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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복음적 삶 “회개와 개혁; 원천의 순수에로 돌

184392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8-25

2025.8.25.연중 제21주간 월요일                                                 

 

1테살1,1-5.8ㄴ-10 마태23,13-22

 

 

복음적 삶

“회개와 개혁; 원천의 순수에로 돌아가기”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성도들의 모임에 그 찬송 울리어라.”(시편149,1)

 

한밤중 잠도 자지 않고 줄기차게 하느님을 찬미하는 매미들과 풀벌레들 노래 소리가 지금도 한창입니다. 지금까지 구약의 제1독서는 끝나고 연중 제21주간 부터는 신약 27권중에서 가장 먼저 51년경 쓰여진 바오로 사도의 1테살로니카 서간이 시작됩니다. 복음서보다 20년전쯤 쓰여졌고 초대교회의 순수한 복음적 삶을 보여줍니다. 

 

사실 제1독서 바오로 서간의 교회와 “불행하여라”로 시작되는 일부 부패하고 타락한 마태복음 교회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상징하는 바, 시공을 초월하여 반복되는 위선적 무지로 눈먼 어리석은 교회지도자들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순수는 사라지고 타락과 부패가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이래서 원천의 순수에로 돌아가려는 회개와 개혁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수도회의 개혁도 늘 <부유함에서 복음적 가난으로>, <세속화에서 사막의 고독으로>의 회귀라는 철저한 회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8년전 원천의 순수를 희구하며 쓴 <푸른 삶>과 <옹달샘>이란 두 편의 짧은 시가 생각납니다. 1997년 4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쓴 시입니다.

 

“푸른 산 

 맑은 물

 푸른 삶 맑은 영성

 

 산에 

 가까울수록

 흐르는 물은 맑고

 

 하느님께 

 가까울수록

 흐르는 영성 또한 맑다”<1997.4. >

 

“누가 뭐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나 불암산의 옹달샘으로 머물으리라

 

 확장도 개발도 홍보도

 그 무슨 인위의 장식도 없이

 자연 그대로의 옹달샘으로 나 머물으리라

 

 주님 안에 숨어 사는 

 옹달샘으로 나 머물으리라

 목마른 이들에게 샘솟는 물이 되리라”<1997.4. >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순수를 유지하려는 결의를 다짐하며 쓴 글입니다. 답은 하나입니다. 하루하루 부단한 회개와 개혁으로 단순한 원천에의 회귀가 아니라, 안팎이 다른 위선적 삶이 아니라 안팎이 같은,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워지는”(ever old, ever new) 삶이겠습니다. 회개한 성인은 있어도 부패한 성인은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급도 생각납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내면과 외면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 한 몸이니, 겉을 보면 속을 짐작할 수 있고 속을 보면 겉을 이해할 수 있다.”<다산>

“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면 거칠어지고,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겉치레가 된다. 겉모습과 바탕이 잘 어울린 후에야 군자답다.”<논어>

 

늘 회개와 개혁으로,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 안팎이 같은 진실과 겸손의 사람이 군자요 참 신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의 대표적 인물이 어제 소개한 얼마전 선종한 유경촌 주교와 현임의 레오14세 교황입니다. 두분 다 자발적 기쁨으로 시류에 맞서 고군분투의 복음적 삶을 사셨던 분들입니다. 

 

“말로만 아니라 삶으로 실천된 증인이었습니다. 교회의 얼굴로 사회와 마주하시되 언제나 그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존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직을 온전히 살아 낸 한 사제의 흔적을 보게 됩니다.”<유경촌 주교 장례미사중 정순택 대주교의강론>

 

“가난한 이들의 환경, 평화등에 깊은 관심, 프란치스코 교황 사목 방침 계승하며 자신만의 정체성 드러난 행보 선보여. 아우구스티노 성인 영성 자주 언급, 예수 그리스도 중심 신앙 회복 강조. 사랑과 일치로 이끄는 리더십, 위대한 교부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안에서 보편교회 나아갈 길 찾음, 세계 지도자 중 호감도 제1위”<가톨릭신문, 레온 14세 교황에 관한 박지순 기자의 글>

 

결국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두분처럼 주님의 얼굴을 반사할 때 비로소 사람은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원천의 순수에서 많이 벗어난 교회 지도자의 부패하고 타락한 보편적 경향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역사상 반복되는 부정적 현상입니다. 

 

산상설교나 시편들에서 많이 강조되는 “행복하여라”와 정 반대로 “불행하여라” 불행선언으로 시작되는 오늘 복음입니다. 바로 본말전도, 주객전도의 무지한 위선적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대한 가차없는 질책입니다. 이런 지도자들은 예나 이제나 교회에 있기 마련인 보편적 부정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눈먼 자들아!”

 

이는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깊은 아픔, 심판예고로 이어지는 분노를 드러내면서 결정적 회개의 촉구입니다. 참으로 회개의 일상화, 회개의 생활화, 회개의 습관화로 늘 복음적 가난과 겸손의 순수한 삶을 살아냄이 얼마나 결정적 중요성을 지니는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바오로 서간의 세속화로 오염되지 않은 아름다운 복음적 교회의 무공해 신자들입니다. 바오로의 아낌없는 감사와 찬사로 가득한 내용을 일부 소개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 모두 기억하며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노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의 인내를 기억합니다.

여러분은 큰 환난 속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오로와 그 일행을 닮아 삼위일체 하느님 중심에 신망애 충만한 삶이요,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와 참 하느님을 섬기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삶에 충실한 테살로니카 신도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복음적 삶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복음적 순수의 신망애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시편149,4)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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