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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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87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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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릴 때부터 일목요연한 ‘트리구조’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가족 안에서 부모-자녀, 학교 안에서 선생님-학생, 사회에서는 상사-부하,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교구-본당-신부-수도자-평신도 같은 피라미드형 구조가 익숙합니다. 학교에서도 ‘종속과목강문계’라는 생명의 순서를 배웠습니다.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서술 방법도 배웠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구조 위에서 문화와 문명을 세웠습니다. 트리구조는 이해하기 쉽고 질서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시간이 걸리고, 결정이 위에서 내려와야 하며, 새로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은 제갈공명의 공격에 무너졌습니다. 조조는 트리구조의 전술을 펼쳤고, 제갈공명은 자연과 지형을 이용하는 전술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단단하게 묶여있던 조조의 배들은 바람을 등진 제갈공명의 불화살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기,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이제는 ‘네트워크구조’가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챗GPT, 자율 운전, 메타버스, 가상현실 같은 기술은 바로 이 네트워크 기반에서 이루어집니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연결된 사람과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변화 속에서 신앙의 구조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구조에 익숙했을까요 예수님은 어떤 구조의 삶을 선호하셨을까요 예수님은 트리구조보다는 네트워크구조의 삶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율법과 계명이라는 트리구조를 초월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의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분과 계급이라는 트리구조를 초월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고 하셨습니다. 선생과 제자라는 트리구조를 초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벗이라고 하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되찾은 동전, 되찾은 양, 돌아온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세상의 셈법은 법과 원칙에 따라서 이루어지지만, 하느님의 셈법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던 죄인은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낙원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과 우리를 하나로 연결하는 성사입니다. 오늘 복음도 그런 의미에서 아주 인상 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잘못한 사람을 단죄하고 벌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얻기 위한 조용하고 섬세한 접근을 말씀하십니다. “그가 너의 말을 들으면, 너는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예수님의 방식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방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방식은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승승(Win-Win)’의 방식입니다. 이 구조 안에서는 잘못한 사람도 다시 형제로 회복될 수 있고, 고통받는 사람도 자비 안에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약속하십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네트워크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영적인 연결망, 사랑의 네트워크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같은 생각, 같은 가치, 같은 방식’을 강요하는 구조 안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다름을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공존과 평화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돌아온 탕자도 용서하시고, 간음한 여인도 용서하시고, 자신을 배반한 베드로도 품으신 그분의 방식은, 힘의 통일이 아니라 사랑의 공존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에는 다시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없었다.” 그 이유는, 모세가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사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과 얼굴을 맞대고 사귀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율법의 구조보다 자비의 네트워크, 질서의 서열보다 관계의 친밀함 안에 머무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배척하지 말고, 함께 손잡고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하늘나라의 구조는 다름 아닌, 사랑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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