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단지 그들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나는 다르다”는 안도 속에 머무는 우리 모두의 얼굴을 비추고 있습니다.
회칠한 무덤에서 살아 있는 성전으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을 “ 회칠한 무덤 ”에 비유하셨습니다.
겉은 하얗게 빛나지만 속은 죽음과 부패로 가득한 무덤.
겉과 속이 갈라질 때,
인간은 하느님의 숨결과 단절된 채 껍데기만 붙잡게 됩니다.
그 순간 신앙은 살아 있는 성전이 아니라,
빛을 잃은 돌무덤이 되고 맙니다.
오늘 우리도 회칠한 무덤이 될 수 있습니다.
미사에는 성실히 참여하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과는 마음을 닫을 때,
SNS에는 경건한 글을 남기면서도 작은 이웃의 눈물을 외면할 때,
사랑을 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교만을 놓지 못할 때,
정의를 외치면서도 내 편의를 위해서는 타협할 때.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내게 물으십니다.
“너는 정말로 조상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느냐?
나는 미사 안에서의 모습보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이들을 대할 때 더 빛나고 있는가?
SNS 속의 경건한 말보다 가족과의 대화에서 더 진실한가?
내가 존경한다고 말하는 성인들의 길을, 오늘 내 삶 속에서 따라 살고 있는가?
성찰해 봅니다.
정말 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자신있게 답하지 못하는 나와 만납니다.
'주님과 연결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구나..'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셨듯,
오늘 저의 모순도 당신의 빛으로 극명하게 드러내 주십니다.
그리고 초대해 주십니다.
"존재의 중심으로 돌아와라."
겉치레 신앙의 길을 걷지 말고,
진실과 생명의 길로 방향을 바꾸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이 저에게는 희망입니다.
내 안의 중심, 곧 주님의 숨결과 다시 연결될 때,
겉과 속은 하나가 되고,
죽은 무덤은 다시 살아 있는 성전으로 변합니다.
성녀 모니카, 눈물로 세운 성전
성녀 모니카의 삶은 겉치레가 아니라
속에서 흘러나온 믿음이었습니다.
그녀의 눈물은 세상의 눈에는 무력해 보였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강력한 기도의 향기였습니다.
– 방탕한 아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인내,
– 믿지 않던 남편을 끝내 감싸 안았던 사랑,
– 결과를 하느님께 맡기며 흘린 눈물.
그 모든 것이 바로 살아 있는 성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눈물이 결국 아우구스티노를 변화시켰고,
교회의 역사를 바꾸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주님,
저를 회칠한 무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성전으로 세워 주소서.
“나는 다르다”는 말에 안주하지 않고,
오늘도 제 일상 한가운데서
당신 앞에 진실하게 서게 하소서.
성녀 모니카처럼 눈물로 기도하게 하시고,
그 눈물이 제 안의 중심을 깨워
당신과 하나 되게 하소서.
작은 만남 속에서도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성전이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