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마태 22. 37)
오늘 복음은 계명의 차원을 넘어,
존재의 중심에서 하느님과 연결되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느님 사랑, 존재의 근원과 하나됨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 계명은 저에게
내 존재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라는 초대로 다가옵니다다.
내 존재의 근원,
숨 쉬는 순간마다 나를 살게 하시는 분,
그 분과 하나될 때,
나는 지금 여기서 나답게 존재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의무가 아닙니다.
내 존재의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아기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럽듯,
내 존재가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릅니다.
그럴 때 나는 비로소 행복합니다.
이웃 사랑, 존재의 관계성
존재는 결코 고립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얽히고 연결된 존재, 관계적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삼위이면서 하나이셨습니다.
문득 삼위일체 이콘이 떠오릅니다.
이웃 사랑은 나와 타인을 억지로 베푸는 배려가 아니라,
존재끼리 서로를 알아보고 환대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그대 안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그리고 그대는 나에게서 하느님의 숨을 봅니다.'
흘러넘치는 자연스러운 사랑
내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로서,
그분의 숨을 품고 그분 안에 뿌리내릴 때,
사랑은 억지스러운 행위가 아니라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생명이 됩니다.
성모님은 그 사랑의 완전한 모범이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한 완전한 모범이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응답으로
온 존재를 내어 맡기신 분
그분의 사랑은 율법의 의무가 아니라,
존재의 뿌리에서 흘러나오는 응답이었습니다.
존재의 뿌리이신 하느님과 연결될 때,
사랑은 흘러나와 이웃에게 닿습니다.
그 흐름 자체가 율법의 완성입니다.
율법 교사의 그 후 이야기
예수님을 만나고 존재가 흔들렸던 한 율법 교사의 변화를 상상해 봅니다.
그날 이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데 평생을 바쳤지만,
정작 자신이 사랑으로 살아왔는지 돌아보니 마음이 서늘해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자꾸 맴돌았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라.”
이미 알던 구절이었지만,
그날처럼 존재 깊은 곳까지 흔들며 다가온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며칠 뒤, 그는 회당에서 구걸하던 이가 쫓겨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사람들은 규정을 이유로 내쳤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당연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은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예수님의 음성이 다시 들렸습니다.
율법 교사는 망설이다가 그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율법을 완성하는 길임을.
그는 여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날부터,
자신의 존재는 더 이상 예전 같을 수 없다는 것.
그의 발걸음은 더뎠지만,
이미 사랑의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주님,
율법의 조항 속에서 길을 잃고,
계산과 비교 속에서 스스로를 세우려 했던 저를
사랑의 중심으로 불러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숨을 내쉬게 하소서.
오늘도 제 존재가
사랑의 호흡 안에서 깨어 있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고
성모님처럼
저의 온 존재로 하느님께 응답하며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