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너 자신을 알라!"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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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43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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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14.목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사제 순교자(1894-1941) 기념일
여호3,7-10ㄱㄴㄹ.11.13-17 마태18,21-19,1
"너 자신을 알라!"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이다>
"주여, 당신은 대대로
우리의 안식처가 되시었나이다."(시편90,1)
어제 수도권의 극한 호우로 피해가 참 큽니다. 관세협상, 기후위기, 극우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촛불혁명에 이은 빛의 혁명과 AI혁명, 인구감소, 지방소멸 등 국내외 나라들 대부분이 복합적,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 격변의 시대입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어느 나라보다 사강대국 사이 분단된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러합니다. ‘하느님의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애국가 가사가 그대로 이뤄지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인과응보”
이번 시사IN 935호 표지 글자였습니다. 작금의 정치현실을 지칭한 듯 싶습니다. 더불어 떠오르는 사필귀정, 그리고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긴 것 같지만 빠져 나가지 못한다)는 노자 도덕경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이래서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 누누이 강조되는 시편 성구입니다.
어제 2100년전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대한 해설을 듣던중 다음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도, 법, 환경은 바뀌어도 사람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라는 말마디입니다. 이래서 반복되는 역사같습니다. 바뀌지 않는 인간 무지의 현실에 반복되는 악순환의 사슬을 끊어 버리는 길은 참된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옛 현자의 가르침도 참된 회개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배움이란 눈으로 읽어 머리에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전해 받아 삶에 새기는 것이다.”<다산>
“스승의 가르침에 제자는 공손한 태도와 겸허한 마음으로 극진하게 배워야 한다. 선한 것을 보면 따르고 의로운 것을 들으면 실행해야 한다.”<관자>
이래서 참된 회개의 실행이, 평생 회개의 여정에 충실함이 제일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를 통한 하느님과의 만남뿐입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을 알아야 나를 알 수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바로 하느님을 알아야 나를 알 수 있고 나를 알아야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래서 하느님과의 소통을 위한 기도와 회개입니다. 기도와 함께가는 회개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나를 아는 겸손입니다. 흡사 한밤중 강론 쓰는 중 들리는 빗소리가 하늘과 땅의 대화처럼 생각됩니다. 힘차게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찬미노래처럼 들립니다. 오래전 “대화”란 자작시가 떠오릅니다.
“바라봄의 관상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로는 둘만의 긴 대화가 필요하다
하늘님과 땅
멀리서 보기만 했지
못다한 이야기들 너무 많았다
하루종일
밤새 두런두런 소리내며
내리는 비
나눠도 나눠도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님과 땅의 정다운 대화
사랑의 일치!
아, 때로 나누고 싶다, 임과의 끝없는 대화를”<2001.7.5.>
이런 하느님과 대화의 모범이 제1독서 여호수아입니다. 모세는 떠났지만 영원하신 하느님은 모세때와 똑같이 바톤터치한 후계자 여호수아와 함께 하십니다. 하느님의 구원자 예수님 이름과 똑같은 여호수아는 하느님의 명령 그대로 따름으로 모세가 홍해를 건너듯 요르단 강을 건넙니다. 여호수아 역시 얼마나 하느님과 긴밀한 소통의 기도의 사람인지 깨닫게 됩니다.
마침내 주님의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강 한복판 마른땅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동안, 온 이스라엘이 마른땅을 밟고 건너서, 온 겨레가 다 건너간 것입니다. 새삼 탈출의 여정은 끝나지 않고 계속됨을 봅니다. 계속되는 탈출의 여정을 완성하는 분은 파스카의 예수님이고 우리는 주님 파스카의 미사 은총으로 날마다 새로운 탈출의 여정, 회개의 여정을 살아갑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예수님에 앞서 하느님과 소통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하느님과 소통의 대가이자 달인인 예수님의 면모가 오늘 복음에서 잘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처지의 나를 안다면 용서하고 나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몰라서 심판이요 단죄지 용서받아 살고 있는 나임을 깨닫는다면 끝없는 용서가 뒤따를 것입니다. 베드로에 대한 주님의 답변은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이미 용서받았기에 용서입니다. 살아 있는 한, 숨쉬듯이 용서하라는 말씀이요 이래야 보복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용서의 선택이요 훈련이요 습관화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무한한 용서와 더불어 주님은 매정한 종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탐욕의 무지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닫게 합니다.
만 탈렌트 주님께 빚을 탕감받은자가 고작 백 데나리온 빚진자에 대한 매정한 처사가, 갑질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만 탈렌트 탕감받은 인색하고 무자비한 자가 상징하는 바, 바로 탐욕의 무지에 눈먼 노예된 우리 인간들입니다. 인과응보입니다. 주님의 엄한 질책이 탕감받은 종에게 주어집니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대로 무지의 탐욕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용서하고 나누라는,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회개의 촉구입니다. 주님의 오늘 결론 말씀이 참으로 준엄합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지체없이 용서하라는, 용서에 결코 지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용서해야 상대방도 살고 나도 삽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다칩니다. 그러나 정의의 실현과 보복은, 통합과 봉합은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용서하되 정의는 실현되어야 하고 봉합이 아닌 진정한 통합을 추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 자비의 모범이자 형제애의 모범인 성인을 만납니다. 바로 오늘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폴란드 출신의 꼰벤투알 프란치스코회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순교자 수도사제입니다. 성인의 파란만장한 짦은 생애를 지칠줄 모른 열정으로 사시다가 아우쉬비츠 수용소에서 불쌍한 죄수 대신 자발적으로 47세에 순교하신 분으로 이 일화는 널리 회자되고 있으며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선사합니다.
성인이 아우슈비츠 1호 수용소로 이동되어 16670번 수감자가 됩니다. 그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에 대해 무한한 동정심과 연민을 지닌 성인이었습니다. 1941년 7월, 콜베의 막사에서 수감자 한명이 실종되자, 수용소장은 탈출에 대한 처벌로 같은 막사에서 무작위로 10명을 뽑아 악명 높은 13번 구역에서 굶겨 죽게 합니다.
실제 탈출한 것으로 간주 되었던 수인은 화장실에서 고의로 익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수용소 사령관이 선발한 사람중 한 명인 프란치세크 가요브니체크는 자신에게는 처자가 있어 죽을 수 없다며 울부짖었고, 콜베 신부가 그를 대신하겠다고 자원합니다.
“저는 가톨릭 신부입니다. 저 남자를 위해 죽고 싶습니다. 저는 늙었고 저 남자에게는 아내와 자식이 있습니다.”
마침내 1941년 8월14일, 석탄산 주사로 사형되니 순교의 죽음입니다. 1971년 교황 성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2년 10월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됩니다. 이 자리에는 콜베 대신 살아 남은 프란치세크 기요부니체크도 참석했습니다. 성인은 마약중독자, 정치범과 그 가족들, 언론인, 수감자의 수호성인이고,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우리 시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합니다.
프란치세크 기브요니체크는 콜베 신부가 그를 구해준지 53년만인 1995년 3월13일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수감자 시절 누더기 옷을 입은 콜베신부를 결코 잊지 못했으며, 1994년 12월,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콜베 가톨릭 성당을 방문했을 때, “나는 폐에 숨이 붙어있는 한 콜베 신부의 영웅적 사랑의 행위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나의 의무다.”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회개의 여정에 충심함으로 무지의 어둠과 사슬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나, 지혜롭고 자비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 우리 주의 어지심이,
우리 위에 내리옵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시편90,17ㄱㄴㄷ).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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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진 신부님_<용서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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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51
최원석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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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근 신부님_“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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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50
최원석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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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국 신부님_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서있는 딱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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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49
최원석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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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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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47
박영희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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