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20)
상처 받은 마음에서 시작하는 여행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우리의 첫 번째 충동은 무엇일까요?
분노할까요, 복수할까요, 아니면 그냥 피해버릴까요?
예수님은 이런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아시면서도,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회복의 길입니다.
1단계: 용기 있는 사랑의 첫걸음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 번째 단계는 놀랍도록 용기가 필요한 행동입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를 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항의가 아닙니다.
'타일러라'는 말은 헬라어로 '엘렌코(?λ?γχω)'인데, 이는 '깨우치다', '일깨워주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마치 잠든 사람을 깨우는 것처럼,
잘못을 저지른 형제에게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아시나요?"라고 사랑으로 눈을 뜨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둘이라는 조건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엄성을 보호하면서 회복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2단계: 지혜로운 공정성
만약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한다면?
예수님은 포기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고 하십니다.
이는 구약의 지혜를 따른 것입니다.
혼자서는 주관적일 수 있지만, 두세 명의 증인이 있으면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고발자가 아니라 중재자입니다.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진실을 찾아내며, 화해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3단계: 공동체의 품격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교회에 알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 전체가 그 사람을 품고 권면하자는 뜻입니다.
마치 부모가 길을 잃은 자녀를 끝까지 기다리듯,
공동체가 함께 그 사람의 회개를 기다리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는 집단 괴롭힘이 아니라 집단 돌봄입니다.
마지막 단계: 아픈 사랑의 결단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이 말씀을 영원한 추방하라는 것으로 잘못 이해했었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고,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따라서 이는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관계의 재정의입니다.
형제로서의 특권은 일시적으로 중단되지만,
전도와 사랑의 대상으로 남겨두는 것입니다.
마치 반항하는 자녀를 혼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나는 오늘 복음 속에서 회복적 정의의 핵심 원리들과 만납니다.
존엄성 보호: 각 단계마다 가해자의 체면을 살려줍니다.
관계 중심: 처벌보다는 관계 회복을 우선시합니다.
공동체적 치유: 개인의 문제를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여깁니다.
인내하는 사랑: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회를 줍니다.
땅과 하늘이 만나는 곳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이는 교회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권한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결정을 내릴 때, 하늘이 그 결정을 인정해주신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진정한 회복적 정의는 인간의 지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공의가 함께 할 때 가능합니다.
함께하시는 주님
회복적 정의는 쉬운 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오래 걸리며,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함께 있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갈등 해결의 모든 과정에서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용기를 낼 때,
잘못한 사람이 회개할 때,
중재자들이 지혜를 구할 때,
공동체가 사랑으로 품을 때...
모든 순간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사랑이 승리하고, 관계가 회복되며,
공동체가 더욱 성숙해지는 아름다운 여정.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상처받았을 때 복수가 아닌 회복을,
분노가 아닌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서로를 돌보는 아름다운 가족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