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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8월 30일 (토)연중 제21주간 토요일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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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십자가 없이는 신앙도 없고, 부활도, 구원도 없습니다.>

183956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8-05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루카 9,28ㄴ-36).”

1)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일을 전하는

이야기’는, 예수님의 신성과 하느님 나라를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다는 증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는 말씀을

하셨을 때(루카 9,22), 제자들은 부활 예고 말씀은

흘려듣고, 수난 예고 말씀만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때문에 기가 꺾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믿음과(확신과) 용기와

힘을 주려고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셨고,

하느님 나라를 미리 체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목적지가 분명히 있고, 그곳이 정말로 좋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면, 그곳까지 가는 길이 힘들어도

충분히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목적지를 모르거나, 아니면 목적지가 아예 없으면,

힘든 길을 굳이 걸어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둘째 서간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줄 때, 교묘하게 꾸며 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한 것입니다.

그분은 정녕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존귀한 영광의 하느님에게서,

‘이는 내 아들,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하는 소리가 그분께 들려왔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도

그 거룩한 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2베드 1,16-18).”

2)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라는 말은,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증언입니다.>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라는 말은, 평범한 보통 사람의

모습과는 다른, 천상적 존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뜻이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는, ‘눈이 부셨다.’입니다.

<이 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신성과 영광을

표현한 말들인데, ‘인간 언어의 한계’를 나타냅니다.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가 없어서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그친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을 목격한 일도,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증언입니다.

구약시대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나타나서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는 말은, 그 두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고 있음을 목격했다는 뜻입니다.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라는 말과

초막 셋을 지어 드리겠다는 말은,

제자들이 ‘하느님 나라의 황홀경’에 빠졌음을 나타냅니다.

<너무나도 행복하고 황홀해서, “영원히 이대로

이렇게 지내고 싶다.” 라고 소망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라는 말도

제자들의 행복감과 황홀함을 나타낸 말입니다.

3) 여기서 ‘구름’은 ‘하느님의 나타나심’을 뜻합니다.

제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직접 들은 일도 중요한 체험입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는, ‘예수님은 메시아’ 라고

하느님께서 직접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에서 ‘그의 말’은, 바로 앞에

있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라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메시아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그 길 하나뿐입니다.

4)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라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십자가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완성되고 고백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를 때에만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증언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신앙도 없고, 부활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서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이신 분’으로 믿고, 또 하느님 나라가

정말로 행복하고 황홀한 곳이라고 믿어도, 지상에서의

인생을 생략하고 그곳으로 직행할 수는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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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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