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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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38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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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 인수인계를 마치고 돌아오기 전날, 저녁을 함께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무려 14명으로 늘었습니다. 차량 봉사로 도와주신 분, 협의회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신 분, 머물 자리를 내어주신 가정들, 운동을 함께하신 부부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부족한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그 자리는 단순한 만찬이 아니라, 신앙의 체험이 고백 되고 공유된 은총의 식탁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저의 마음을 깊이 울린 두 분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 자매님은 1966년에 이민 와서 겪은 삶의 고통을 고백하셨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가족의 병고, 믿었던 사람의 배신, 그리고 남편에 대한 원망까지. 하지만 그 모든 고통과 원망을 이기게 한 힘은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남편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를 통해 신앙을 알고 하느님을 체험했기에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삶의 고통은 있었지만, 그 신앙은 자매님의 삶을 정화하고 빛나게 하였습니다.
또 한 분의 형제님은 30년 전 이민 와서 바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성당에 다니는 아내는 말없이 10년 동안 남편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였고, 어느 날 노래방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성가대에 들어가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성가대에 들어가면서, 이 형제님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찬양하면서 마음이 채워지고, 은퇴 후 무료했을 수 있는 시간이 오히려 기쁨으로 가득 찬 나날이 되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이 두 분의 삶에서 저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지금도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다는 생각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것으로 여기며,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세상의 고통, 세상의 즐거움,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참된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곧 복음의 기쁨입니다. 자매님은 고통 속에서 신앙을 발견하셨고, 형제님은 즐거움 속의 허무함을 신앙으로 채우셨습니다. 두 분 모두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너희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생각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사랑을 말하는 자는 사랑을 행동해야 하며, 희생을 말하는 자는 실제로 자신을 내어주어야 하고, 나눔을 말하는 자는 자신의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말보다 행동, 이론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복음은 앎이 아니라 삶입니다. 저는 사제로 살아오며 많은 곳을 거쳤습니다. 문득 제 마음에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머물렀던 곳에는 어떤 향기가 남았을까” 생선을 담았던 종이는 생선비린내가 나고, 꽃을 담았던 종이는 꽃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내가 머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났다면, 그 자리는 축복의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과 아집으로 물들었던 자리라면, 오히려 악취로 남았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독서의 주인공인 룻도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낯선 민족의 땅에 발을 디딘 룻은 신앙과 사랑, 충성의 삶으로 다윗 왕가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보잘것없는 이방 여인이었지만, 그녀의 충성과 섬김은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향기로운 제물이었습니다. 이민자의 삶은 고단하고, 인간관계는 복잡하며, 신앙을 지키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담고, 하느님의 사랑을 담아내는 인생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향기로 기억될 것입니다. 룻처럼, 바오로처럼, 그리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두 분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담고 사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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