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진 신부님_<우리는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는 한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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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21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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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5-20).”
1) ‘공동체’에 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12.25-27).”
신앙인들의 공동체는 ‘한 몸’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 병들고 다쳤다면, 그것은 곧
‘내가’ 병들고 다친 것이고, 그의 치유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나를’ 위한 일입니다.
<그것은 손 하나가 다쳤을 때 다른 손으로 약을 바르는
것과 같은데, 다친 손도 내 손이고, 다친 곳에 약을
바르는 손도 내 손입니다.>
‘죄’는 영혼의 병입니다. 또는 영혼이 다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을 타일러서 회개시키는 것은
‘한 몸’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의 건강은 곧 나의 건강이기 때문입니다.
2) 17절의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라는 말씀은,
‘파문’을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의 ‘파문’은 영구 추방이 아니라,
회개할 때까지 신자의 자격과 권한을 정지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파문당한 사람이 진심으로 회개하면
교회는 그를 다시 받아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파문 권한은, 각 지역에서는 교구장에게만,
교회 전체가 관련된 일이라면 교황에게만 있습니다.
파문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면, 진심으로 회개하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교회의 직권자에게(교구장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보면 됩니다.
파문의 경우에도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라는 말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구원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습니다.
끝까지(죽을 때까지) 회개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몸의 어떤 부분이 고장 나고 병들 때마다 그 부분들을 다
수술해서 제거해 버리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원상복구를 위해서 끝까지 치료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입니다.>
3) 19절의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청하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을,
앞의 16절의,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죄를 지은 형제를 타이르라는 말씀에 연결해서 생각하면,
이 말씀은, 죄인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공동체의 중요한 임무라는 가르침이 됩니다.
사도 요한은 ‘죄인의 회개와 구원을 위한 기도’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1요한 5,16-17).”
‘죽을죄’는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용서받기를 거부하고,
구원을 받는 것도 거부하는 태도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요한 사도의 말은, 그렇게 거부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바치는 기도는,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죄지은 사람 자신의 진실한 회개가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4) 이제 입장을 바꿔서, 형제가(형제들이) ‘죄를 지은 나에게’
와서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고, 또 나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상황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그런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에, “나는 죄를 지은 적 없고, 죄를 지을 일도
없으니 형제들이 나에게 와서 나를 타이를 일도 없고,
나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할 일도 없다.” 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큰소리치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리고 그 교만과 위선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죄짓는 형제를 타이르는 일은, 의인인 사람이
죄인인 사람을 타이르는 일이 아니라, 같은 죄인으로서
함께 회개하자고 권고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함께 회개하자.”입니다. “너, 회개하여라.”가 아니라.>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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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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