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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9월 23일 (화)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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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선물 인생 “삶은 선물이자 평생 과제이다”

184413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8-26

2025.8.26.연중 제21주간 화요일                                                          

 

1테살2,1-8 마태23,23-26

 

 

선물 인생

“삶은 선물이자 평생 과제이다”

 

 

“주여, 당신은 나를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

 앉거나 서거나 매양 나를 아옵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시편139,1-2)

 

새벽 일어나 잠시 휴게실에 들려 게시판을 보니 성 바오로수도회 황보협 안셀모 수사의 종신서원 상본 성구와 뒤편의 예수님 얼굴과 글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아 주여, 잘 살게 해주소서(LORD, Grant Good Fortune).”(시편118,25)

“예수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당신의 모습은 제 발걸음을 인도하는 별입니다.”(성녀 소화 데레사)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의 별을 따라 잘 살아갈 때, 비로소 선물인생일 것입니다. ‘삶은 선물인가 혹은 짐인가?’ 평생 화두같은 물음입니다. 간혹 피정자들에게 물으면 웃기만 할 뿐 선뜻 대답을 못합니다. 선물이라 대답했다 짐이라 대답하기도 합니다. ‘남편은, 아내는, 자녀는, 나는 선물인가 짐인가?’ 묻기도 합니다. 이상적으로는 선물인데 현실적으로는 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누구나 이웃에게 짐이 되지 않고 선물이 되고 싶음은 인지상정입니다.

 

사실 선물로 받았던 가구나, 책, 옷, 그림도 세월지나 쓰레기 짐이 되어 버리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삶은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사랑하면 선물이 되고 기도가 없으면, 사랑이 식으면 사람도 심지어 내 자신도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초대 말씀은 언제나 고맙고 반갑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

 

얼마전 두 지인 자매가 보내준 사진도 생각납니다. 두분 다 60이 넘은 분으로 한 자매는 생일잔치에 두 딸들의 축하를 받는 모습이, 한 자매는 아들-며느리, 딸-사위 넷으로부터 환갑잔치에 축하를 받는 모습이, 꽃처럼 환한 모습들이 저절로 기뻐지는 선물인생임을 확연히 느끼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선물이자 평생 과제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살아 있는 그날까지 평생 과제에 충실히 책임을 다하는 공부와 노력이 뒤따를 때 비로소 선물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는 그날까지 시종일관 선물인생을 사는 이 몇이나 될까요? 

 

주님이 불러 주신 제자리에서 섬김과 나눔의 책임을 다하며 살 때는 하느님이나 이웃에게 선물이 되겠지만, 제자리를 벗어나 책임을 소홀히 할 때는 하느님이나 이웃에게 불편하고 무거운 짐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 인용했던 오래전 24년전 써놨던 <선물>이란 자작시를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꽃처럼 환한 웃음보다 더 좋은 선물 있을까

 삶은 순전히 선물이다

 꽃같은 삶이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순식간 사라져 가는 꽃들

 바로 선물 인생 아니던가

 얼마나 그 많고 좋은 선물들 놓쳐 버리고 살았는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대로 꽃인 인생인 거다

 어제의 꽃폈다 지면 또 오늘의 꽃폈다 지고...

 그렇게 평생 파스카의 꽃으로 사는 거다

 끊임없이 폈다 지면서 떠나는 삶이다

 잘 떠날 때 아름답지 않은가

 길이길이 사랑의 향기로 남는다”<2001.4.23.>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똑같은 종교 지도자들인데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불행선언과 더불어 지탄을 받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테살로니카 전서의 바오로 일행의 삶이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전자의 무지한 이들이 이웃에게 무거운 짐이 되는 존재들이라면 후자는 이웃에게 참 좋은 도움이 되는, 짐을 가볍게 해주는 선물같은 존재들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삼키는 자들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새삼 지식이나 학식과 지혜는 함께 가지 않음을 봅니다. 참으로 역설적으로 똑똑한 바보들이 이런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분별력의 지혜가 결여된 본말전도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속이 깨끗하면 겉은 저절로 깨끗해 지는 이치를 모른 자들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야 말로 이웃에게 무겁고 불쾌한 짐이 되기 십중팔구이겠습니다. 

 

반대로 정말 속의 탐욕이 비워지고 방종함이 없는 깨어 있는, 깨달은, 깨끗한 마음의 사람들은 무슨 옷을 입어도 어울리며 화장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과 향기가 밖으로 배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들이야 말로 이웃의 짐을 덜어 유쾌하게 기쁘게 하는 선물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2독서에서 테살로니카교회에 선교사로 파견된 교회 지도자 바오로 일행은 얼마나 멋진 선물인생인지요! 바오로의 고백이 너무 유익하고 아름답고 적절해 길다 싶지만 전부 인용합니다.

 

“우리의 설교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속임수로 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구실을 붙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여러분에게서,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영광을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써 위엄있게 처신했고,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그대로 우리 자신을 거울같이 비춰주는, 한없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그대로 배워야 할 모습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제자다운 존엄한, 아름다운 품위에 어머니 교회를 닮은 온화한 인품의 사람들이라면 이웃에게 말그대로 향기롭고 아름다운 선물이 될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아름답고 향기로운 선물인생을 살게 합니다.

 

“주여!

당신은 앞뒤로 나를 감싸 주시며, 

내 위에 당신 손을 얹어 주시나이다.

알으심이 너무나 놀랍고 아득하와, 

내 힘이 미치지 못하나이다.”(시편139,5-6).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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