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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1일 (월)연중 제22주간 월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가톨릭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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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편안하든지 힘들든지... 살든지 죽든지...>

18398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8-07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15-23)”

1)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는, “저희는 스승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믿고 있습니다.” 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여기서 “살과 피가 아니라” 라는 말씀은, “인간적인

능력이나 지식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라는 뜻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베드로 사도를

뽑으셨고,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계시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언제 어떤 식으로 그 계시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는데, 어떻든 예수님께서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 일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사실상 아버지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이라는 말씀은,

베드로 사도라는 한 인물을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다는

뜻이기도 하고,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특별히 뽑으신

사람이고, 또 그의 신앙고백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한

일이기 때문에, 교회의 반석은 실제로는 하느님시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교회의 반석이시니 ‘저승의 세력’(죽음의 세력,

또는 악의 세력)은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 말에서, 다음 시편이 연상됩니다.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이십니다(시편 18,3).”

‘저승의 세력’이 이길 수 없으니, 또는 건드릴 수 없으니,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한 피난처이고 안식처입니다.>

2)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수난, 죽음,

부활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당신이 그리스도(메시아)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메시아를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구원자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메시아의 수난과 죽음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1코린 1,23).

그래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가 어떤 메시아인지는

십자가 수난과 부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드러나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믿게 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분부는, 당신에 대한 신앙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완성되고,

고백할 수 있고, 증언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 수난 전에는 아무도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언하거나 선포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강하게

말린 것은, ‘불신과 의심’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다고 고백할 때에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지만, 또는 ‘성령의 인도’를 받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말릴 때에는 하느님의 계시나

성령의 인도 없이, 그냥 단순하게 인간적인 애정과

판단만으로 행동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지만,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한 상태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모습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두 제자는 왜 메시아께서 그렇게 허망하게 수난을 당하고

돌아가셔야만 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몹시 실망하고 있었습니다(루카 24,19-21).>

4)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라는 말씀은, “사탄처럼 내 앞에서 걸림돌이 되지 말고,

내 뒤로 가라.”(“제자의 본분을 지켜라.”) 라는 뜻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적으로만

판단하지 마라.”이기도 하고, “몸의 편안함만 찾지

말고 영혼 구원을 먼저 생각하여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길은, 또는 신앙생활은

편안한 때도 있고, 힘든 때도 있는 길입니다.

만일에 힘든 길은 피하고 편안한 길만 찾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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