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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부자의 구원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184251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8-19

2025.8.19.연중 제20주간 화요일                                                      

 판관6,11-24ㄱ 마태19,23-30

 

 

부자의 구원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주님,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시편84,11ㄱ)

 

살아서보다 선종후 향기처럼 세상 널리 퍼지는 고 유경촌 디모테오 주교입니다. 죽음을 통해 아름답고 향기로웠던 생전 청빈과 겸손의 삶이 환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선종후 이렇게 인터넷에 많이 소개된 사제나 주교는 없었습니다. 

 

“향년 63세 별세,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주교”

 

주제 아래 청빈하고 겸손했던 기사도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역설적으로 가장 가난하나 가장 부요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분이었음을 봅니다. 신자들은 물론 자발적 청빈의 복음적 삶이 참으로 절실한 시절입니다. 날로 늘어나는 쓰레기들을 볼 때 마다 정말 쓰레기 덜 내고 사는 단순소박한 가난한 삶이 참으로 잘사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수도원에 잠시 거주 중인 사제가 말씀 처방전과 좌우명으로 삼을 시를 청하기에 두 말할 것 없이 다음과 같이 써드렸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신부님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사제생활 하는 동안 가장 많이 보속으로 써드린 말씀 처방전입니다. 보속이 아니라 보석이라 찬탄하는 말도 들은적이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산다면 자발적 청빈의 무욕의 삶에, 역설적으로 참 풍요롭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겠습니다. 또 하나는 제가 2023년 후반부이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시입니다. 아마도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말마디와 더불어 남은 생애, 제 평생 좌우명이 되겠습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시같은

 하루

 詩같이 살자.”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하루하루 주님의 꽃같은, 시같은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느님의 꽃이자 시였던 예수님은 물론 그분의 제자들과 성인들의 삶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바로 그 좋은 본보기가 예수님에 이어 오늘 복음 후반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베드로요 이런 추종에는 넘치는 보상이 뒤따릅니다. 현세에서의 축복과 더불어 내세에서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부자들의 구원 문제가 심각히 대두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부자들은 물론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이 말씀에 몹시 놀라 멘붕에 빠진 제자들은 이구동성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물었고 주님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명쾌한 답을 주십니다. 

 

재물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부자라하여 구원이 어렵고 빈자라 하여 구원이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 빈자라면 구원은 힘듭니다. 돈이 하느님 자리에 있는 자본주의사회입니다. 돈만 있으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이 악이 아니라 선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되려면, 물처럼 흘러 모두를 살리는 구원의 도구로 쓰여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바로 부자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재물을 물처럼 흐르게 하여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 가난한 겸손한 삶’이라면 그대로 구원입니다. 말그대로 가난한 부자의 역설을 사는 참으로 지혜로운, 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모두를 가능하게 하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문제는 나에게 있고 답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부르심에 마음을 활짝 열고 늘 귀기울여 경청과 회개, 겸손과 순종의 삶에 항구히 충실하는 것입니다. 판관기를 보면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끊임없는 개입이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악마는 디테일 안에 있다 하는데 하느님 역시 디테일 안에 있습니다.

 

지금도 하느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오늘 기드온이 판관으로 부르심을 받는 장면도 참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참으로 눈밝은 하느님은 작고 겸손한 기드온을 당신 구원의 도구로 삼으십니다. 기드온이 부르심을 받는 일련의 은혜로운 장면을 주님 천사와의 문답을 통해 나눕니다.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아, 주 하느님, 제가 이렇게 얼굴을 맛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기드온은 그곳에 주님을 위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주님은 평화“라 명명합니다. 

 

흡사 주님과 기드온의 만남이 미사전례중 주님과 우리 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성전 제단의 주님의 평화가 그대로 우리를 통해 실현됩니다. 주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이런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 모시는 주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 두려움 없이, 당신의 섬김과 나눔의 도구가 되어, 자발적 가난의 부요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시편85,11).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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