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하느님 중심의 품위 있는 삶 “진실, 겸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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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40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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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27.수요일 성녀 모니카(331-387) 기념일
1테살2,9-13 마태23,27-32
하느님 중심의 품위 있는 삶
“진실, 겸손, 지혜”
“당신 숨결을 피해 어디로 가리이까?
당신 얼굴을 피해 어디로 달아나리이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는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시편139,7-8)
제가 37년째 수도원에 정주하면서 늘 자랑으로 생각하는 수도원 배경의 늘 거기 그 자리의 하늘과 산입니다. 날마다 참 많이 바라보며 위로와 힘을 얻은 하늘과 산이요, 바라볼 때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새로이 했습니다. 초창기부터 늘 되뇌인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다짐하며 배수진을 치고 종신불퇴의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지금도 <하늘과 산>을 볼 때 마다 떠오르는 자작 좌우명 애송시입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
산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1997.2. >
28년전 여기 수도원에서 쓴 시지만 읽을 때 마다 늘 새롭고 좋습니다. 삶의 중심인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관계의 우정을 희구하며 쓴 글입니다. 더불어 작년부터 자주 외우는 또 하나의 짧은 자작 좌우명 시를 얼마 전 다시 집무실 게시판에 붙였습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시같은
하루
시같이 살자”<2025.8.18.>
하느님 중심의 품위 있는 삶이, 바로 진실과 겸손과 지혜의 삶이 바로 꽃같은 삶, 시같은 삶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비로소 감사와 감동과 감탄의 삼감의 삶이요, 진실과 성실과 절실의 삼실의 삶이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향주삼덕의 삶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두 부류의 사람들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참으로 역설적 불가사의의 신비가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누구보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희구하는 자들이 어떻게 이렇게 <무지의 죄>에 눈이 멀 수 있나 이해가 안됩니다. 어제에 이어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불행선언이 절정을 이룹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반복되는 부정적 표리부동의 위선적 무지의 종교 현실에 대한 참으로 신랄한, 회개를 촉구하는 비판입니다. “백련암은 어떤 곳이냐?”에 대한 물음에 “세상을 속이는 곳이다!”라는 불교 성철 큰 스님의 언급이, 또 승려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스님에게 “죄를 짓지 말고 절에서 나오라!” 충고했다는 권정생 동화작가의 말도 생각납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들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위선적 무지의 죄가 깊습니다. 겉으로 보기 좋게 꾸미면서 감쪽같이 악행을 반복하는 악순환의 현실은 그대로 반복되어 의인중의 의인인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여전히 오늘날도 반복되는 위선적 무지에 눈먼 악행의 현실입니다. 어제처럼 이런 무지한 위선적 종교 지도자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진짜 하느님 중심의 진실하고 겸손하고 지혜로운 바오로와 그 일행의 선교사들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바오로 사도 일행이 얼마나 하느님 중심의 진실과 자발적 가난과 겸손의 삶에, 복음 선포의 삶에 충실했는지 참 잘 드러납니다. 이런 복음적 삶을 그대로 보고 배우는 신자들이요,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 종교인들인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많이 부끄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성녀 모나카 축일이고 내일은 성녀의 아드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학자 기념일입니다. 이렇게 모자분이 나란히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애오라지 하느님 중심의 복음적 삶에 시종여일 충실했던 성녀 모니카의 집요함이 결정적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했습니다. 성녀의 전 생애가 참 감동적이요 자세한 내용은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에서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성녀 모니카는 332년 현재의 아프리카 알제리의 수크 아흐라스에서 태어납니다. 그리스도교인 성녀는 나이 많은 이교도 파트리시우스와 결혼했는데 남편은 에너지가 넘치고 난폭하고 성적으로 문란했습니다. 당시 가정 폭력은 흔했지만 모니카가 지혜롭게 남편에게 순종했기에 남편은 전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습관은 그를 짜증나게 했지만, 그는 모니카를 존경하게 됩니다. 모니카의 다정함과 인내심 덕분에 다른 학대 받는 아내와 어머니들에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성녀는 힘든 결혼생활을 하는 여인들에게 “말을 잘하게 되면 매를 맞을 위험이 줄어들뿐 아니라, 어쩌면 언젠가 남편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수도 있을 거예요.” 충고하곤 했습니다.
실제로 모니카는 짧은 시간안에 시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교도인 남편을 개종시켰고 폭력적인 성향을 진정시켰습니다. 아들 아우구스티노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10년 동안 애인과 함께 살면서 마니교도가 됩니다. 주교는 호소하는 모니카에게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아들이 멸망하는 일을 결코 없을 것입니다.” 라고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마침내 밀라노 주교 성 암브로시오 주교를 통해 모니카는 17년간 기도 끝에 아우구스티노가 28세에 회심하는 기쁨을 누렸고, 6개월후 밀라노 세례자 요한 성당에서 주교 성 암브로시오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모니카는 모든 소원 성취후 아프리카의 오스티아에서 387년 56세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아들 앞에서 선종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잠시 머물고 싶었던 것은 바로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풍성하게 응답해 주셔서, 이제 네가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의 종이 된 것을 보게 되었구나. 내가 여기서 더 무엇을 바라겠느냐?”
말그대로 시종일관 성녀 모니카의 하느님 중심의 신망애(信望愛) 삶의 영적 승리의 삶을 보여줍니다. 성녀 모니카는 인내, 아내, 어머니, 그리고 학대 피해자들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진실과 겸손과 지혜의 삶을,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신망애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제가 새벽놀의 날개 달아, 바다 끝에 자리 잡아도,
거기서도 당신 손이 저를 이끄시고,
당신 오른손이 저를 붙드시나이다.”(시편139,9-10).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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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미사/2025년 8월 28일 목요일 [(백)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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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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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진 신부님_<‘끝’을 모른다고 해서 ‘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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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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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근 신부님_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마태 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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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67
최원석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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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국 신부님_거듭되는 방황 속에서도 항상 당신을 기억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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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66
최원석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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