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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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16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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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13.연중 제19주간 수요일
신명34,1-12 마태18,15-20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시편86,4)
모세오경이라 일컫는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오늘 신명기 마지막 장 34장, 모세의 죽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우리 신자들 역시 이 위대한 인물 모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와 그분 백성의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는 물론 우리의 전통과 유산에 일부가 되고 있으며, 그것은 오늘도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죽음은 삶의 요약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죽음보다 공동체에 큰 선물은 없습니다. 이런 죽음은 공동체에 ‘평화와 일치’를 주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여러 복잡한 문제로 ‘불화와 분열’을 남기는 경우도 우리는 무수히 목격합니다. 잘 살았는가 그렇지 못했는가는 공동체의 분위기를 보면 당장 드러납니다. 참으로 잘 살았던 분들의 장례미사를 집전하다보면 죽음이 꼭 축제같다는 느낌도 들 정도로 슬픔보다는 웃음이 가득했던 경우도 종종 보곤 했습니다.
모세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죽음도 그대로 축제처럼 느껴집니다. 참으로 끝까지 제 몫을 다하고 세상을 하직하는 모세의 장엄한 모습은 늘 읽어도 감동적입니다. 모압땅 느보산 피스가 정상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그곳에 건너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때, 그의 마지막 순종의 죽음이 참 좋은 모범이 됩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순종에 충실할 때 마지막 순종의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음을 봅니다.
모세는 죽어 모압땅에 묻혔지만 오늘날까지 아무도 그가 묻힌 것을 모른다는 사실에서 모세의 승천이 회자되었던 듯 합니다. 구약에서 에녹, 모세, 엘리야 셋이 승천의 인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모세는 죽을 때에 백스무 살, 눈은 어둡지 않고 기력도 좋았다 하니 ‘영원한 현역’다운 죽음임을 깨닫습니다.
끝으로 후계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 안수함으로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으로 가득찼으니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세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니 모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보고 사귀시던 사람이었습니다.
공동체 선배들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죽음은 공동체 후배들에게도 길이길이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뉴튼수도원에 머물 때 마다, 늘 매일 찾았던 곳이 수도원의 공동묘지였습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말씀을 상기함으로 삶의 거품이나 환상은 걷히고 하루하루 오늘 지금 여기서 본질적 삶의 깊이를 살게 됩니다. 많이 살아야 90전후인데 얼마 안 남은 삶임을 생각하면 공동생활에서 야기되는 문제도 참 사소해 보입니다.
오늘 복음은 공동체 생활에 실제적 가르침을 줍니다. 참으로 죽음을 늘 눈앞에 환히 두고 산다면 크고 작은 회개의 수행에도 신속할 것입니다. 공동체 형제가 죄를 지으면 회개하여 교정토록 하라 합니다. ‘교정이 없는 공동체는 약한 공동체’란 옛 장상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사실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고맙다, 감사하다” 보다는 과오시 변명이나 핑계없이 즉시 용기를 내어 “미안하다, 잘못했다” 사과가 필요함을 봅니다.
작은 이들에 대한 관심은 오늘 복음의 교정절차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교정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공동체의 화해에 있기에 단계적 절차를 거치면서 공동체와의 화해에 최선을 다해 배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섬세합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은 형제들의 교정에 최선을 다하는 땅에서의 공동체의 결정은 그대로 하늘에서의 결정임을 깨닫게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땅과 하늘이, 공동체와 공동체의 중심인 하느님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봅니다. 오늘 지금 여기 몸담고 있는 공동체 제자리를 떠나 하늘에 이를 수 있는 구원의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성서처럼 귀히 여기는 소설이 <토스트에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읜 형제들>입니다. 거기 나오는 주인공 알로샤가 말한 대목도 생각납니다.
“나의 장로님 조시마는 한 번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어린아이처럼 돌보아야 하고, 어떤 사람들은 병원의 환자처럼 돌보아야 한다고요.”
사실 과오를 저지른 형제들 역시 내면을 잘 드려다 보면 ‘죄인들’이기 보다는 ‘병자들’로 위로받고 치유받아야 할 약한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옛 현자의 다음 말씀도 공동생활에 좋은 참고가 됩니다.
“작은 문턱에 걸려 넘어질지언정 산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마무리를 지을 때의 자세는 낮고 또 낮아야 한다.”<다산>
매사 디테일에 강함으로 작은 과오도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발밑을 잘 살펴보라”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사자성어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걸음은 무겁게 하고, 손은 공손히 하며, 땅을 밟을 때 가려서 개미 뚝도 돌아서 가라.”<주희의 경재잠>
모두가 공동체 생활에서 과오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섬세하라는 권고입니다. 오늘 복음은 공동체 형제들의 위로와 치유와 화해, 그리고 공동체의 바램을 이루는데 공동전례기도가 얼마나 결정적이요 절대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날마다 공동체의 중심과 질서를 잡아주는 매일의 미사 전례 공동기도가 그리도 고맙고 소중한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공동미사전례은총이 공동체의 평화와 일치, 위로와 치유, 화해와 공동체의 바램을 이뤄줍니다.
"하느님 내 주시여, 이 마음 다하여 감사하리이다.
영원토록 당신 이름을 찬양하리이다."(시편86,12).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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