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5년 8월 30일 (토)연중 제21주간 토요일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가톨릭마당

sub_menu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하느님 중심의 기도와 믿음의 삶 “용기를 내어

183940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8-05

2025.8.5.연중 제18주간 화요일                                                              

 

민수12,1-13 마태14,22-36

 

 

하느님 중심의 기도와 믿음의 삶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51,3ㄱ)

 

오늘 화답송 후렴은 우리가 늘 바쳐야 할 자비송입니다. 어제 로마에서의 세계 젊은이들의 희년 모임 마지막날 삼종기도후 레오 교황의 강론중 “세계 젊은이의 날 서울: 준비는 이미 시작되었다(WYD Seoul: Preparations have already begun)” 제하의 마지막 말씀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새삼 하느님 중심의 ‘희망의 순례자’로 ‘희망의 여정’을 살아야 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들 안에 분명히 살아 있는 희망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에게 악과 죽음을 이기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할 힘을 줍니다. 그러니 젊은 희망의 순례자들인 여러분은 지구끝까지 이 희망의 증거자들이 될 것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여러분을 보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계속하여 더불어 꿈꾸도록, 더불어 희망하도록 합시다(I look forward to seeing you in Seoul; let us continue to dream and to hope together).”

 

‘서울에서 만나자(See you in Seoul)!’, 얼마나 고무적인 메시지인지요! 한국 서울에서의 세계 청년들의 모임은 2027.8.3.-8일까지 있게 됩니다. 한국의 위상과 국격이 더욱 향상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새삼 세상이 중심을 잃고 세속화되는 시대에 갈수록 하느님 중심의 삶은 절대적임을 봅니다. 하느님 중심의 기도와 믿음의 삶에서 질서있고 평화로운 삶이요 세상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기도는 절대적입니다. 늘 함께 가야 할 기도와 삶입니다. 십중팔구 기도없는 삶은 공허하고 삶이 없는 기도는 맹목일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대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수도원을 방문하여 면담을 하거나 고해성사를 보는 분들마다 요셉수도원의 ‘하늘과 산’ 그림의 로고를 붙여드리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휴대폰 적당한 자리에 하늘과 산의 로고를 붙여 드리며, “하늘보고 땅보고, 기도하고 일하라”를 참 많이 강조했습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기도와 일이 균형잡힌 조화로운 삶이 영육의 건강에 제일입니다. 사랑처럼 기도 역시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영원한 초보자이듯이 기도 역시 아무리 해도 늘 부족한 영원한 초보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분주한 일상 한복판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외딴곳에서의 기도임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모든 활동의 원천이 되고 있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는 기도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오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에 이어 물위를 걸어 파도에 시달리던 제자들을 살리시고, 이어 겐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활동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은 예수님께는 위기이기도 합니다. 이 기적에 흥분하고 열광할 군중의 반응을, 유혹을 예감한 예수님은 지체없이 그 자리를 떠나십니다. 이 장면을 대할 때 마다 떠오르는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즉 ‘공을 이루면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떠나라’는 노자의 지혜로운 가르침입니다. 

 

바로 이 위기의 유혹의 순간, 신속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가 빛을 발합니다.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에 태워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군중을 돌려 보낸후 따로, 홀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십니다.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시며 기도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이어 기도의 힘이 발휘되는 장면입니다.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던 제자들의 곤궁에 처한 모습을 그 멀리서 발견한 예수님입니다.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시니 그대로 기도의 힘이요 하느님의 현존이 된 예수님입니다. 유령이라 외치는 공포에 젖은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평생 화두로 삼아 믿음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바로 요셉수도원 십자로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예수님 부활상>밑 바위판에 새겨진 말마디가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나다(I AM)”는 바로 탈출기에서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I AM with you)”, “나는 너희를 위해 있다(I AM for you)”로 정의되는 하느님이요 바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권능입니다. 주님을 향해 물위를 걸어가던 베드로가 두려움에 물에 빠져드는 순간의 상황 역시 우리에게는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베드로의 절박한 기도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이요 타고난 믿음은 없습니다. 아마도 베드로의 믿음의 성장에 결정적 도움이 되었을 이 추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은 그치고 비로소 안팎의 고요와 평화입니다. 아마도 세상 한복판 초대교회의 불안한 상황이 이러했을 것이며, 예수님을 공동체 삶의 중심에 모실 때 평화임을 깊이 깨달았던 체험이 반영되어 있음을 봅니다. 이어지는 제자들의 고백도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어 겐네사렛의 무수한 병자들은 소원대로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자 모두 치유의 구원을 받았다 합니다. 참으로 믿음으로 주님과 만날 때 온전한 치유의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민수기의 일화도 우리의 믿음 생활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인지상정, 모세를 시기한 미르암과 아론의 처지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이들이 하느님 중심의 삶에, 기도와 믿음의 삶에 매우 취약했다는 것입니다. 시기심의 유혹에 빠져 본분에서 벗어남으로 하느님의 심판을 받았고, 아론의 간청에 모세의 기도로 치유받는 미르암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민수기의 모세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투철했던, 기도와 믿음생활에 탁월하여 하느님의 신뢰와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모세입니다. 모세의 인품에 대한 묘사도, 주님의 두둔 말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민수12,3)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입과 입을 마주하여 그와 말한다. 그는 주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참으로 주님을 섬기듯 주님의 종들을 겸손히 섬기고 순종해야 함을 배웁니다. 하느님 중심의 기도와 믿음의 삶에 충실할 때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겸손과 순종의 삶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기도와 믿음의 삶’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12).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6 153 2

추천  6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