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녀 모니카 기념일
-
184411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5-08-26
-
인생에는 계획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여정, 예상치 못한 만남, 예고 없는 작별이 있습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꾸르실료 교육 평가회를 위해 휴스턴을 다녀왔습니다. 왕복 10시간이 걸렸습니다. 평가회는 잘 마쳤지만, 달라스로 돌아오자마자 병원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음 주 세례를 받기로 한 형제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향했고, 형제님께 세례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세례를 받고 잠시 후, 하느님 품으로 떠났습니다. 자매님은 말했습니다. “슬프지만 감사합니다. 남편이 하느님의 자녀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지쳐 있었지만,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형제님의 마지막 시간에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끝을 '마침표'로 여깁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놓친 '쉼표' 속에서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형제님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두 가지 성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포도원 일꾼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포도원 일꾼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아침에 온 일꾼과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했습니다. 오후 3시에 온 일꾼과도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했습니다. 오후 5시에 온 일꾼과도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온 일꾼은 오후 5시에 온 일꾼이 한 데나리온을 받자, 자기는 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한 데나리온만 주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구원은 신앙생활의 길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신앙생활의 능력과 업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하느님을 향한 갈망과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늦게 신앙생활 했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고, 일찍 신앙생활 했다고 잘난 척할 것도 없습니다. 구원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은총에로의 방향 전환에 있습니다. 늦게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있던 두 명의 죄인 이야기입니다. 죄인 한 명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지금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당신도 구하고, 나도 구해 주시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가득했던 죄인은 예수님께서 지고 가시는 십자가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는 편하고 높은 자리를 원했습니다. 자신들의 십자가를 남에게 지우려고 했습니다. 제자들도 십자가 보다는 권력과 명예를 원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면 오른쪽과 왼쪽 자리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한 명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면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희망의 문은 열려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느님 나라는 절대평가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일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용서하십니다.
오늘은 성녀 모니카의 기념일입니다. 그녀는 방탕하던 아들 아우구스티노를 위해 17년 동안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희망이 없는 자식이오.” 하지만 성녀 모니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의 시간에 믿음을 두었습니다. 모니카는 말없이 기다리는 사랑, 말없이 흐르는 눈물, 말없이 기도하는 인내로 아들을 이끌었습니다. 결국 아우구스티노는 교회의 위대한 성인이 되었고, 어머니의 눈물은 성인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소리치며 말하려 합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기다림으로 증명됩니다. 눈물은 고통이 아니라 신뢰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모니카는 그 진실을 몸으로 보여준 신앙인입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갑작스러운 질병 앞에, 예기치 못한 이별 앞에, 우리는 무력함을 느낍니다.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가장 연약한 존재지만, 동시에 생각하고 기도하며 의미를 찾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형제님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떠나셨다는 사실은, 이 연약한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 은총을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길로 완성되는 존재입니다. 성녀 모니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이 아닌 눈물로, 가르침이 아닌 기도로 아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녀가 돌아오지 않아도, 가족이 아직 세례받지 않았어도,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니카처럼 기다리는 것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사도여!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싶습니다.
-
184460
김종업로마노
2025-08-28
-
반대 0신고 0
-
- 엘리사의 매일말씀여행(마태 24,42-51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
184459
한택규엘리사
2025-08-28
-
반대 0신고 0
-
- [슬로우 묵상] 두드리지 않는 발걸음 -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 기념일
-
184458
서하
2025-08-28
-
반대 0신고 0
-
- ■ 성녀 모니카의 아들인 초대 교회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교회의 아버지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0828]
-
184457
박윤식
2025-08-27
-
반대 0신고 0
-
- ■ 삶의 지름길인 늘 깨어 있는 믿음의 생활을 /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
184456
박윤식
2025-08-27
-
반대 0신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