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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간 수요일

183771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5-07-29

우리는 살아가며 두 가지 다른 부끄러움을 마주합니다. 하나는 '수치(羞恥)', 다른 하나는 '염치(廉恥)'입니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은 그 뿌리와 방향이 다릅니다. 수치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입니다. 누군가 앞에서 실수하거나 잘못이 드러났을 때 얼굴이 화끈거리는 그 감정이 바로 수치입니다. 반면, 염치는 타인의 눈이 아닌 자기 양심의 눈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입니다. 남들은 모를지라도, 자기 자신이 잘못임을 알고 마음 깊은 곳에서 뜨끔할 때, 우리는 염치를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치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염치는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 사람들 앞에서 창피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자신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그래서 염치는 어느새 희귀한 감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사람이 양심을 버리면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기준은 염치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고난받는 하느님의 종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을 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는 꺾인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며, 참으로 공정을 세상에 펴리라.” 이 말씀은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신 예수님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대사제들과 빌라도 앞에서 조롱당하고,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은 세상 앞에서는 수치스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그분은 차돌처럼 단단한 얼굴로 의로움을 선택하셨고, 심지가 꺼지려는 이들을 끄지 않으시는 자비로운 구세주이셨습니다.

 

저도 중학교 시절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험을 보고 있을 때, 저는 커닝을 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시험지를 가지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시험지 아래에 써 있던 말은 단지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집중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라는 격려의 말뿐이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어도 의심받는 순간, 많은 사람 앞에서 느낀 그 부끄러움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수치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염치없는 삶을 살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강론에서는 늘 예수님처럼 겸손해지라고 말하면서, 정작 제 마음속에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라고 말하면서도, 어떤 짐은 남에게 떠넘기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던 그 순간이야말로 제 안의 염치가 고개를 들지 못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밭에 숨겨진 보물에 비유하십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그 보물은 다름 아닌 가장 작은 이들 안에 계신 예수님입니다. 굶주린 이, 목마른 이, 병든 이, 감옥에 있는 이, 헐벗은 이, 나그네 된 이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분들은 세상 앞에서는 수치스러운 존재일 수 있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존엄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염치를 회복하고, 하늘나라의 보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참된 신앙인은 염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작은 이 안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 보물을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고 기꺼이 도울 때,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늘나라를 살아가게 됩니다. 수치는 일시적인 부끄러움이지만, 염치는 영혼을 살리는 힘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 염치 있는 삶을 살았는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보물을 향해 기쁘게 걸어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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