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마태 20. 13)
계산을 넘어서는 사랑
오늘 기념하는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체험하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에게 신앙은 '얼마나 많이 기도했는가',
'얼마나 선행을 쌓았는가'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친구처럼 함께 머무르는 경험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포도밭 주인도 바로 그런 분입니다.
성과표를 들고 일꾼들을 평가하지 않고,
"친구여"라는 따뜻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있는 그대로도 충분한 나
포도밭 주인은 참으로 이상한 분입니다.
아침 6시부터 뜨거운 햇볕 아래서 12시간 동안 땀 흘린 사람이나,
오후 5시에 겨우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불공정해 보일지 모르지만,
하느님께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분에게는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보다
'함께 있어 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런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나는 아직 부족해"
"다른 사람보다 못해"
"더 열심히 해야 인정받을 텐데"
하지만 하느님은 이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고 계십니다.
비교와 경쟁의 무게를 내려놓으라고,
나는 이미 충분히 소중하다고 속삭여 주십니다.
은총이 펼쳐지는 무대
오늘 복음은 단순한 고용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이 펼쳐지는 거대한 무대입니다.
포도밭 주인은 냉정한 사업가가 아니라 자유롭게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분의 무대에서는 '공정성'보다 '사랑의 풍성함'이 더 중요합니다.
"친구여"라는 한 마디는 바로 그 초대장입니다.
우리는 임금을 받으러 온 일용직 노동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드라마에 함께 참여하는 소중한 동반자로 불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더 받았는가?"가 아니라
"나는 그 사랑의 무대 위에 함께 서 있는가?"
마음이 바뀐 어느 일꾼 이야기
아침부터 일한 한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 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의 마음은 불평으로 가득했습니다.
"억울해. 나는 12시간이나 일했는데, 1시간 일한 사람과 똑같은 돈을 받다니. 이건 불공평해!"
하지만 걸음을 멈춘 순간, 주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친구여."
'친구라고 했구나.'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주인이 자신을 그냥 일꾼이 아니라 친구로 불렀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입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억울함보다 더 큰 감동이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그래, 나는 돈만 생각했구나.
하지만 그분은 나를 친구라고 불러주셨어.
그게 진짜 선물이었구나."
그 순간 모든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
품삯의 크기가 아니라 함께 있었다는 그 시간 자체가 은총이었음을.
비교와 시기를 내려놓자,
마음 깊은 곳에서 고마움과 기쁨이 샘물처럼 솟아났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2천 년 전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평가받습니다.
'더 잘해야 한다', '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숨이 막힐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성과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길
경쟁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길
부족함이 아니라 이미 충분함을 발견하는 길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시며
당신의 사랑 안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성과와 비교 속에서 지쳐가는 저를
"친구여"라고 부르시는 따뜻한 목소리로 위로해 주소서.
일의 대가를 계산하기보다
당신과 함께 있는 이 순간 자체가 은총임을 깨닫게 하시고,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제 모습도
당신 눈에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함을 믿게 하소서.
불평과 시기의 자리에서 벗어나
당신이 펼치시는 사랑의 무대 위에서
친구로 함께 걸어가는 기쁨 속에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