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진 신부님_<쓰레기는 쓰레기일 뿐... 아까워하지 말고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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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33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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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19,16-22).”
1)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부유한 젊은이’를, 루카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이 소유한 재산으로 자기 혼자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길’ 생각만 했습니다(루카 12,19).
그는 내세에 대해서도,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부유한 젊은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희망하고 있었고, 그 생명을 얻기
위해서 십계명들을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와는 완전히 다른,
‘경건한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르코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마르 10,21).
예수님께서 그의 지향과 노력을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 그는 자신의 노력에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의 부족한 점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집착’과 ‘탐욕’은 죄이지만, ‘애착심’은 죄는 아니고,
구원을 받는 데에 크게 방해가 되는 ‘걸림돌’입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라는 예수님 말씀은,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끊어버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재물에서 완전히 마음이 벗어나는 것, 또는 재물을
아까워하는 마음을 마음속에서 모두 제거하는 것.>
예수님 말씀은 ‘가장 큰 계명’에 연결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모든 것’입니다.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다른 것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이것을 수학 공식처럼 표현하면, “나 – 하느님 = 0”입니다.>
그 ‘부유한 젊은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재물 때문에,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자신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재물 때문에 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이 되지 못하고,
마음이 갈라져 있었던 것입니다.
3) ‘버림’에 대하여,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했던 유명한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필리 3,7-9ㄱ.11).”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입니다.
너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다가 그 ‘쓰레기’가 큰 걸림돌이
되어버리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은
‘신앙인의 지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재물에 대해서 이렇게 권고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1티모 6,7-10ㄱ).”
<‘공수래공수거’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장례를 치를 때에는 누구나 그것을
생생하게 실감합니다.
그런데도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4)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라는 말씀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십계명을 아무리 잘 지켜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영원한 생명만을 추구해도, 예수님 없이는 안 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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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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