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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9월 13일 (토)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너희는 어찌하여 나를“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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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같은 은총을 받는 것에 감사드리고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184266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8-19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마태 20,1-2).”

“......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 20,9-16).”

1)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하느님께서는 ‘똑같은’

은총과 자비를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인간들은 자기가 한 일을 내세우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은총을 받기를 원할 때가 많은데, 하느님의 은총에는

어떤 특혜나 특권도 없고 특별대우도 없습니다.

<남들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은총을 받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심과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고,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자비에는 남들보다 더 받거나

덜 받는 일은 없고, 받거나 못 받거나 둘 중 하나만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 나라에 들어가거나 못 들어가거나

둘 중 하나만 있을 뿐인 나라입니다.

남들보다 더 좋은 나라도 없고, 덜 좋은 나라도 없습니다.

또 그 나라 안에서는 남들보다 더 높거나 더 좋은 자리도

없고, 남들보다 더 낮거나 덜 좋은 자리도 없습니다.

또 영원한 생명은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만 있고,

구원도 받거나 못 받거나 둘 중 하나만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 좋은 생명과 구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덜 좋은 생명과 구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2) 이 비유를, ‘맨 먼저 온 사람’의 입장에서 읽을 수도

있고, ‘맨 나중에 온 사람’의 입장에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맨 먼저 온 사람의 입장에서 읽으면, 이 비유는

자기는 남들보다 더 우월하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또 남들보다 더 많은 은총을 받기를 바라지 말고, 남들도

똑같은 은총을 받는 것을 함께 기뻐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맨 나중에 온 사람의 입장에서 읽으면, 이 비유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들이 있는데도 하느님께서 똑같은

은총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기뻐하라는 가르침입니다.

3) 이 비유를, 이스라엘 민족과 다른 민족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비유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하느님을 믿고 섬겼던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서는 신약시대가 되어서야 하느님을 믿게 된 다른

민족들보다 더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특혜는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특혜를 바라지 말고 다른 민족들보다

먼저 하느님을 알고 믿었다면 그만큼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21,42-43).

4)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지낸 열두 사도와

나중에 예수님을 믿게 된 바오로 사도의 관계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열두 사도는, 한때 박해자였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하고, 사도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인정했고,

그래서 사울을(바오로를) 사도로

받아들였습니다(사도 9,27-28; 갈라 2,9).

열두 사도는 ‘맨 먼저 온 이들’이고, 바오로 사도는

‘맨 나중에 온 사람’인데, 열두 사도는 바오로 사도가

받은 은총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신학교나 수도원에 남들보다 일찍 들어간 사람도 있고,

남들보다 늦게 들어간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나이인데도 서품이나 서원을 먼저 하는 경우도

생기고, 남들보다 뒤늦게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나이가 같아도, 그렇게 선배와 후배로 갈라지게 되는데,

하느님 앞에서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고,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또 교회 공동체 안에서, 후배가 선배들보다 더 중요한

직무를 맡는 경우도 흔히 있는데, 그런 일에 대해서

선배들이 그 후배를 시기하거나 질투한다면,

그것은 그냥 죄를 짓는 일이 될 뿐입니다.>

5) 신앙생활을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고, 더 오래 한 사람과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고 기간도 짧은 사람의 관계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은,

“신앙생활을 얼마나 먼저, 얼마나 오래 했는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적합한 신앙인인가?”가 기준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못 받은 ‘성령의 은사’를 다른 사람이

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면 안 됩니다.

신앙인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1코린 12,11).”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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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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