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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19일 (금)연중 제24주간 금요일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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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둥근 마음, 둥근 삶 “경천애인(敬天愛人)의

184333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8-22

2025.8.22.금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룻1,1.3-6.14ㄴ-16.22 마태22,34-40

 

 

둥근 마음, 둥근 삶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온전한 삶”

 

 

“내 영혼아 하느님 찬양하라. 

 행복하여라,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시편146;1ㄴ.5)

 

사랑의 찬양, 행복의 하느님입니다. 화답송 시편에 이어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찬미가도 좋았습니다.

 

“빛으로 휩싸이신 동정마리아

 당신은 황홀하게 빛나계시니

 다윗의 뿌리이신 왕다운 후예

 하늘위 아득높이 머무르시네.”

 

얼마전 중년 나이의 수도 형제와 주고 받은 시입니다. 그가 줄기차게 울어대는 <매미>에 대해 저에게 써보라 권했습니다.

 

“짧은 생애

 남은 날들 얼마 안 남았다 싶은지

 한밤중

 잠도 자지 않고 매미들 소리

 참 절박하게 들린다 

 울음소리인지 찬미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네”<2025.8.1.>

 

‘감탄이 나옵니다. 훌륭한 시입니다. 어제 지으신 시군요! 잠자리에 대해 써보시지요.’ 오늘은 8월22일, 요즘 한낮엔 햇볕 뜨거운 날씨지만 아침 저녁 선선하기가 이제 완연한 ‘기도의 계절’ 가을입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찬미입니다. 밤 1시, 밤새 계속되는 잠도 자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매미와 온갖 풀벌레 영롱한 소리들입니다. 이어 <잠자리>를 써서 전달했고 또 수도형제의 시도 받았습니다.

 

“하늘 향해

 날고 싶은 열망의 사랑에

 잠자리가 되었나?

 얼마나 가벼워져야 하늘을 날 수 있겠나

 잠자리에서 일어나

 잠자리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은

 내 영혼!”<2025.8.10.>

 

즉시 안토니오 수도 형제의 답시를 받았습니다.

 

“타오르는 불

 태초부터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생명의 혼, 수도승의 등불

 깊이 타들어가 

 사그라질 때까지

 인고의 세월, 세상 밝히며

 재가 되는 날

 주님 만나 뵙게 되리라.“<2025.8.10.>

 

“아, 안토니오 수사님의 멋진 시 감사합니다. 천재시인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덕담에 이어, “감사합니다. 신부님의 시를 보고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답신을 받았습니다. 그대로 수도형제의 성소의 비밀, 하느님 사랑을 엿본 듯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윗 3편의 즉흥시가 그대로 하느님 사랑을 표현한 듯 싶었습니다 이웃사랑의 기반이자 원천이 되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요즘 틈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란 소설을 영적독서하듯 읽고 있습니다. 조시마 장로의 고백입니다.

 

“형제들이여, 사람들의 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죄속에 있을지라도 그를 사랑할지니,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랑에 가까운 것이고, 지상의 사랑중 으뜸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을, 그 전체를, 또 모래알 한 알 한 알을 사랑하라. 작은 이파리 하나하나, 하느님의 빛줄기 하나하나를 사랑하라. 

 

동물을 사랑하고, 식물을 사랑하고, 모든 사물을 사랑하라. 모든 사물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물들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게 될 것이다. 한번 깨닫게 되면 그때는 이미 앞으로 매일매일 지칠줄 모르고 저멀리, 더 많이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은 사람은 물론 자연의 피조물에까지 이릅니다. 사랑과 앎은 함께 갑니다. 사랑할 때 진정한 인식입니다. 사랑의 신비가, 사랑의 시인입니다. 사랑하면 누구나 신비가가 시인이 됩니다. 사랑하면 예뻐집니다. 사랑은 예외없이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표도로 도스토옢스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가 사랑의 신비가임이 도처의 깨달음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문입니다.

 

“젊은이였던 내 형은 작은 새들에게도 용서를 빌었다. 너무도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실은 진리였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큰 대양과도 같아서 모든 것이 흘러들어 서로 만나게 되므로, 한곳을 건드리면 세계의 다른 끝에서 빈향이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이런 피조물에 까지 그 사랑에 이르렀던 성인이 프란치스코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답이 없습니다. 주님이 말하는 사랑은 이타적 무욕의 집착이 없는, 생명을 주는, 자유롭게 하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바로 오늘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께서 이런 아가페 사랑의 최고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품에 안으셨던 피에타의 성모님은 예수 아드님처럼 케노시스, 비움의 절정인 하느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해서 비로소 사람입니다. 살아있을 때 사랑이지 죽으면 사랑도 끝납니다. 하루하루 기도하라, 회개하라, 찬미하라, 감사하라, 공부하라, 사랑하라 연장되는 나날의 삶입니다. 

 

‘가장 큰 계명이 뭐냐?’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로 묶어 정공법으로 답하십니다. 613개 율법을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요약하는데, 하느님 사랑은 신명기 6장5절에, 이웃 사랑은 레위기19장18절을 기초로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있다.”

 

구별할 수 있되 분리할 수 없는 둘이자 하나인 가장 큰 사랑의 이중 계명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기 마련이요, 하느님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 사랑의 진정성은 이웃사랑을 통해 검증됩니다. 참으로 하느님 사랑을 통해 부단히 끊임없이 정화되고 성화되어야 하는 이기적 불순한 육적 사랑입니다. 

 

졸업이 없는 <사랑의 인생 학교>에서 공부중의 평생공부가 이런 사랑공부요 해도해도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일치된 전인적 온전한 사랑의 모델이 오늘부터 시작되는 제1독서 룻기의 주인공 룻입니다. 

 

이제 아들도 죽었고 너도 네 갈길을 가라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룻이 고백이 감동적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일치를 이룬 전인적 온전한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룻의 고백입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구원의 여정에 오르게 되니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의 손길이 참 신비롭습니다. 바로 예외 없이 믿는 누구나 이런 하느님의 은밀한 사랑의 섭리안에 살아감을 깨닫습니다. 

 

사람눈에 우연이지 하느님 눈엔 필연의 섭리요, 사랑의 이중계명을 실천해갈 때 이를 깨닫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 사랑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아가페 사랑의 샘솟는 원천이 되어 항구히 한결같이 우리 모두 경천애인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마음을 돌려 진정하는 것이 구원받는 길이다.

 고요히 믿고 의지하는 것이 힘을 얻는 길이다.”(이사30,15).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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