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이웃에 대한 새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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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5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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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우리는 마태 13장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 말씀을 읽고 묵상했습니다. 어제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하는 언급으로 끝맺음하며,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하는 언급으로 열립니다. 이 두 언급으로 미루어, 복음서 본문의 전개 과정에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듦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라 그 범위를 조금씩 달리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 16장 20절까지를, 곧 ‘수난과 부활에 관한 1차 예고’ 직전까지를 새로운 단계로 봅니다.
오늘 예수님은 고향 나자렛을 방문하십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해오셨듯이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하고 놀라운 마음으로 자문하면서도,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라고 합니다. 왜 못마땅하게 여겼을까요 가르치심에 지혜가 묻어나고 행동하심에 기적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말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반응입니다. 오히려 우리 마을 출신 가운데 한 사람이, 소문을 통해 들었던 대로, 그렇게 유명한 인사가 되어 우리 앞에 서서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고 자랑함이 당연한 모습이어야 할 텐데도 말입니다.
사제생활 가운데 대부분을 신학교에서 사제양성을 위해 봉사해온 터에, 다음과 같은 경험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새내기로 신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사제로 서품되기까지 함께 해오면서, 사목자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 형성과 영적 성장과 지적 수준 향상을 위해 도움을 주면서, 가끔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알던 신학생들이 훗날 보좌신부로 그리고 본당신부로 사목활동을 하면서, 유명 인사(?)로 평가되는 경우였습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내가 알던 신학교에서의 그 신학생과 본당 또는 특수사목 현장에서의 동일한 그 사제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때였습니다.
신학생 때는 ‘아니었었는데….’ 하는 경우입니다. 못마땅하게 생각한 적은 없어도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맞닥뜨릴 때마다, 두 가지 점에서 생각을 고쳐잡았습니다. 내가 신학생 때의 그 사제를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고 하는 반성과 함께, 사제로 살아가면서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지적으로 얼마나 더 노력했을까 하는 지점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신부가 수원대신학교 출신임에 오히려 감사드리고, 축하의 마음과 함께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성원했던 기억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사제양성자로 함께 일했던 모든 지도신부도 같은 생각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다고 판단해온 그 예수님과, 소문으로 들은 예수님, 그리고 지금 앞에 서서 권위와 지혜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부정적 판단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며,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현실입니다.
오늘 하루, 특별히 오래전부터 가까이해온 사람들, 가족들을 비롯한 이웃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들에게서 좋은 점들을 찾아 인정하고 본받겠다는 다짐으로 더 좋은 인간관계를 쌓아나가는, 복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태 13,54-58: 저 사람이 저런 지혜와 능력을 어디서 받았을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57절). 이 고향은 나자렛이나 베들레헴보다도 그분을 거절한 유다 전체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을 예수님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54절) 그들은 놀랐다. 그들이 놀란 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놀란 것이 아니라, 무시와 분노로 들끓었다. 놀람은 찬양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시샘 때문이었다.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54절) 이렇게 말한 것은 지혜를 주시고 놀라운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하여 하느님께 지혜를 청했고 그것을 받았다. 그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오만이 아니라, 덕으로, 교만이 아니라, 지혜로,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55절) 그분의 가족들과 친척들을 보면서 그러한 능력이 나올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고 못마땅해하기만 하였다. 그들의 불신은 진실을 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하느님께서 이런 일을 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고향에서 기적에 그리 마음을 쓰지 않으신다. 그분은 기적만큼이나 놀라운 가르침을 주셨다. 나자렛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를 안다는 이유로 그분을 무시했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1) 나자렛에서도 그분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흠을 잡지 못하고 그분의 가족들만 들먹이며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다. 가장 잘 안다고 하는 고향 사람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잘못된 삶으로 우리 이웃을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면서 우리 가운데 계시며 구원을 주시는 주님을 거절하고 몰아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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