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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5년 9월 16일 (화)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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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

184292 박영희 [corenelia] 스크랩 2025-08-20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 마태 20,1-16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남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 시기 질투가 나서 견디지 못하는 우리 모습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른 이가 나보다 더 큰 이익을 얻는 것도 배가 아프지만, 그에 못지 않게 배 아픈건 그가 나보다 더 적은 노력으로 나와 같은 결실을 얻는 것을 볼 때 입니다. 그럴 땐 세상이 참 불공평해 보입니다. 나는 이것을 얻기 위해 이만큼이나 고생하고 노력했는데, 저 사람은 그걸 왜 저렇게 쉽게 얻는건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입니다. 그가 그런 결실을 얻은 것은 상황이, 조건이, 그 밖에 여러가지 변수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결과일 뿐, 내가 뒤늦게 그 문제에 대해 불평 불만을 갖고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바뀌지는 않지요. 

 

오늘 복음 속 비유에서 원래 '첫째'는 밭 주인에게 가장 먼저 부름을 받은 '첫 일꾼'들이었습니다. 밭 주인이 먼저 자기를 불러주고 고용해준 덕에, 그들은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살아가나'하는 걱정과 두려움에서 일찍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온종일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는건 꽤나 고된 일이었지만, 내가 노력한만큼 나와 가족 모두 풍족하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기쁘게 일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늦게 일을 시작하는 다른 일꾼들을 보면서,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불행한 '꼴찌'가 되버립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주인과 '정당한 삯'을 받기로 합의했음에도, 그 정당함의 기준을 주인이 세운 공정한 원칙에 두지 않고 자기가 기대하고 바라는 사적인 욕심에 두려고 했기에, 보잘 것 없는 자신을 고용해준데 대한 감사가, 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삯을 주지 않은데 대한 원망으로 바뀐 것이지요. 바로 그 순간 그들이 느끼던 기쁨과 행복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음 속엔 질투와 원망만 남았습니다. 스스로 불행의 늪에 빠진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밭 주인이 일꾼들에게 준 건 '시급'이 아니라 '일당'이었습니다. 시급은 말 그대로 일한 시간만큼 주는 돈입니다. 나의 노동에 값어치를 매겨 거기에 시간을 곱한만큼 지급하는 '산술적인 방식'입니다. 그에 비해 일당은 4인 가족이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평균적인 금액을 사회적으로 합의하여 도출한 금액입니다. 그 지급 기준은 숫자가 아니라 따스한 배려와 존중입니다. 그 산정 방식은 일의 양이 아니라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원하거나 욕심내는 만큼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만큼 그러나 결코 모자라지 않게 주시는 분입니다. 그 사랑의 섭리를 굳게 믿으면 남을 시기 질투하는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내가 감사 안에서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데에만 전념할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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