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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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82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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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해 강하게 꾸짖는 장면을 만납니다. 그들의 위선적인 종교 행위, 겉으로는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명예와 이익을 앞세우는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라는 단호한 말로 지적하십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단지 당대의 바리사이파를 향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를 향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는가 무엇에 눈을 두고,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가
‘산 넘어서 또 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슬픔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자리를 잡으려는데 가족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아버지는 암 투병으로 기력이 쇠해졌습니다. 아들은 오랜 시간 신장 투석을 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허리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암으로 판정되었습니다. 가족력으로 당뇨가 심한 자매님이 있습니다. 혈압이 높아서 뇌졸중이 왔고,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3번 투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발에 작은 상처가 났는데 아물지 않고 염증이 심해져서 한쪽 발을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병자성사를 드리면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는 종종 고통과 질병, 상실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교우들을 만납니다. “산 넘어서 또 산”이라는 표현처럼, 한고비를 넘으면 또 다른 시련이 밀려오는 삶의 굽이굽이에서, 저는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이들의 눈동자에서 깊은 성찰의 울림을 느낍니다. 당뇨, 암, 투석, 절단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파도 앞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종종 묻습니다. “주님, 왜 저입니까”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신자들은 기도를 멈추지 않고, 미사에 참여하고, 눈물을 삼키며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이들의 삶은 단순한 ‘신체의 고통’을 넘어 ‘존재의 무게’를 견뎌내는 위대한 믿음의 길입니다. 여기서 ‘존재의 심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신을 찾고, 진리를 향해 나아갑니다. 고통은 인간의 가장 깊은 질문을 끌어내는 신앙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점은 ‘대형화’였습니다. 대형화된 교회는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필요한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형화된 교회는 신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신자들은 더 많은 헌금을 내야 됩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중산층화’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픈 사람, 병자들, 장애인들과 늘 함께하였습니다. 중산층화된 교회는 풍요와 축복을 이야기하기 마련입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에게 교회의 문턱이 점차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문제점은 ‘제도화’였습니다. 제도화된 교회에서는 성령께서 함께하시기 어렵습니다. 제도화된 교회에서는 사랑과 관용, 이해와 용서가 자리 잡기 어렵습니다. 법과 규정으로 신자들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돈’이 있습니다. 자본이 가져다주는 화려함과 풍요에 중독된 우리들의 일그러진 양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이라는 곳간에 더 많은 재물을 쌓으려는 욕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 신학교 교수 신부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사제의 덕목이 떠오릅니다. 기도하는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시대를 읽고, 공부하는 사제는 교회의 지혜로 진리를 전하며, 성실한 강론을 준비하는 사제는 지친 영혼을 위로합니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제는 늘 깨어있는 영적 감수성을 지니고, 건강을 지키는 사제는 하느님의 도구로 살아갈 체력을 유지합니다. 이 다섯 가지는 단지 사제만의 덕목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신앙인의 삶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눈에 보이는 것, 사람의 영광, 세상의 기준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하느님의 뜻, 사랑, 자비, 공감, 용서, 믿음,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더 중요한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세상의 금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의 성전을 따라갔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똑같은 길을 갔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할까요 “주님! 크신 자비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저희에게 주소서. 주님! 금이 아닌,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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