 준비했던 인권위 관계자들의 인사말과 학생의 추모 시가 있었습니다. 진행을 맡았던 분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았습니다. “비록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합니다. 나는 할머니를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겠습니다.” 저 역시 이옥선 안나 어르신께서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 누리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옥선 안나 어르신의 삶도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기억하고, 증언하며 살았던 이 어르신도 우리 시대의 ‘숨구멍’이었습니다. 불의한 기억 속에서도 정의를 향한 끈을 놓지 않으셨고, 끝까지 사랑의 언어로 진실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그 사랑이 하느님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지만, 그분을 믿고 사랑하는 우리가 서로를 통해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라자로는 예수님의 벗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말없이 음식을 장만하고, 말없이 향유를 바르고, 말없이 죽음조차 받아들이는 그들의 존재는 곧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집은 ‘하느님 나라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숨구멍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존재, 힘들고 지친 이에게 쉴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사람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르타와 마리아, 라자로를 기억하면서 묻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숨구멍’이 되어 주고 있는가 혹시 내 가족, 내 이웃, 내 공동체가 나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우리의 신앙은 거대한 선언보다도 작고 따뜻한 동행 안에서 빛납니다. 오늘 하루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실히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숨구멍’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그 작은 사랑 속에 하느님께서 머무르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나의 사랑......나의 예수님.
-
183765
이경숙
2025-07-28
-
반대 0신고 0
-
- ■ 부활을 믿는 우리가 가라지보다 못한 이가 되어서야 / 연중 제 17주간 화요일
-
183764
박윤식
2025-07-28
-
반대 0신고 0
-
- 반영억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
183763
최원석
2025-07-28
-
반대 0신고 0
-
- 송영진 신부님_<모든 신앙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겨자씨이고 누룩입니다.>
-
183761
최원석
2025-07-28
-
반대 0신고 0
-
- 이영근 신부님_“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마태 13,33)
-
183760
최원석
2025-07-28
-
반대 0신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