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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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99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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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전에 있던 신문사엘 다녀왔습니다. 후임 신부님은 의욕적으로 신문 홍보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신문 구독도 많이 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신문사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지하실이었습니다. 제가 있을 때는 지하실이 창고였습니다. 1년이 지나서 가보니 신부님은 지하실을 예쁜 경당으로 꾸몄습니다. 신부님은 매일 직원들과 구독자 그리고 후원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단지 공간의 변화가 아닙니다. 의미의 변화이며, 태도의 변화입니다. 같은 공간이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공간은 성소가 될 수도 있고, 창고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같은 하루지만 기도와 사랑이 깃들면 승화된 시간이 되고, 무관심 속에 흘러가면 소비된 시간이 될 뿐입니다.
저는 경당을 꾸미는 것보다 일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의욕적으로 홍보를 기획했습니다. 2달 정도 일정으로 서부 LA와 캐나다 밴쿠버로 가는 홍보를 기획했습니다. 신부님들의 도움으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비행기 표도 준비했고, 이제 출발하기만 하면 되는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고, 거짓말처럼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신문을 통해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친 교우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르침이 무엇인지 전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일하기 전에, 먼저 기도했어야 마땅했습니다.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우리의 손보다 먼저 무릎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이 장면을 묵상하며 독일의 신부이자 화가였던 지커 퀘더의 그림을 떠올립니다. 그 그림 속 예수님은 직접 얼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직 제자의 발 씻은 물에 비친 모습만이 그분의 현존을 말해 줍니다. 가장 낮은 곳, 가장 천한 자리, 가장 더러운 물속에서 하느님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그 낮은 자리에서 우리는 참된 신앙과 만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손으로 발을 씻고, 말없이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몸의 언어', 그 침묵의 동작은 말보다 더 깊은 진리를 전합니다. 권위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낮아지는 데서 오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병자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 믿음이란 거대한 언약이 아니라, 작은 씨앗이 시간과 기다림을 통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훗날 부활을 체험한 뒤 병자를 고칠 만큼 굳은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믿음은 단지 인식이 아니라 체험이고, 실천이며, 시간 속에서 자라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에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쉐마 이스라엘’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로 시작되는 이 구절은 단지 신앙의 고백이 아닙니다. 기억의 문법이며, 신앙의 전승입니다. 모세는 이 말씀을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고, 입에 담고, 자녀에게 전하고, 문설주에 써 붙일 정도로 삶 전체에 스며들게 하라고 말합니다. 기억은 단지 과거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정체성을 이어가는 힘입니다.
요즘 시대는 빠르고 효율적이며 계획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경당은, 발을 씻는 행위는, 쉐마 이스라엘의 반복은 비효율적이지만 본질적인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신앙은 성과 이전에 관계이며, 열매 이전에 뿌리입니다. 오늘 하루, 삶의 어느 한구석이 경당으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마음의 지하실이 기도의 방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찮고 귀찮게 느껴졌던 봉사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것이라는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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