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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9월 23일 (화)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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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184461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5-08-28

저는 3번의 비상계엄을 경험했습니다. 첫 번째 비상계엄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 비상계엄은 1980년에 있었습니다. 정권을 잡으려는 군인들이 비상계엄을 주도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 번째 비상계엄은 2024년에 있었습니다. 명분도 목적도 알 수 없는 모호한 비상계엄을 현직 대통령이 선포했습니다. 국민은 국회로 모였고, 국회의원은 비상계엄을 해제했습니다. 국회의원은 대통령을 탄핵했고,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을 파면하였습니다. 군인들이 다스리는 비상계엄을 이렇게 신속하게 해제하고,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헌신했던 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계란은 조그만 충격에도 깨지기 쉽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위는 웬만한 충격에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더러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서의 세계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려는 사람을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그렇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10명만 있어도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셈법이 그렇습니다. 작은 돌팔매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무너트린 다윗이 그렇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5개로 5천 명이 넘는 사람을 배불리 먹이려고 하신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일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 복음 말씀은 위선, 편견, 가식, 교만, 욕망의 껍질을 벗겨야 한다는 예수님의 외침이었습니다. 2000년 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운동 역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큰일을 앞둔 사람들에게, 평소와는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함께하고 있음을 믿으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세례자 요한은 주연은 아니지만, 조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생활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자 요한에게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세례자 요한을 따라서 제자가 되었고, 세례자 요한을 오시기로 한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앞으로 오실 분의 길을 준비하러 왔습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저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신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의자를 생각합니다. 성당에 와도, 식당에 가도, 차를 타도, 집에 가도 우리는 의자를 볼 수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앉습니다. 의자들은 우리들의 지친 몸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비워줍니다. 의자가 없다면 우리는 참으로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의자를 생각하며, 예수님을 위해서 기꺼이 의자가 되어준 세례자 요한을 생각합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기꺼이 남을 위한 의자가 되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어머니, 본당의 많은 봉사자들은 가족들을 위해, 하느님을 위해 사랑의 의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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