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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25일 (목)연중 제25주간 목요일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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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연중 제21주간 토요일 강론>(2025. 8. 30. 토)(마태 25,14-30)

18451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8-30

 

<자기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죄...>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마태 25,14-18).”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5,24-30)”

1) ‘탈렌트의 비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어서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은 죄입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탈렌트를 나누어 준 것은, ‘각자 능력에

따라’ 돈벌이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루카 19,13).

비유에 나오는 세 번째 종의 죄는, 주인의 명령에

불순종한 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 자기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죄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바란 것은 결과가 아니라 ‘노력’입니다.

첫 번째 종과 두 번째 종을 칭찬하는 말을 보면,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입니다(마태 25,21.23).

얼마나 벌었는지를 본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는지를 본 것입니다.

따라서 비유의 내용을 조금 바꿔서, 첫 번째 사람과

두 번째 사람이 돈을 못 벌었다면, 또는 원금까지

손해를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랬더라도 주인은 그 두 사람을 칭찬했을 것입니다.

2) 세 번째 종이 한 말,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라는 말은,

종들을 착취하는 사람이라고 주인을 비난하는 말이기도

하고, 원금을 손해 보고 주인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워서 최소한 원금만이라도 잘 보전하려고 애썼다고

변명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주인이 그에게 한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을 꾸짖는 말입니다.

3) ‘쓸모없는 종’이라는 말은,

산상설교의 ‘소금’에 관한 말씀에 연결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앙인은, 하느님께도 이웃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밖에 버려진다는 말은,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능동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죄만 안 지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수동적으로’, 또 ‘소극적으로’ 사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선행을 실천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과 같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마르 3,4).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사제와 레위인은,

살리는 일을 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죽이는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았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루카 10,31-32).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말든지, 이웃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든지 말든지, 아무 관심 없이 그저 자기 혼자 조용히

기도생활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 실천 없이’ 바치는 기도를 하느님께서 받아 주실까?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 2,14.17.24.26).”

실천 없는 믿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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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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