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겸손의 여정 <사다리 공동체에서 순환적 원형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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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36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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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31.연중 제22주일
집회3,17-18.20.28-29 히브12,18-19.22-24ㄱ 루카14,1.7-14
겸손의 여정
<사다리 공동체에서 순환적 원형 공동체로>
“무지에 대한 답은 겸손뿐이다”
오늘은 연중 제22주일이자 8월의 끝날인 8월31일이고, 내일부터는 9월 순교자성월과 더불어 본격적인 ‘기도의 계절’이 시작됩니다. 이런 시점에서 오늘 말씀 주제인 “겸손”이 참 반갑고 적절합니다. 겸손은 모든 덕의 어머니입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한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새삼 인간 마음의 고질병인 무지에 대한 답答이자 약藥은 겸손뿐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겸손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겸손한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사람(homo)’과 ‘겸손(humilitas)’이란 단어는 ‘흙(humus)’이란 단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흙같이 수수하고 겸손해야 참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서 흙에 대한 인간의 향수는 본능적인가 봅니다. 결론하여 사람은 모름지기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지혜문학에 속하는 제1독서 집회서 말씀의 주제도 겸손이요, 주님의 말씀이 참 다정하게 들립니다.
“얘야, 네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여라. 그러면 선물하는 사람보다 더 사랑을 받으리라.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주님께서는 온유한 이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신다.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온유한 사람들은 분명 온화溫和한 사람들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이들은 주님의 사랑과 총애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유명한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겸손의 반대는 거만입니다. 정말 자기를 모르는 무지한 자가 거만한 사람입니다. 집회서의 가르침이 적절합니다.
“거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이 없으니, 악의 잡초가 그 안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현명한 마음은 격언을 되새긴다. 주의 깊은 귀는 지혜로운 이가 바라는 것이다.”
무지의 거만에 대한 궁극의 답은 경청과 겸손의 지혜뿐입니다. 부단한 회개를 통해 주님을 가까이 닮아갈수록 온유하고 겸손한 참사람으로의 변모입니다. 아주 예전 부활대축일 다음날 써놓고 잔잔한 위로와 감동을 받았던 <민들레꽃>이란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민들레꽃 외롭지 않다
아무리
작고 낮아도
샛노란 마음 활짝 열어
온통
하늘을 담고 있다”<2000.4.24.>
민들레꽃이 상징하는바 주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런 가난하고 겸손한 우리들에게 히브리서가 오늘 지금 여기서 전하는 다음 기쁜소식입니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이신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새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그대로 이 미사축제 은총을 통해 천상 예루살렘을 앞당겨 체험하고 살아가는 겸손한 우리들이요,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유독 가난을 사랑했던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가 생각납니다. 답은 사랑뿐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듯 겸손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겸손을 사랑합니다. 겸손뿐 아니라, 정결도 자선도 침묵도 공부도 기도도 독서도 노동도 수도생활도 모든 수행 덕목들을 억지로가 아닌 자발적 기쁨으로 사랑할 때 저절로 영육의 건강도 보장됩니다. 오늘 복음의 겸손과 관련하여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강력히 권고하시는 게 둘입니다.
초대 받으면 끝자리, 낮은 자리에 앉으라는 것입니다. 진정 겸손을 사랑하는 이는 말하지 않더라도 끝자리를, 낮은자리를 사랑하여 찾기 마련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발적 기쁨으로 낮은 자리를 찾는 겸손한 이들에게,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올라감의 교만으로 낮아지고, 내려감의 겸손으로 높아지는 역설적 영적 진리를 배웁니다.
다음엔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각별한 실천적 사랑을 지니는 것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겸손을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에 정통한 이는 가난한 이들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다음 권고 말씀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하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바로 이런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발적 사랑의 실천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결코 유유상종 끼리끼리의 동호인들끼리의 이기적 사랑이 넘볼수 없는 고귀한 이타적 아가페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진정 그 나라가 문화강국의 선진국인지 아닌지는 이런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에 대한 복지 제도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어제 읽은 감동적 주석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을 지닌 사람은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을 지닌 사람은 인간의 지위, 변덕스러운 사회가 부여하는 지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인종, 종교, 직업, 계층에 따른 분류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들과의 수평적 관계다. 우리의 진정한 지위는 계급이나 직업으로 측정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과 섬김의 수준으로 측정된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긍휼히 여기는지 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지위와는 별개로 강한 내면의 안정감을 요구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상석에 주인 옆에 앉으시죠?’ 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의 사랑의 유대감에서 안정감을 찾는 사람들은 부엌 근처에 앉아 있다고 해서 어떤 지위도 잃지 않는 다는 것을 안다. 부엌은 그들에게 요리사와 직원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제공한다.”
누가 뭐래도 하느님 앞에서는 더도 덜도 아닌 나일뿐입니다. 이런 깨달음의 겸손한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기에 외적 지위나 소유에 무관하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눈에 높은 자리이지 하느님 눈에는 태산이 높다해도 하늘 아래 뫼일뿐이요 도토리 키재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주님을 닮아 ‘초월적 거점’에 자리함으로 깊고 넓은 시야를 지닌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은 사다리와 원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다리 위에서 필사적으로 꼭대기까지 오르려고 애쓰며 살아갑니다. 모든 분야에서 으뜸이 되는 것이 깊이 뿌리내린 사다리 사회입니다. 오늘날 교육의 병폐도 사다리 경쟁 교육에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다리 사회가 아닌 순환적 둥근 원형같은 사회를 제안합니다.
자본주의의 권워주의적 사다리나 피라미드 공동체의 ‘정상’에 주님을 대리하는 장상이 있다면, 복음적 순환적 원형 공동체의 ‘중심’ 한가운데에 주님을 대리하는 장상이 있습니다. 사다리와 피라밑 수직적 계층의 불평등의 공동체가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며 모두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모두 서로 더 잘 알고 존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주님 중심의 둥근 원형같은 복음적 공동체입니다. 마치 둥근 식탁의 이치가 좋은 예가 됩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은 겸손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다리나 피라미드 같은 구조적 수직적 불평등한 공동체가 아닌 순환적 상호섬김과 상호존중의 둥근 원형같은 공동체를 선호합니다. 우리의 사고나 교육의 패러다임도 사다리 공동체 유형에서 둥근 원형 공동체 유형으로 바뀌어져야 함을 봅니다.
정말 놀랍고 고맙게도 순환 둥근 원형(圓形) 공동체의 모범적 원형(原形)이, 하늘 나라의 원형(原形)이, 이 거룩한 미사전례입니다. 사다리나 피라미드 공동체를 순환적 둥근 원형(圓形) 공동체로 바꿔주는 혁명적 미사전례은총입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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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89. 죄인들에게 내 자비를 전하여라. [하느님 자비심, 파우스티나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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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46
장병찬
202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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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 기쁜 소식을 지금 여기서 체험해야만 /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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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202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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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2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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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202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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