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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21일 (일)연중 제25주일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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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

184376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8-24

* 오늘의 말씀(8/24) : 연중 제21주일

* 제1독서 : 이사 66, 18-21

* 제2독서 : 히브 12, 5-7. 11-13

* 복음 : 루카 13, 22-30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 <오늘의 강론>

연중 제21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구원이 모든 인류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전해줍니다.

<제1독서>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바빌론 유배로부터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이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넘어 온 민족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선언합니다.

나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모으러 오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보리라.”(이사 66,18)

오늘 <복음>에서도 같은 내용을 전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루카 13,29)

사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라는 어떤 사람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질문은 신앙의 궁극적 목표가 ‘구원’에 있음을 제시해줍니다. 그런데 ‘구원받을 사람이 적을 것을 것’인지에 대해 묻는 이 사람은 아마도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관심인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구원받게 되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적어도 네 가지 면에서 충격적입니다.

<첫 번째> 충격은 들어가는 ‘문이 좁다’는 사실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

이는 언뜻 듣기에는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의 보편성에 어긋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라는 질문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라 해서 모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이가 들어가는 “좁은 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루카 13,29)

그런데 이처럼 동서남북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 들어오는 문이 어찌 “좁은 문”일까요? 정말 당신의 문은 바늘귀처럼 좁은 문일까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문은 비록 좁지만 하나뿐인 문이 아니라, 각자에게 열려있는 수없이 ‘많은 문’일 수 있습니다. 곧 ‘길이신 당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기에’(요한 14,6 참조) “좁은 문”이지만, 동시에 당신께 응답만 하면 누구든지 사방에서 몰려 온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들어오는 많은 “좁은 문”일 것입니다. 당신이 바로 “양들이 드나드는 문”(요한 10,7)이시며, 회개하여 어린이 같이 된 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문(마태 18,3-5)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충격은 ‘문이 닫힌다’는 사실입니다. 곧 ‘닫힌 문’에 대한 말씀입니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루카 13,25)

이는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나>는 좁지만 열려 있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닫힌 다음에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 문은 나중에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지금 들어가야 하는 시급성을 다투는 ‘문’임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재림의 때에 완성되겠지만, 이미 지금 여기에 와 있는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이라는 “좁은 문”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문을 들어가는 데는 그 어떤 특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곧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13,26)라고 하실 것입니다. 곧 이 ‘문’을 들어가는 데는 교황님도 주교님도 신부님도 수도자도 그 누구도 결코 예외가 없는 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충격은 ‘문을 열고 닫는 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곧 ‘집주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버리면~”(루카 13,25), 우리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이는 구원이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닫는 ‘집주인’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네 번째> 충격적인 사실은 ‘첫째와 꼴찌’에 대한 것입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이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

그러니 사람들 앞에서는 꼴찌가 되어도, 하느님 앞에서는 첫째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데는 꼴찌가 되어도, 하느님을 앞세우는 데는 첫째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셨듯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마태 6,4; 6,6; 6,18)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

주님!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제 자신이 부서지고 가벼워지게 하소서.

제 뜻이 꺾이고 사라지게 하소서.

문이 좁기에 붙들어 주는 당신을 꼭 붙들고 들어가게 하소서.

열린 문이신 당신이 저의 희망입니다. 아멘. 


수도회 벽돌 한장 계좌입니다. 감사합니다.

계좌는 농협 355-0045-9581-23 예금주: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원 이예요.

축복.평화 가득하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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