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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1일 (월)연중 제22주간 월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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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08.08)

184006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25-08-08

 

2025년 8월 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어떤 분이 하느님의 불의를 말하면서,

하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왜 저의 기도를 안 들어 주세요?”

“왜 저렇게 나쁜 놈들은 벌하지 않으세요?”

“저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세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불평불만에 하느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다고 합니다.

“그래, 네가 하느님 해라.”

하느님께서 알아서 살기 좋은 낙원을

만들어주시면 참 좋겠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보다 

노력도 하지 않는데도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말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 같지 않습니까?

정의롭지 못하다는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시선과 하느님의 시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지금의

삶이 영원히 유지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만,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주님과 달리 바로

코 앞의 일에만 맞춰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시선을 따라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삶에 대해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욕심과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신 제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 안에서 얻게 되는 고통이나

시련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을 따르면서 겪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희생과

사랑, 자기 부정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단지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마태 16,27)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지금의 우리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면서

겪게 되는 아픔과 시련에 시선을 맞춰서

불평불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주님의 시선에 눈을 맞추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나를 따르라’

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용서는 과거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미래를 넓혀준다

(파울 뵈세)

사진설명: 성 도미니코 사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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