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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9월 23일 (화)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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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깨어 있어라 “충실하고 슬기로운 주님의 종”

184462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8-28

2025.8.28.목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354-430) 기념일 

 

 

1테살3,7-13 마태24,42-51

 

 

깨어 있어라

“충실하고 슬기로운 주님의 종”

 

 

“새벽부터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편51,14)

 

"성인은 견고하게 신앙지키고

 오류의 유혹들을 힘차게눌러

 더럽고 낡은습관 말끔히씻고

 밝혀진 지혜로써 멀리하셨네."

 

아침미사중 화답송 시편과 성 아우구스티노 기념일 아침기도 찬미가가 참 좋습니다.

‘깨어 있어라!’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끊임없는 기도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깨어 있는 삶입니다. 늘 깨어 있어 내일도 어제도 아닌 오늘 지금 여기 제자리 꽃자리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 주님과 함께 하늘 나라를 삽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못살면 죽어서도 못삽니다. 늘 깨어 살 때 참으로 사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는 것"은 옛 사막수도자들의 근복적 욕구였습니다. 아주 예전 깨어 있음을 희구(希求)하며 써놓은 <새벽>이란 글이 생각납니다.

 

“마음의 중심

 늘 고요히 깨어 있어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

 곧 집중 몰두하되

 휘말리지 않는다

 언제나 새벽의 고요와 평온을 산다”<2000.9.11.>

 

오늘도 새벽 풀벌레 영롱한 찬미노래와 더불어 깨어 있음으로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시끄럽고 복잡하고 혼란한 일상속에서도 마음은 단순히 깨어 새벽의 고요와 평온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역시 <새벽>이란 글입니다.

 

“새벽 숲

 온갖 새들 맑은 소리

 임의 찬미에 밝아오는 아침

 물러나는 어둠

 잠깨는 숲

 새로 시작하는 하루

 새벽을 잃으면 하루 전부를 잃는다”<2001.5.29.>

 

아주 오래 전 글을 이렇게 한참후에 강론에 인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가 깨어 있는 삶을 소망하며 쓴 글이요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합니다. 오늘 복음도 강론도 주제는 “깨어 있어라”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막연히 깨어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기다리는 기쁨이, 기다리는 희망이 준비하며 깨어 있게 합니다. 주인 대신, ‘주님을’, ‘죽음을’ 넣어도 실감있게 와 닿습니다. 이어지는 복음 말씀이 깨어 준비하는 내용을 분명히 밝혀줍니다.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참으로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늘 깨어 준비하고 기다리며 제 책임을 다하는 종임을 깨닫습니다. 부지런하고 아름다운 삶이요, ‘죽음을 기억할 때(memento mori)’, ‘삶을 사랑할 때(amor fati)’, 비로소 ‘지금 여기를 사는(carpe diem)’ 깨어 있는 삶입니다. 정말 깨어 있음은 영성생활의 궁극 목표요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대로 사랑하며 존엄한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게 합니다.

 

깨어 있음은 사랑입니다. 

깨어 있음은 생명입니다. 

깨어 있음은 빛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다림입니다. 

깨어 있음은 믿음입니다. 

깨어 있음은 희망입니다. 

깨어 있음은 침묵입니다. 

깨어 있음은 순수입니다. 

깨어 있음은 준비입니다. 

깨어 있음은 경청입니다. 

깨어 있음은 비움입니다. 

깨어 있음은 가난입니다. 

깨어 있음은 찬미와 감사입니다.

깨어 있음은 위로이자 치유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쁨이자 행복입니다.

깨어 있음은 주님의 현존이자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언젠가 나눴던 깨어 있음 예찬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깨어 있음의 은혜들입니다. 깨어 있을 때 안주의 유혹에, 타락에 빠지지도 않고 부패하지도 않습니다. 웅덩이에 고인물이 아니라 늘 맑게 흐르는 내적 여정의 삶입니다. 깨어 있을 때 본연의 참 나를 살 수 있습니다. 저절로 깨어 있음이 아닙니다. 역시 선택과 훈련, 습관의 도식이 그대로 해당되며, 그래서 깨어있음의 훈련과 습관을 위한 향심기도 및 기타 묵상, 관상기도들입니다. 

 

깨어 있는 이웃이 우리를 깨어 있게 합니다. 더불어 깨어 있음입니다. 바오로 일행의 서간의 수신 대상인 테살로니카 신자들 역시 깨어 있는 분들임을 깨닫습니다. 내용이 아름답고 풍부하며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의 깨어 있는 삶에 좋은 자극이 되기에 그대로 인용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재난과 환난 속에서도 여러분의 일로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다고 하니 우리는 이제 살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덕분에 우리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이 기쁨을 두고 하느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이런 종말론적 삶의 자세가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오늘 지금 여기서 유비무환의 자세로 깨어 환상이나 거품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투명한 삶을 살게 합니다. 어제 성녀 모니카의 기념미사에 이어 오늘은 성녀의 자랑스런 아드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학자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성인은 354년 당신 로마 제국의 북아프리카 식민지 누미디아의 타가스테에서 지방 관리 파트리키우스와 독실한 신자 모니카 사이에서 출생합니다.

 

성 바오로 이후 최고의 신학자이자 플라톤과 그 이후 칸트처럼 근원에서  사유한 철학자였습니다. ‘진리의 연인’이란 칭호대로 하느님 사랑에 사로 잡혀 깨어 살았던 대 영성가이기도 합니다. 성인의 회심에, 깨어 있는 삶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던 로마서(13,12-14) 말씀입니다. 성인의 지칠줄 모르는 탐구의 저력은 진리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사랑이었습니다. 성인은 본질적으로 인간은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고 규정합니다. 성인의 금과옥조의 깨달음을 소개합니다.

 

“주여, 당신을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에, 우리가 당신을 찬양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게 하시나이다. 당신 인에 쉬게 될때까지는 우리 마음이 평온치 못하리이다.”

“진리를 아는 이는 그를 알고 그를 아는 이는 영원을 압니다. 사랑이 그를 압니다.”

“오, 진리여, 진리여! 저 사람들이 외칠 적에, 그렇게도 흔하게 그렇게도 다채롭게, 때로는 소리로만 때로는 많고도 커다란 책자로 당신을 말소리로 드러낼 때에, 내 영혼의 골수가 얼마나 당신을 속으로 사무치게 그리워했습니까?”

“오, 영원한 진리여, 참된 사랑이여, 사랑스러운 영원이여! 당신이 내 하느님이시니 밤낮으로 당신을 향하여 한숨짓습니다.”

“이제 당신만을 사랑하니, 저는 당신만을 섬길 각오가 되어 있나이다.”

 

성인의 마지막 철학적 유언도 아름답고, 꼭 지금 제 나이! 76세 반달족의 포위속에 히포의 주교로 선종시 유언도 감동적입니다. 진리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사랑이 아름답고 이 사랑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감동케하며 마음을 정화하고 샘솟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토록 오래고 그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주 하느님,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푸셨으니 정묵(靜默)의 평화, 안식일의 평화, 저녁 없는 평화를 주십시오.”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사랑을, 사랑의 아름다움을, 늘 주님의 평화를 희구하며 '진리의 연인'이자 '진리의 순례자'로 늘 깨어 살았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였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날마다 깨어 준비하며 책임을 다하며 충실하고 슬기로운 주님의 종으로 살게 하십니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시편90,17).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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