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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26일 (금)연중 제25주간 금요일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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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 14,13)

18453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8-31

* 오늘의 말씀(8/31) 연중 제22주일

* 제1독서 : 집회 3, 17-18. 20. 28-29

* 제2독서 : 히브 12, 18-19. 22-24

* 복음 : 루카 14, 1. 7-14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 <오늘의 강론>

오늘은 연중 제22주일 입니다. 가을의 길목입니다. 햇살과 바람이 벌판을 휩쓸고, 벌판의 벼들이 익어갈수록 고개를 깊이 떨구어가는 계절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햇살과 영의 바람으로 익어가고, 익어갈수록 고개를 푹 숙이고 낮출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전례는 우리를 ‘겸손’으로 초대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말합니다.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집회 3,18)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은 이들이 서로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시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누가 너를 혼인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루카 14,8-10)

이 비유 속에서 초대받은 사람의 첫째 관심은 ‘윗자리’ 입니다. 그 자리가 중요한 사람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를 모으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섬김 받고 대우 받는 자리이고, 자신이 드러나는 자리, 곧 자신의 영광이 드러나는 자리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는 초대받은 이의 관심의 초점이 초대 해준 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대한 대우’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실상 잔치에서 중요한 것은 자리가 아니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며, 초대해 주신 분의 호의에 감사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사실, 혼인잔치의 기쁨은 어느 자리에나 다 차고 넘친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기쁨에 있어서는 윗자리와 맨 끝자리가 따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자리가 기쁨이 되고 있으니, 분명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을 채우는 것이 기쁨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높고 낮음’은 초대하신 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의 종결어미는 ‘낮아지고’ 혹은 ‘높아질 것이다’라는 수동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곧 높낮이는 자신이 정하거나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배정되는 것이며, 주어지는 것이고, 부여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겸손’이란 어느 자리를 차지하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실존에 대한 깨달음과 태도에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그리스도인의 첫째 미덕은 겸손이요, 둘째 미덕도 겸손이요, 셋째 미덕도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겸손한 사람, 우리의 사부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올리베따노 연합회 창설자)는 말합니다

“성인들의 가르침 전부가 가리키는 것이 겸손이며, 갖은 말로 설득하고 요청하는 것도 바로 겸손이다. 우리가 들은 이 겸손에서 모든 선이 나오고, 그 반대편에서는 모든 악이 나온다.”(편지 1)

사실, 오늘도 우리를 초대한 이 혼인잔치에는 말씀과 성찬의 밥상이 너끈하게 차려져 있습니다. 이 밥상은 하느님이신 분이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명하시어 차려놓으신 밥상입니다. 이 밥상은 윗자리에나 맨 끝자리에나 어느 자리에나 모두 풍성합니다. 그래서 자리 밑에서 부스러기만 주어먹을 수 있어도 행복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토록 잔치에 초대받은 것만도 이미 행복입니다. 참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함께 기뻐하는 이들이 있기에 더 큰 행복이요 기쁨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아버지 앞에 자신을 내놓으시어 당신의 몸으로 밥상을 차리시고 섬기시면서 아버지 앞에서 높여지셨듯이, 우리 역시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내놓아 온 몸을 낮추어 형제들의 밥이 되는 본연의 자리에 머물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할 일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초대하는 이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 14,13)

초대하는 이에게도 역시 ‘겸손’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랑이 먼저 가닿아야 하는 것은 당연히 사랑이 필요한 이들이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곧 베푸는 것 역시 단순히 시혜를 베풀거나 기대나 계산, 혹은 자신의 필요와 만족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닌 ‘겸손한 사랑’이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결국,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도 사랑을 베푸는 것도 ‘겸손’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 14,13)

주님!

당신 말씀의 잔치에서 사랑을 먹었으니, 당신의 향기를 뿜게 하소서.

당신 식탁의 잔치에서 생명을 먹었으니, 당신의 생명을 건네게 하소서.

이제는 잔치를 베풀 줄 알게 하소서.

작은이들을 초대하여 생명의 잔치를 베풀게 하시고,

저 자신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어주는 잔치가 되게 하소서. 아멘. 


수도회 벽돌 한장 계좌입니다. 감사합니다.

계좌는 농협 355-0045-9581-23 예금주: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원 이예요.

축복.평화 가득하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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