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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21일 (일)연중 제25주일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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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충실한 신앙인에게는, 하늘나라의 문은 ‘넓은 문’입니다.>

184377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8-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24-30).”

1) 여기서 ‘좁은 문’이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하늘나라의

문을 일부러 좁게 만들어 놓으셨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기에’ 좁은 문으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재미없고, 힘들고, 어려운 생활이라는 생각만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나라의 문은 ‘좁은 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충실한 신앙인들에게는, 신앙생활은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생활이고, 그래서 신앙인들에게는 하늘나라의 문은

아주 넓은 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마태 18,14).

그렇다면 하늘나라의 문은 대단히 넓은 문입니다.

또는 완전히 활짝 열려 있는 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의 문이 좁은 문인가,

넓은 문인가?”가 아니라, “내가 들어가려고 하는 문이

‘생명의 문’인가, ‘죽음의 문’인가?”입니다.

진심으로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재미없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기꺼이 참고 견디면서,

‘기쁨으로’ 그 문을 향해서 갈 것이고, 그 문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동시에 ‘죽음의 문’으로 향해 나 있는 길이

아무리 재미있게 보이고 쉽고 편하게 보여도

그 길은 필사적으로 피할 것입니다.

2)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보다 못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다는 뜻이 아니라,

들어가기를 희망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들어가는 사람들과 못 들어가는 사람들의 비율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데, 묵시록을 보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묵시 7,9).>

베드로 사도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1-23)”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따르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십자가 수난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쉽고 편한 길’이 있을 텐데 왜 굳이 어렵고

힘든 길을 가시느냐고 예수님을 말리다가 크게 혼났는데,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뒤에는 모든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기꺼이 따라갔습니다.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 때문에 떠나 버린

사람들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요한 6,60.66).”

그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고, 구원과 생명을

얻기를 희망했던 사람들인데,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고,

또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는 이유로 떠나 버렸습니다.

‘좁은 문’을 버리고 ‘넓은 문’을 선택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생명의 문’을 버리고 ‘죽음의 문’을 선택한 것입니다.

3) 문이 닫힌 뒤에 사람들이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은, 마태오복음 25장에 있는 ‘열 처녀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처녀들’의 모습과 비슷한데, 그들은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끝까지’ 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나는 너희를 모른다.” 라는 주인의 말은, “너희와

나는 관계가 없다.”, 즉 “너희는 안으로 들어올 자격이

없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라는 말은, 그들이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신 것은 아니라는 것, 즉 자기들끼리만 먹고

마셨음을 암시합니다.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라는

말은, 그들이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모습을 구경만 했고

그 가르침을 듣고 실천하지는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28절과 30절의 말씀은, 특권 의식과 자만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 말씀입니다.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런 특권은 원래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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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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