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태 13, 51)
그물에 걸려든 모든 것들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온갖 종류의 고기를 끌어올린 그물”에 비유하셨습니다.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는 그물,
하지만 결국에는 앉아서 식별하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이것은 하느님 나라가 지금도 우리의 삶에 던져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담고, 무엇을 내어보낼지
끊임없이 묻고 식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물은 단지 물고기를 모으는 도구가 아니라,
내 삶 전체를 끌어올리는 하느님의 손길일지도 모릅니다.
율법학자,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되다
예수님은 놀랍게도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라고 하십니다.
율법학자는 전통과 체계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권위, 오랜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지만,
그 지식만으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도 길을 여십니다.
그들이 과거의 틀을 깨고, 예수님의 말씀 앞에 제자가 된다면
그들은 새롭고 깊은 방식으로 하늘 나라의 지혜를 전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
전통의 뿌리와 지금의 열매를 함께 품는 사람.
그 사람이 곧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입니다.
나의 곳간은 어떤 모습인가
이 말씀은 결국 내게 묻습니다.
“너의 곳간에는 무엇이 담겨 있느냐?”
믿음의 길을 오래 걸어왔다면,
나는 이미 많은 말씀, 체험, 기도, 가르침을 쌓아두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새롭게 꺼내지는가,
지금 이 시대의 빛 안에서 살아 숨 쉬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신앙은 축적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복음은 암기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용기와,
오래된 것을 존중할 겸손을 모두 지닌 사람입니다.
존재의 제자 되기
예수님은 단순히 배우는 자가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제자를 부르십니다.
그 제자는 날마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기 안의 그물을 끌어올리고,
삶의 곳간에서 묵은 지혜도, 새로운 통찰도
조화롭게 꺼내는 사람입니다.
하늘 나라는 그런 깨어 있는 존재의 삶 안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중입니다.
주님,
제 삶의 곳간이 굳어지지 않게 하소서.
오래된 것을 품고,
새로운 것을 맞이할 수 있는
겸손한 제자가 되게 하소서.
하늘 나라의 지혜를
매일의 식별과 사랑 안에서
꺼내어 나누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